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 밀렵방지캠페인

2005.02.24 | 미분류

I. ‘경상북도 봉화군’으로 출발
2월 19일 늦은 오후 바람은 차고 하늘은 찌뿌둥했다. 도착예정지에 눈이 많이 쌓여 잠시 차량정비를 하고 온다는 소식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났지만, 그것도 잠시. ‘무언가를 하고 오겠다’는 애초의 다짐과 의무감이 나를 휘어잡았다.



우리 봉고차에는 총 9명이 탔는데, 침낭과 묵직한 배낭들이 곳곳에 위치해있어 비좁은 느낌이 들었다. 밤 11시 이전에는 그곳에 도착해야했기 때문에 서둘러 고속도로를 달렸다. 벌써 해는 저물어서 차들의 불빛행렬만이 차창 밖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단양휴게소에 들러서 우리일행은 간사님이 준비해온 치즈, 참치김밥을 둘러앉아 먹으면서 살짝 웃음꽃을 피웠다.

다시 차에 올라타 서재철 국장님을 태우기 위해 영주로 향했다. 유리창은 이미 얼어붙었고 영주에서 봉화까지 1시간정도를 더 달려 드디어 청옥산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세상에! 그곳은 펑펑 내린 함박눈의 축제를 연상케 했다. 눈이 수북하고 길이 미끄러워 휴양림 바로 앞까지 차를 가지고 가려는 노력은 실패했다.

II. 휴양림에 모인 사람들
휴양림에는 다른 팀들도 와있었다. 다들 짐을 풀고 박그림 선생님의 슬라이드 강의를 듣기 위해 큰 방으로 모였다. 1시간가량 진행된 자연과 야생동물에 관한 그분의 강의는 무척 감동적이어서 방에 모인 사람들만 듣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시간이 늦어져서 나는 새벽2시가 되어 잠이 들기 시작했는데 방 너머로는 유쾌한 말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녹색연합 식구들의 명절 같은 분위기가 밤새 청옥산에 입김을 불어넣듯 훈훈하게 퍼져나갔다.

III. 밀렵방지캠페인 시작


2월 20일 새벽 6시 30분. 눈을 뜨니 세면하러 가는 사람과 이불을 걷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와는 달리 따뜻한 방과 이불의 유혹을 뿌리치고 비몽사몽간에 산에 갈 준비를 마쳤다. 식당에서 한식부페로 배불리 식사를 한 후에 편성된 각자의 조원끼리 뭉쳐 목적지로 향했다.

8시 30분쯤. 한산한 도로중턱에 차를 세우고 야생동물들이 많을 것 같은 산을 찾아 3보 간격을 유지하면서 산을 올랐다. 가끔 등산을 하는 나에게 이런 험한 코스는 난생처음이었다. 잘 닦아 놓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등산의 전부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20~30cm로 푹푹 빠지는 길 없는 눈산을 숨차게 올랐다. 그러다가 내 손으로 올무를 수거하고 돌아올 거라는 마음보다는 힘들고 춥고 옆에 낭떠러지로 떨어질까 무섭고 낙오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두시간쯤 지나 양지바른 곳에 짐을 풀고 5분정도 간식시간을 가졌는데 힘들어서 그다지 먹고 싶은 상황은 아니었다. 나중에 들으니 나만 힘든 게 아니고 다른 사람도 다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중간 중간 눈바람이 세차게 불고 나뭇가지에 모자가 3번이나 걸렸다. 걷는 도중에 어디론가 총총 뛰어간 토끼 발자국과 토끼 똥을 발견했으나 올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아쉽고 속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산이 안전하다는 판단에 마음이 놓이기도 하였다. 야생동물과 친구가 되어보는 시간은 이렇게 힘들었다. ‘이곳에 와서 보니 동물들이 겨울을 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겠죠’ 하시던 서국장님의 말씀, 내 몸 하나 지탱하기도 힘든데 촬영카메라로 우리조의 전 과정과 모습을 담으신 EBS 변종석PD님, 끝까지 나와 내 동생을 신경써주셨던 멋진 부부(녹색친구들 1호선장님 부부), 우리처럼 청바지를 입고 와 고생 심하게 했을 것이라 생각되는 박하재홍님 등등. 모두 잊지 못할 기억이다.

오후 3시. 산을 내려와 무작정 들어간 낯선 가정집의 아주머니께서 우리일행을 맞아주셨다. 그 집에서 먹은 라면 한 그릇에 행복함을 느끼면서 긴장된 몸과 마음을 녹였다.

IV. 마치며

모든 일정을 마치고 캠페인에 참가한 34명의 사람들이 집결했다. 단체사진을 찍고 수거한 올무를 본부 차에 실었다. 저녁은 녹색친구들 김정윤님의 풍기에 있는 과수원집에서 먹기로 했다. 해가 저물고 모닥불에서는 연기와 고기 익는 냄새가 마당 가득 넉넉해졌다. 2월 겨울의 찬바람이 스칠 때마다 소주 한잔이 옆에서 옆으로 돌고, 어두운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거릴 때마다 다같이 풀리는 기쁨. 미래의 푸르른 산을 기약하는 마음이 모여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었던 날이었다.

글 : 김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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