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탐사 세번째,네번째] 오계재 ~ 강정골재

2005.01.05 | 미분류

호남정맥 탐사 3일째
오계재 ~ 30번 국도

팔공산을 지나면서 지역주민의 배려로 압계서원에서 하루밤을 신세졌다. 장수군 산서면 학선리다. 따뜻한 온돌방이었다. 하지만 다음날은 칼끝 같은 바람이 파고드는 오계재에 섰다. 장수군 천천면 장판리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의 경계인 오계재는 억새군락이 넓게 펼쳐져 있다. 사각거리며 바람소리를 전하는 억새군락을 지나, 해발 1114m의 삿갓봉에 오른다. ‘갓‘의 가운데가 깨져 삿갓만 겨우 보이는 플라스틱 표지가 이곳이 삿갓봉임을 알려준다. 사방이 트인 봉우리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왼편에 남덕유산의 남덕유봉과 서봉 등 2개의 봉우리와 오른편에는 장안산이 보인다. 첫날 올랐던 장안산부터 걸었던 길을 더듬어 호남정맥의 능선을 되짚어본다. 벌써 아련해지는 기억들을 능선마다 뿌려놓고 억새 군락과 잣나무 조림지를 지나 정상이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시루봉에 도착. 산불이 잦았던 모양인지 억새군락이 유난히 많다.

유난히 추운 걸음이다. 코끝이 아리고 볼따귀가 얼얼하다.바람을 피해 신광재로 향한다. 신광재는 온통 고랭지채소밭 뿐이어서 황량하기 짝이 없다. 걸음을 휘청거리게 할 만큼 센 바람이 그 텅 빈 공간에 가득하다. 고랭지채소밭 사이로 폐농가와 비닐하우스 몇 채가 있고, 곳곳에 생활쓰레기와 술병, 농약병, 비닐 등이 버려져 있다. 황량하고 추운 신광재를 서둘러 벗어나려고 재촉한 걸음으로 성수산을 향한다.

고개를 넘으니 맞은편 산도 훤하다. 시원하게 밀려나간 산사면, 역시 고랭지 채소밭으로 개간중이다. 밭을 두르고 있는 2.5m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걷다가 좁은 등산로를 만나 성수산을 향한다. 1059.7m의 성수산은 장수군 천천면/ 진안읍/ 진안군 백운면의 경계이다. 삼각점, 스테인레스 표지판이 있다는 것 외에도 성수산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장수와 진안의 경계로 성수산을 넘으면 이제 진안땅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장수 지역민들의 얼굴을 기억하며, 붉은 노을물이 드는 산길을 따라 옥산동으로 내려왔다.

날이 어둑해져서 마을을 따라 30번 국도로 나가는 길. 지나가는 차들은 “쌩~”허니 찬바람만 내며 지나간다. 장수를 떠났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 버스정류장에 인삼을 든 할아버지의 웃는 사진이 환하다. 인삼과 마이산의 고장 진안, 어둑한 하늘 속에 솟은 마이산의 실루엣이 내일을 기다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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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탐사 4일째
30번 국도 ~ 강정골재

어제 성수산을 넘어 진안으로 접어들어 이제, 마이산으로 향하는 길.
30번 국도에서 출발한다.
밭 사이의 폭 2m의 임도를 따라 무덤 곁을 지난다. 50m 간격으로 두 개의 묘가 더 있다.
호남정맥의 능선 한 가운에 자리한 무덤들. 주변의 숲은 리기다소나무의 세상이다. 삼나무 몇 그루와 잡목들이 그 틈에 자란다. 잠시 소나무 군락이 나타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리기다소나무 조림지이다.

멀리서부터 마이산의 두 귀를 향해 여러 각도로 접근하던 중.
헉헉대며 오르막을 오르다가 묘1기를 만났다. 눈을 들어 둘러보니 숫마이봉이 눈앞에 떡 버티고 서있다. 마이산에 든 것이다. 마이산은 진안읍 5개리, 마령면 4개리에 걸쳐 있으며, 국가지정 명승 제 12호로 1979. 10. 16.전라북도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면적은 17.221km이다. 독특한 풍광과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마이산은 일년 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숫마이봉을 돌아 내려가니 은수사에서 염불과 목탁소리가 들려와, 반가운 마음에 걸음이 빨라진다. <지명총람>에 의하면 은수사는 ,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대웅전에서 흐르는 염불과 향내가 그처럼 맑고 정답다. 대웅전 옆으로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사이에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극락전, 태극전, 요사채를 지나 돌과 콘크리트로 정비된 길을 따라 내려오면 암마이봉 왼쪽으로 탑사가 있다.

탑을 한바퀴 돌고 다시 호남정맥의 능선을 오른다. 가파른 바윗길과 돌계단을 오르니 등산로 폐쇄 공고 알림판이 서있다. 자연환경 훼손 탓으로 식생복원을 위해 천황문~ 암마이봉 정상, 천황문~ 물탕골 정상까지 2개구간에 2014년까지, 10년 동안의 휴식을 주는 것이다. 무단침입자에게는 5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린다는 경고도 빨갛게 적혀있다.
인간이 자연에게 주는 휴식, 얼마나 편안한 시간이 될 것인가. 마이산이 어서 건강했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왼쪽으로 돌아 오르는 가파른 길에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무를 깔고 로프를 매어놓았다. 150m정도 지나 오른쪽 숲길로 들면 제 2쉼터가 나온다. 제 2쉼터는 마이산 도립공원의 경계이며 6개의 벤치가 놓여있다. 도립공원의 경계를 따르는 왼쪽 세 번째 봉우리에는 팔각정이 들어서 있고 봉우리를 따라 굽이굽이 하얗게 등산로가 드러난다.

쉼터 이후에는 등산로의 폭이 좁아진다. 2m에서 1m로, 80cm에서 40cm까지, 길이 좁아질수록 사람의 간섭이 없다는 증거일 테니 좁은 길이 오히려 즐겁다. 무덤을 지나고 무덤을 지나고 무덤을 지나 오른쪽으로 북부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산사면이 벌채되었고 주차장과 맞닿는 부분은 절개해 마이산 모양의 관목 조림이 되어 있다. 관광안내도 보이고 옆으로 눈썰매장의 하얀 슬로프가 보인다. 쿵짝거리는 음악이 능선까지 올라와 발밑을 흔드는 듯 하다. 이름난 관광지라 그런지 주변으로 호텔을 비롯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관광의 의미가 유흥과 음주로 버무려져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왼쪽으로 익산-장수간 고속국도 건설현장이 내려다보인다. 터널 예정지로 산 앞에 교량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도로공사. 도립공원 벨트 안까지 파고드는 도로공사의 칼날이 어디까지 찌르게 될까.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도립공원은 온갖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지방 토호세력과 결탁해 불러들이는 대규모 토목건설의 대부분은 도로건설이다. 장수의 산자락을 걸으면서 보아왔듯 도로건설은 산을 망가뜨리는 최대의 적이다.

현장사진을 몇 컷 찍고 나서 길을 따라 걷는다. 묘 1기가 능선 한가운데 버티고 있어 조금 돌아가니 소나무 대규모 벌목현장이 나타난다. 벌목지 아래쪽으로 잘 가꾸어진 묘 12기가 있다. 베어진 나무들의 나이는 29살 전후. 벌목지에 접근하는 2m정도의 비포장 임도는 자동차 바퀴 자욱이 선명하고 토사가 씻겨 내려간 흔적도 있다. 모여있는 묘들은 한 집안의 것으로 묘자리를 더 넓히는 중으로 보인다.

강정골재를 향하는 능선을 따라서도 오른쪽에 네모난 묘 1기, 능선 쪽으로 동그란 묘 1기가 있다. 답사 때 보았던 주화산(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의 분기점)도 공동묘지 건립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지금껏 걸어온 호남정맥에는 유난히 무덤이 많은 듯 하다. 점심 먹기 좋은 장소를 찾아 걷던 중 둥근 무덤 곁의 평평한 터에 앉았다. 양지바르고 바람이 적은 곳이다.

묘지 아래에는 1만여평의 산사면이 농경지로 개간되어 있다. 개간 된 산의 능선 위로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염탐하는 고양이의 귀처럼 쫑긋 솟아 보인다. 점심을 먹고 강정골재로 향하는 길, 산중에 주황색 깃발이 흔들린다. 다가가 봤더니 40×200라고 쓰인 도로건설 현장 표시이다. 아, 이곳까지 도로를 낸단 말인가. 잠시 막막해 지는 마음을 담고 강정골재로 내려왔다. 전주 진안 장수를 잇는 26번 국도, 왕복4차선 아스콘도로가 길게 뻗어있고, 높이 150cm의 중앙분리대가 서있다. 호남정맥 능선을 계속 걷기 위해서는 이 도로를 가로질러야 한다. 시속 100km/s 이상으로 달리는 차들을 피해 4차선도로를 횡단한다는 것은 사람에게도 꽤나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야생동물들에게는 어떻겠는가. 산길을 걸으며 사람의 마음을 본다. 여기저기 닿아있는 간섭의 손길 속에 뭍은 욕심들, 호남정맥을 걷는 것은 그것들의 실체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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