서울 도롱뇽 소송 승소를 위한 생명기원제에 다녀와서

2004.11.27 | 미분류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엘 다녀왔습니다. 아주 멀게 느껴지는 여행 길이었습니다. 여느때 같으면 그저 아무 생각없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지만 오늘은 시종 멀미와 현기증으로 시달렸습니다.

제가 굳이 서울을 가려했던 것은 행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소식만 접하던 도롱뇽의 친구들도 보고 싶고 행사장도 가보고 싶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보다도 신현중 교수님께서 6개월 동안 제작하셨다는 도롱뇽을 직접 가서 보고 싶었습니다. (교수님과는 일정이 어긋나 기어이 만나뵙지 못했습니다만.)



저는 감히 한 예술가의 상상 속에 살아있고, 살려 달라고 외치는 도롱뇽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고 있는동안 천성산 전체가 작은 움직임으로 살아오는 감동을 받았으며 그러한 감동은 한땀한땀 수놓인 도롱뇽을 볼 때도 제 마음에 일어났습니다.

사실 요 몇일간 – 법원의 조정 권고안과 여론을 조작한 KBS 방송 토론 후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았고 상당히 의기소침하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의 천분의 일도 저는 갖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으며 오히려 그동안 단 한번도 그들의 힘을 느껴보지 못한 것이 스스로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천성산 환경문제와 고속철도 반대운동을 통해 거짓논리와 위선이 힘이 되는 이 사회 환경에 더 많이 고양되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가서 도롱뇽 조형물과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이 가진 힘은 작고 연약한 한마리의 도롱뇽이 헤엄처 가는 것을 견디지 못 할 정도로 미미하며 그들이 언약을 저버리고 온갖 명분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도롱뇽을 수 놓는 작은 손길과 그 마음 머무는 곳에서 그들을 용서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도롱뇽 행진 퍼레이드를 뒤따르는 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저는 물러설 수 없는 한가지 결론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천성산의 운명은 국가의 미래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우리의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고루하게 들리는 천성산 환경영향평가와 공사중지는 한 국가의 대통령을 보좌하던 수석과 국가의 미래를 짊어진 행정 장관과의 협의였고 이 땅의 생명과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살려달라고 외친 한 비구니의 절규였으며 재판정의 판사님 앞에서 서약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늦은 밤에 부산에 도착하여 메일을 열어보니 김곰치라는 젊은 친구에게서 장문의 편지가 와있었습니다. 저는 울면서 썼다고 하는 이 한통의 편지에서 저를 사랑하고 천성산의 운명에 깊이 조우하는 젊은 청년의 고뇌를 읽습니다.

그 청년은 이야기합니다.
스님. 저는 며칠 혼자 생각해보면서… 재판장님의 권고안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서운하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님한테 뺨을 얻어맞을 각오를 하고 말합니다. “이미 결정되어 진행 중인 대형국책사업” “어려운 나라경제”라는 말, 어떻게 보면 너무 상투적이지만, 이 말에 태산 같은 무게가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태산 같은 무게가!

재판장님이 공단 측이 말하는 엉터리 주장을 받아들이고 내놓은 권고안이라 해도, 정말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공단 측의 경제발전 운운하는 것과 같은 것들 말고는 희망이 없는 시대입니다. 너무 깊이 세뇌되어 있었고 오랜 세월 그런 기계적 사고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에 취해 살아왔기에 그 거짓말을 깨닫는 일도 너무 무서운 일입니다. 거짓된 꿈도 꿈의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효과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태산입니다. 그 태산이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어깨에 올라타 있습니다.



스님, 스님은 착각하시면 안됩니다. 재판장님은 성현에 대한 책을 쓴 저자 김종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법복을 입은 판사님입니다. 그분은 법복을 입은 채 권고안을 쓰고 곧 판결문을 쓰셔야 합니다. 그러니 “이미 결정되어 진행 중인 대형국책사업”이란 말에는, 국가(정부)가 국민적 동의를 얻어 구성되고 정책으로 시행한, 역시 국민적 동의를 얻은 국회를 통과한 뒤의 국책사업이기에 그 자체가 법적 행위이고 사업시행에는 법의 준엄성이 엄연히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나라경제”라고 했을 때는, 죽음으로 내몰려가는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와 존재감의 상실 속에 불안과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청년실업자들의 존재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진행 중인 국책사업”과 “어려운 나라경제”를 법의 준엄함과 지금 현재 많은 사람들의 고통 그 자체로 받아들입니다.

바로 이웃과 친척의 삶에서 매일같이 접하는 삶의 고통이 그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속철도 사업이 그 고통의 해결책이 전혀 못 되는데도 국민이 그렇게 알고 또 믿고 있다면, 그거라도 너무 가련하게 소망하지 않을 수 없다면, 천성산을 살려달라는 스님의 간곡한 호소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태산을 스님도 들어올릴 수 없고 재판장님도 혼자 어깨에서 벗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님, 재판장님이 스님의 기대와 믿음이 허물었다고 그분을 미워하지 마세요. 청년의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더는 그의 글을 옮기지 못하겠습니다.
지난 여름 57일 만에 단식장에 찾아온 문재인수석께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아픈 자식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천성산 문제를 바라봐 달라고.
지금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저는 감히 그들이 정치적으로 희생시킨 천성산의 원죄를 묻지 못하였습니다.

글 : 지율스님
http://www.cheon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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