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탐사 5,7일째] 강정골재 ~ 곰재

2005.01.11 | 미분류

호남정맥 5일째
2005년 1월 3일 월요일, 흐림
강정골재 – 가죽재

만덕산 아래 자리 잡은 원불교수련원의 황토방을 떠나야 하는 날이다. 뜨끈뜨끈한 황토방에서 이틀이나 머무를 수 있게 마음 써 주신 교무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왕초’라는 호랑이무늬 개도 함께. 진안군 군하리의 강정골재에 도착하니 씽씽 달리는 차들이 내는 바람이 겨울바람보다 더 차가워 마음이 다 시리다. 도로 옆 절개면 앞쪽에 환경청에서 세운 표지판이 있는데, 절개지 바로 앞에 숲을 사랑하고 보호하자는 내용이 담겨있어 우습게만 보인다. 오른쪽 마이종합학습장으로 오르면, 산을 깎아 지은 건물과 넓은 운동장이 있다. 집이 두 채 뿐인 마을 위쪽은 벌목이 이루어졌는데 이른 아침부터 포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나무 옮기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어디서나 탐사대의 발목을 잡는 훼손의 현장들.

군상제(堤)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부귀산 이정표를 보고 다시 걷는다. 진안군 부귀면과 진안읍에 걸쳐있는 부귀산(富貴山)은 그 이름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시계가 좋지 않아 정상 아래의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따라 걸었다.

길을 따라 맹감나무 열매를 먹은 야생동물의 똥이 여러 차례 보인다. 만나는 똥마다 반가웠는데, 동물들이 다니는 길이어서 일까 능선에서 오래된 올무를 발견했다. 얇은 철사로 만들어져 멧토끼처럼 작은 동물을 잡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가까운 거리에 두 개의 올무가 더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나무를 꽉 죄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꽁꽁 언 손으로 잘 풀리지 않는 올무를 기어이 풀어내고 질마재로 향한다.

질마재에서 가죽재로 이어지는 곳은 온통 리기다소나무뿐이다. 20-30년 전 산림녹화 사업으로 만들어진 숲의 모습이다. 조림이 이루어진 숲은 활착률이 좋은 속성수로 리기다소나무, 일본잎갈나무, 잣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조림을 하게 되면 하층식생이 발달하지 못하고 토양이 물을 많이 저장할 수 없어 숲이 건조해 진다. 단일 조림을 했을 때, 생태계의 다양성이 깨진다는 것도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 숲이 더 다양한 모습으로 여러 생명들을 품게 되기를 마음 모으며 가죽재로 내려선다.

26번 국도와 만나는 가죽재는 왕복 4차 아스콘 도로가 가로지르고 도로건설로 산사면의 절개지가 심하게 드러나 있다. 지원차량을 만나 숙소로 이동하는 도로는 계속 26번 국도로 이어지는데, 도로를 따라 산사면이 모두 벌채되어있고 심한 절개지가 계속 이어진다. 도로 위를 지나가며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지금 숲 속에는 동화 속 옹달샘도 신비로운 나무할아버지도 남아있지 않다. 숲과 사람이 화해와 평화의 길로 가는 날은 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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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1차탐사 마지막 날
2005년 1월 5일 수요일,
소한(일기예보에서 오전에는 춥다가 오후쯤 날이 풀린다고 한다)
가죽재 – 곰재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의 분기점인 주화산을 지나는 날이다. 1차탐사의 마지막 날, 이제 오롯한 호남정맥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동통신중계탑이 서있는 가죽재에서 출발해 산불감시초소에 올랐다. 바람이 셀 때 산불감시초소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 깨진 창문과 지붕, 플라스틱 의자, 떨어진 문짝 등이 널부러져 있다. 주변에 둥글게 돌이 쌓여있어 옛적에는 봉화대로 이용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만큼 주변 봉우리들 중 가장 높아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데, 아래로 향하는 시선에 큰면적의 절개지가 잡힌다.

모래재휴게소로 내려오는 임도에 통행금지 안내문이 서있다. 성만공원묘지 조성공사로 2004. 10 ~ 2005. 6. 30까지 통행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 올렸을 지층의 단면과 먼지 날리는 공사현장을 눈과 마음에, 사진과 영상으로 담으며 내려왔다.

휴게소 앞에서 점심을 먹고 공원묘지 반대 주민대책위 분들을 만났다. 1년여 동안 공사장 앞 컨테이너에서 자리를 지켜왔던 주민들은 그동안의 과정과 공사의 부당함에 대한 이야기를 절절히 털어놓으셨다.

경사도가 심하고 암반층이 두꺼워 공원묘지에 적합지 않은 지형이며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고려해도 적당치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장의 허락에 의해 주민동의 없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12월 7일 금산지역 공동묘지가 무너진 사례를 지켜보며 그보다 더 경사도가 심하고 암반이 많은 공사지역에 대한 불안감까지, 주민들의 이야기는 정치인과 언론,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던 시민단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탐사대를 안타깝게 했다. 곰치까지의 일정을 고려해 저녁시간의 만남을 약속하고 모래재를 뒤로 했다. 맞은편 능선에 오르니 공원묘지의 공사현장이 훨씬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호남정맥의 상처를 오랫동안 바라보고는 곰치로 향했다. 신작로 건설 전까지 진안-전주간의 주요 교통로였다는 곰티재 안내판 옆으로 허리높이의 녹슨 철제 울타리가 이어져있다. 오래전 목장의 경계로 쓰였던 것인데 넘어지지 않게 곁에 있는 나무에 철사로 꽁꽁 매어놓았다.

오래되어 녹슨 철사가 나무속으로 함몰되고 있어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고 있다. 울타리 곁에는 이미 죽은 나무도 여럿이고 야생동물이 이동하기에도 힘겨워 보인다. 숲에 사는 생명들을 생각한다면, 이용하지 않는 구조물에 대한 관리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어지러운 걸음을 이어 임진왜란 때 분투했던 조상들을 기리는 웅치전적비에 도착했다. 첫 탐사의 마지막 지점인 웅치전적비 앞에서 호남정맥을 위한 탐사대의 마음을 다졌다. 지켜야 할 것을 위해 목숨까지 걸어 내놓은 뜨거운 마음 위로 탐사대의 걸음을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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