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굴뚝에서 연기 피워 올리는 삶의 은근한 모습들을 만나다.

2005.03.09 | 미분류

4차탐사 둘째셋째날, 굴재에서 내장산까지

우연한 기회로 녹색연합과 인연이 닿아 주말 이틀 동안 호남정맥 조사에 같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겨우내 방 안에서 웅크려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산길을 오르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갓 내린 흰 눈으로 온통 덮여있는 우리의 산과 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말없이 지키고 있는 여러 이름들의 나무와 짐승들, 그리고 인간의 집들을 마주치게 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아직 이파리 없는 가지들만을 내어놓고 있는 나무들은 작고 뾰족한, 그러나 생명의 붉은 빛을 가진 새순들을 밀어 올리며 다가올 봄을 준비하고 있었고, 산짐승들은 눈밭에 어지럽게 찍어놓은 발자국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산행 중에 마주치게 되는 인간의 흔적은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수많은 고난과 아픔의 역사를 견디고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터전을 지키면서 산과 들에 기대어 꿋꿋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눈물겨웠습니다.

인적이 뜸한 작은 산골 마을엔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 채 되지 않는 집들은 구석구석 사람의 손이 닿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고 땔감으로 쓰는 장작은 마당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눈 덮인 지붕과 토벽의 흙빛, 그리고 집 뒤편의 푸른 대숲은 뒤켠의 산세와 어울려 아늑한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이 인간과 자연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저는 산행 도중에 만나게 되는, 굴뚝에서 연기 피워 올리는 삶의 은근한 모습들이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호남정맥의 주능선을 따라 하루 십수 킬로미터씩을 가야 하는 산행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저와 같은 사람은 대열을 따라가기에 좀 바빴습니다. 이틀을 그렇게 걷고 집으로 돌아와 편한 곳에서 쉬는 저와 달리, 녹색연합의 식구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이른 아침에 가방을 짊어지고 험한 산길을 오를 것입니다. 고생스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 호남정맥 조사팀에게 멀리서나마 다시 한 번 응원의 말을 전합니다. 힘든 산행과 생태 조사를 함께 하느라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가끔씩 한숨을 돌려가면서 우리의 삶을 정신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지탱해주고 있는 우리의 산과 들의 아름다움을 많이 담고 오십시오. 그리고 무분별한 개발과 훼손의 흔적들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와중에도, 산과 산의 틈틈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말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과도 많이 마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사고 없이 건강하게 돌아오시라는 말씀을 전하며 서툴고 짧은 글을 마칩니다.

글 : 현준



경칩에 내린 대설로 온 세상이 하얗던 3월5일(토)과 6일(일)에는 전라북도 부안과 고창에서 군복무를 하고 계시는 보건지소장 세 분이 호남정맥 환경탐사에 함께 하였습니다. 미소가 멋진 현준 님은 군복무가 끝나면 부안군 위도에서 의술을 펼칠 예정이시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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