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걸음은 생명의 거름!

2005.03.07 | 미분류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몸의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 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 브루통의 <걷기 예찬>중에서

길 잃고 헤매다 기러기 마을에 다다르다.

저녁 늦게 김제에 도착하여 시내버스를 타고 심포로 향한다. 먼저 도착한 일행과 통화하고 남하마을에서 내린다. 아무리 봐도 근처에 바닷가는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잃었구나! 남하가 아니라 안하란다. 어느 술취한 아저씨께 물을 묻자 가만히 쳐다보기만 한다. 데리러 온단다. 고맙다. 어두운 밤하늘에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저 새들은 이렇게 어두워도 길을 잃지 않는구나. 기러기보다도 못한 놈이다. 일행의 차를 타고 심포의 안하마을로 간다. 안하(鴈下), 기러기 아래 마을에서 처음 만났지만 왠지 낯설지 않는 일행들과 어우러져 막걸리 한사발과 함께 지역어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농민들은 경운기와 트랙터로 도로도 막아불기도 하고 서울까지 가는디.. 우리 어민들은 배를 들고 갈 수가 없응께. 무신 힘이 있것어. 인자 여기도 인심이 예전같지 않어. 예전엔 돈읍다 해도 500만원 기냥 빌려줬는디.. 요즘은 5만원 빌리기도 힘들당께. 새만금 막히고 모두덜 은제 떠날지 모르니.. 그러제..”

누구하나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힘없는 어민들의 가슴 답답함을 달래주는 것은 막걸리 한 사발과 시큼한 배추김치 뿐이다. 요가를 통해 그 날의 피로를 풀지만, 어민들의 한숨소리에 가슴한 구석의 찜찜한 마음으로 내일의 걸음을 위해 잠들다.

광활한 논과 갯벌 사이를 가르는 방조제 위를 걷다.

왼쪽에는 광활한 김제벌판의 논들이.. 오른쪽에는 광활한 새만금 갯벌이.. 두 생명의 땅을 긴 방조제가 갈라놓고 그 사잇길을 우리는 걷고 있다. 생명들은 다 소중한 것인데.. 누구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가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갯벌의 생명체를 죽일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저 멀리 계화도가 보인다. 지금 계화도지역은 현재 갯벌에 있는 뭇생명들의 소리에 가장 귀기울이고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계화도 지역 어민들을 중심으로 갯벌의 뭇생명들을 대신해서 싸우고 있다.  

“어민들이 살아야, 갯벌도 사는 것이여, 어민들과 백합, 짱둥어는 같이 살고 죽는 것이여, 백합과 짱둥어는 말을 못항께, 우리가 대신해서 싸워야제.. 근디 어민들조차 그것을 모릉께.. 가슴이 답답허지..”

이런 가슴 답답함에 바닷길 걷기를 한다면서 계화도 고구마(고은식씨)님은 말한다. 삼국시대 기벌포라고도 불리웠던 이 지역은 기벌포 전투로 유명하다. 전투처음에는 신라 해군이 패하였으나, 이어 크고 작은 22번에 걸친 싸움 끝에 신라군은 당나라 해군 약 4,000을 죽이고 승리하였다. 기벌포 전투를 떠올리며 새만금의 생명을 지켜내는 싸움도 결국 이길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기벌포싸움 (伎伐浦)
676년(문무왕 16) 소부리주(所夫里州)의 기벌포 앞바다에서 신라와 당(唐)나라가 벌인 해전. 676년 11월 설인귀가 이끄는 병선이 기벌포를 침범하자, 사찬(沙飡) 시득(施得)이 이끄는 신라 함선이 이를 맞아 싸웠다. 이 싸움은 670~676년의 7년간에 걸쳐 벌인 신라의 대당(對唐)전쟁을 승리로 장식한 마지막 대회전이었다.

정부의 개발안은 물론 일부 환경단체의 대안개발안에도 어민들과 갯벌의 뭇생명들의 소리는 담겨있지 않다. 가장 시급한 것은 어떻게 새만금을 잘 이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4공구를 터서 일단은 살리고 보는 일이다. 생명은 죽으면 건전지를 갈아끼우는 기계가 아니다.

그냥 냅두는 것이 제일 큰 보호여!

“새만금을 막으면서 죽뻘이 쌓여가지고 여름에는 모기와 하루살이 새끼들 땜시 일을 못한당께, 한 여름에는 대형 선풍기 안 틀어노면 일을 못해. 모기땜시..어민들은 복합산업단지고 비행장이고 뭐고 누가 만들어달라고 했나? 지들이 다 베려놓코,, 피해는 우리 어민만 보는거지..우린 그런거 없이도 잘 살았는디.. 그냥 냅뒀으면 좋겠어..바다도,, 갯벌도,, 어민도.. 그냥 냅두는 것이 제일 큰 보호여~”

칠게잡이라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다. 그래서 방조제 옆 갯벌에는 아주 많은 칠게잡이 통이 놓여있다.

천성산 뚫지 말고, 새만금을 뚫어라.

바닷길 걷기 마지막 날, 계화도에서 해창까지 가는 길.
몇 해전만해도 장신포 일대는 고운 모래사장과 소나무 숲이 있어 해수욕장으로 개발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막힌 새만금 방조제 때문에 고운 모래사장이 뻘로 뒤덮여가고 있다.

해창가는 길에 가무락 조개를 캐는 어민들이 보인다. 갯벌도 살아 숨을 쉬는 데 물살이 세면 자연스럽게 뒤집어져 그 갯벌이 숨을 쉰다. 그러나 새만금을 막은 지금 물살이 약해서 갯벌이 뒤집히지 모하고 쌓여가기만 한다. 갯벌이 저만큼이라도 살아있는 것은 어민들이 조개를 잡기 위해 뒤엎기 때문이지 않을까? 갯벌로 들어가면서 생긴 깊은 갯벌의 발자국만큼이나 어민들의 삶의 시름도 점점 깊어져 간다.

바람모퉁이를 돌아 드디어 해창갯벌에 도착.
해창갯벌의 장승들은 세찬 바람과 파도에도 끄덕없이 아직도 서서 일행들을 반겨 주었다.
7일동안의 걷기동안 아무 사고 없이 지켜준 갯벌의 뭇생명들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큰 절을 올린다. 바닷길 걷기는 앞으로 계속 될 것이다. 새만금 생명을 살릴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걸음이 생명의 거름이 될 수 있도록..

천성산 뚫지 말고, 새만금을 뚫어라.
진정 뚫어야 할 것은 우리들의 마음구멍이다.
새만금 막지 말고 천성산을 막아라!
진정 막아야 할 것은 우리들의 욕심구멍이다.
걷기는 느리게 가는 것이다.
걷기는 함께 가는 것이다.
더디지만 사람생각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임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의 걸음은 생명의 걸음이다.
우리의 걸음은 생명의 거름이다.

여러참가자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글 : 최위환 자연생태국 활동가

배경음악 <우리는 하나> – 범능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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