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편의주의와 심증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지극히 사적인 판결문을 보며

2004.12.08 | 미분류

김종대 부장 판사님께



서울로 올라오는도중 도롱뇽 소송과 내원사 소송의 기각결정뉴스를 들었고 변호사님께 전화를 드려  판결문 전문을 팩스로 받아 보았습니다. 저는 이 판결문 읽으면서 이 판결문을 쓰신 판사님의 고뇌를 백번도 더 헤아려보고 승패를 떠나 최소한 고심어린 판결문을 기대하였던 제 자신에게 공연히 화가 났습니다.

판결의 결과는 이미 한달 전부터 고속철도 공단의 내부 간부회의에서 결과가 통고되었다는 공단 실무자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이후 승소를 확신하는 두번의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화되어 있었지만 성웅 이순신을 쓰신 저자이기도 하셨으며 재판 도중 늘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을 배려하여야한다고 하셨던 판사님이셨기에 최소한 소수의 목소리도 배려하시리라는 내심의 기대에 반했던 서글픔도 제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감히 판사님을 이해한다고 해도 법정에서 재판도중 진행되었던 모든 절차가 무시된 이 결정문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제 마음에는 항고심의 첫 법정을 열며 “이 소송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100년 대계의 역사적 재판”이라고  하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원고측 증인 신청이 있었던 2심 공판(8월16일)에는 재판 심리 중인 상황에서 더 이상 공사를 진행시켜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공사 중지 권고안을 내시기도 하셨지요.

지금도 눈에 선한 – 마지막 심리가 되었던 9월 13일 재판에서는 때마침 증인석에 나온 고속철도 공단의 본부장을 향해 “만일 원고측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피해가 있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느냐”고 물은 뒤 증인석에 섰던 본부장이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답하자 “만일 그 피해가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면 원고측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피해가 발생될  시 그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물으셨지요. 본부장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거리자 판사님께서는 “피해자가 시민들일 수 있고 그 책임을 질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부실한 영향평가 결과를 작성한  고속철도 공단은 이제 더 이상 환경단체가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거나 국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나무라신 후, “양측이 모두 허공에 뜬구름 잡는 것과 같은 이론으로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할 수 없으므로 객관적 검증절차로 법원에서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겠다”고 하셨고, 그 진행을 거부하면 거부하는 쪽에 불리한 판결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도롱뇽 소송의 대변인인 저와 피고인 고속철도 본부장을 법정에 일으켜 세워 법원의 중재하에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를 공언하셨고 그 결과에 양측이 승복하겠다는 서약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 뒤 저희는 법원의 요구에 준해 천성산 구간의 감정의뢰인으로 6명의 전문가를 법원에 제출하였고 법원에서도 현장검증과 환경영향평가의 절차를 밟겠다고 했습니다.

ⓒ2004 오마이뉴스 윤성효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재판을 여기까지만 기록하고 싶습니다.  

58일의 단식 중에 공단, 도롱뇽친구, 환경부가 함께 참여하는 재협의를 약속했던 환경부 장관이 한달 뒤 2박3일의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극적으로 종결된 이 재판과 판결 결과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협의되고 진행되던 그 모든 과정이 무시되면서 돌연, “부실한 영향평가를 인정하면서도 목적에 반하도록 부실하지 않다”고 개발논리에 편승된 모순된 논리를 전개하며 30만 도롱뇽 친구들에 대하여 역사성과 시대성이 결여된 “소유권 수인한도”를 운운하는 궁색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는 재판에 참여하며 느꼈던 저희들의 기대치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도롱뇽 소송의 진실은 공교롭게도 법정에서 대부분 판사님에 의해 주장되어 전달되었습니다. 판사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신 “역사성”과 “환경 역시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공익적 사안”이라는 말만 허공 중에 남아있습니다.

저는 재삼 이 판결문을 읽어보면서 이 판결문은 판사님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판결문이 아닐까하는 외람된 생각을 했습니다.

판결문을 요약하면,



1 환경정책 기본법, 환경 교통, 재해등에 관한 영향평가법, 자연환경보전법, 수질환경보전법등 제 환경법은 사인이 사인에 대한 권리 의무를 규정한 것이 아니므로 이 법률에 의거해 사인이 누리는 이익은 사법적 권리로 관념하기 어렵다는 것과    

2 일부 절차상 미비를 다툴 여지인 사업계획 승인이나 그 진행 경과에 있어 환경영향평가의 실시 및 그에 대한 협의 절차, 기타 관계 법규들이 규정한 협의절차를 미비한 공법상 하자가 있더라도, 신청인들의 사법상 권리에 대한 침해가 없는 한, 그러한 하자가 있다는 점만으로 바로 신청인들에게 민사상의 가처분으로 이 사건 터널 공사의 착공금지를 요구할 권리가 생긴다고 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 그 뒤 판사님께서는 고속철도 공단에서 주장하는, 근거가 불충분한 경제논리를 인용하여 부산 경제활성화 및 국제물류중심 운운하며 막대한 공공의 이익의 침해를 결론으로 도출하고 있습니다.

저는 법률적 식견이 부족한 한 사람으로 30종의 천연기념물의 서식지이며 생태계보전지역이며 습지보전지역 등 10여개의 보전지역으로 묶인 22개의 늪과 39개의 저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터널건설에 대하여 단 한번의 현장검증이나 사실조회 없이 피고측(고속철도 공단)의 자료만을 가지고 역사적 소송을 운운했던 이 소설 같은 재판과 그 결과를 반영한 판결문을 기소편의주의와 심증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지극히 사적인 판결문”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사법부의 의지와 재판진행의 절차를 믿었기에 청와대 앞에서 환경영향평가 재평가를 요구하며 목숨을 걸고 58일의 단식을 견디어 냈으며, 환경부의 2박 3일의 영향평가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궁색한 변명으로 법원의 종결선언이 있은 이후 아득한 심정으로 다시 58+ 단식에 들어가 법원 앞에서 도롱뇽을 수놓으며 날짜를 세는 일을 스스로 잊었습니다.

이제 원고인 30만 도롱뇽의 친구들은 과정을 버리고 오직 결과만을 취한 재판부의 결정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것이며 재판의 전 과정에 대한 녹취록을 법원에 요청공개할 것을 제안합니다. 녹취록을 통해 눈 밝은 이들로 하여금 다시 그 진위를 논하도록 할 것입니다. 도롱뇽 소송은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의 몫이며 차별없는 법적청구는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글 : 도롱뇽 친구 대변인 지율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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