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의 골프장 건설과 마을 사람들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2005.01.10 | 미분류

[1월 9일] –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초록행동
지리산 자락 실상사에서 매서운 아침 바람을 맞으며 버스에 오르는 오늘은 초록행동 7일째가 되는 날이다. 지난밤 지리산에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전경은 어제와 다름이 없다. 하얀 눈밭대신 창문에 낀 살얼음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살얼음은 그 속에 산, 물, 나무, 바다 등 자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살얼음 보다, 그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지리산의 절경은 우리의 마음을 포근한 자연의 품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전남 구례군청이 눈앞에 보인다.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초록행동단이 아침부터 군청 앞에 서게 된 것은 바로, 민족의 영산이라 하는 지리산 자락에 들어서는 골프장 문제 때문이다. 전남 지역은 지리산뿐만 아니라 곳곳에 골프장을 세우려는 계획이 군별로 2~3개정도 씩 예정되어있다고 한다. 이정도면 가히 ‘골프장 천국 전남’이라 불릴만 하다. 시간이 지나자, 마을 주민들과 전남 지역의 환경단체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예정으로는 마을 주민 100여명이 온다 하였는데, 실제 그리 많은 주민들이 오신 것 같진 않다. (나중에 알았지만 마을 주민이 전체 83명이라고 한다.)



초록행동단이 ‘초록행동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초록행동단의 행동 시작을 알리는 노래로, ‘광주출정가’를 고이지선 행동단원이 개사하여 만든 노래다. 노래가 시작되자 주변의 지역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산개해있던 주민들이 다 모이자 대형이 꽤 크게 되었다. 한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주민들을 합치면 그 수가 50명은 족히 넘어 보인다. 마을에서 많이 떨어진 군청에 일요일 오전에 나오기 힘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많은 주민들이 나와 주었다. 아마 초록행동단이 온다는 소식에 더 큰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렇게 많이 나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 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집회를 시작했다.

지리산에 골프장 건설이라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찾아온 현장이지만, 마을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욱 큰 아픔이 느껴졌다. 주민들이 법률적 지식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악용해서 말도 안되는 이유로 83명의 주민 중 20명을 고소·고발하고, 청부폭력을 지시하여 마을의 우리 어머니, 아버지뻘 되는 노인들을 폭행한 업주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의문과 분노가 밀려온다. 한달에 몇 번씩이나 고소·고발로 경찰서를 출입하고 조사를 받는 바람에 농사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이제 하고 싶은 말도 다 못하고 살 수 밖에 없다는 선량한 주민들의 얼굴을 보면서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현장에서 당장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악덕 업주를 규탄하고, 군청 앞에서 군수에게 책임을 묻는 것밖에 없다니… 집회를 하면서 내내 초록행동단 개개인에게 든 생각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집회가 끝나고 사포마을회관에 주민분들과 초록행동단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동안 억울하게 고소·고발을 당한 주민들의 이야기들과 골프장을 짓기 위해 업주가 해왔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들으면서, 더욱 지리산 자락의 골프장 건설을 막아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싸워가는 주민분들을 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누리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마을회관에 모여 피켓을 손수 만들어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고소·고발을 당한 그 분들에게, 초록행동단은 그분들의 그간의 활동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에 돌아가면, 그분들을 위해서 가능한 무료로 법률자문을 해줄 수 있는 법률 전문가를 소개시켜드리기로 약속을 했다. 또한 앞으로 이런 골프장 건설로 인해 피해 받는 제2, 제3의 사포마을과 같은 곳이 생기지 않도록 열심히 활동을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이렇게 약속을 하고, 초록행동단은 가슴 속에 뭉쳤던 기운들을 털어내고 다시 도법스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실상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실상사에 도착하니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다. 도법스님께 죄송한 마음을 안고 살며시 법당의 문을 열었다. 법당 문을 열자, 환경비상시국회의 박영숙, 이정자 대표님을 비롯하여 서울에서 내려온 각 단체 환경활동가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과 함께 도법스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도법스님은 현재 우리 사회에는 반성적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씀하시며 “이 땅의 갈등, 혼란, 대립을 없애기 위해서는 생명에 대해 눈뜨고 가르침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의 진실을 가지고 삶의 문제를 풀어나가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생명·평화의 원리를 강조하셨다. 이 생명·평화의 원리는 초록행동단을 비롯한 환경운동가들에게 따끔하게 다가오는 메시지였음이 틀림없었다.

도법 스님의 말씀이 끝나고, 초록행동단이 그동안 활동들을 사진과 함께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넘어갈 때마다 초록행동단의 지난 활동들이 다시 한 번 가슴 속에 새겨졌다. 특히 힘든 일정 중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행동단 한명 한명의 함박웃음은 오늘 특별히 방문한 활동가들의 가슴 속에 깊은 희망의 불씨로 남았을 것이다.

행동단에 남은 과제
사포마을 주민들과 함께 골프장 건설 업체에 대한 법률 대응 방안 모색
-민변이나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의 법률팀 자문 요청

도움을 주신 분들
사포마을 주민들께서 맛있는 라면과 김치를 점심으로 주셨습니다.
지리산 실상사에서 따뜻한 숙소와 저녁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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