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이제 전라남도가 지척이다.

2005.03.11 | 미분류

4차탐사 넷째 날, 순창새재에서 강두마을까지

부재 : 보고싶다 ‘에말이오’ 얼릉 돌아와라.

[함께한 이]
서재철(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 대장), 정혜경(광주전남녹색연합 대표 ; 시냇물), 정은실(광주전남녹색연합 자연생태부장 ; 애기똥풀), 하정옥(광주전남녹색연합 움직이는숲학교 교장 ; 애벌레), 김선희(광주전남녹색연합 협력간사 ; 애물단지 또는 소머즈 ), 한진수(광주전남녹색연합 녹색사회부 활동가 ; 달바람)

[지원팀]
김준(녹색친구들 부등반대장 ; 애터져), 황완규(녹색연합 자연생태국 자원활동가 ; 바이킹 또는 시인)

2005년 3월 7일 월요일 아침 8시, 고창군 신림면 보건지소를 나서는 몸이 무겁다.
지난 호남정맥 1차탐사에 이어 이번 4차탐사 기간(7-9일) 사흘 동안 탐사대에 합류하기로 한 첫 날,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쩔쩔 끓는 방이 너무 더워서인지 잠을 설치는 바람에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그래도 어쩌랴?!? 대가마을까지 가는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에라도 잠시 눈을 붙이기로 마음먹고 차에 몸을 실었다. 10시가 조금 못되어 대가마을에 도착하였다. 잠깐 동안이지만 눈을 좀 붙였더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 하다. 차량지원과 숙소섭외를 책임지기로 한 애터져와 바이킹을 보내고 탐사대는 ‘아자아자’를 외치며 출발!!!

녹다만 눈 때문에 질척질척한 길을 따라 10분 남짓, 개울 몇 개 건너고 나니 순창새재다. 오늘의 탐사는 여기서부터.

순창새재에서 상왕봉으로 가는 길 중간에 아직 녹지 않은 눈 위로 여기저기 조그마한 발자국들이 보인다.



    

    

족제비, 너구리, 토끼란다. 애벌레가 여우발자국이라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순진한 나와 정혜경 대표님은 속고 말았다. 처음으로 접하다 보니 당연하다. 여우발자국도 보고 운이 좋은 날이라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산행이 끝나고서야 속은 걸 알았다. 그럼 그렇지, 여우라니…. 남한의 산에서는 이미 개구리 반찬에 밥 말아먹던 야생여우는 찾기 힘들다고 한다.

다시 한 시간쯤 걸었을까, 11시 조금 넘어 상왕봉에 도착했다. 우리는 지친 다리도 쉬게 할 겸, 풍광도 감상할 겸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상왕봉은 백암산의 최고봉으로 정읍시, 순창군, 장성군의 세 개 시․군의 경계점이다. 멀리보이는 능선 오른쪽이 전라남도, 왼쪽이 전라북도이다. 이제 우리는 전라남북도의 경계를 따라 걷는다.

도장봉을 지나 내리막으로 접어들자 멋지게 휘어진 소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그다지 우아하지도, 위엄 있어 보이지도 않았지만 길 한 켠 벼랑 끝에 홀로 자리를 잡은 모습이 제법 고고하다.

729봉의 헬리포트를 지나 널찍한 양지에 자리 잡고 점심을 먹고 나니 1시. 목적지인 밀재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충분히 쉬었고 배도 부르다. 내딛는 걸음에 기운이 실린다. 그러나 마음만 앞설 뿐, 여기서 곡두재까지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이다. 녹다만 눈이 지난 밤 다시 얼어서 길이 미끄러운 탓에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럽다.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급경사에서 로프를 잡고 내려오다 손이 미끄러져 바위에 머리를 부딪쳤다. 묵직한 통증과 함께 눈앞으로 돌가루가 날린다. 넘어지면 구르고 깨져서 다치는 것도 문제지만 ‘영장류 진화의 정점에 서 있는 종으로서의 자존심’이 땅에 손을 짚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두 발로 걷는 동물이다.

미끄러져 넘어질 뻔한 것이 수십 차례, 주변의 나무에 의지해 겨우겨우 넘어지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깎아지르는 듯한 경사를 따라 얼마쯤 갔을까, 사유지인 듯싶은 철제 울타리가 길을 끼고 이어진다. 골두재이다.

갑자기 대장이 일이 생겨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해서 산행 도중에도 내내 통화를 하는 것 보고 ‘역시 국립공원이군, 산 속에서도 안테나가 세 개나 뜬다’라고 싱거운 생각을 했었는데 뭔가 일이 생기긴 했나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오늘 밤 우리가 묵을 숙소가 있는 감상골재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가야한다. 이미 시간이 꽤 흘러버려서 당초 목표했던 밀재까지는 무리지만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무릎 통증 때문에 계속 걷기가 곤란한 정혜경 대표님은 먼저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준비하기로 했다. 산행이 처음인데 탐사대의 일정에 맞추느라 어제 오늘 너무 무리를 한 탓이리라. 출발할 때 6명이던 일행이 4명이 되었다. 우리는 속도를 좀 더 내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속도를 내면 뒤쳐지는 것은 항상 나의 몫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힘을 냈지만 결국 앞의 동료들과 20여 미터나 차이가 나고 말았다.

힘들게 오른 대각산 정상, 저 멀리 장성호가 보인다. 이제 전라남도가 지척이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다시 걷는다. 해가 지려면 채 두 시간도 남지 않았다. 땀으로 젖은 얼굴을 바람이 시원하게 닦아준다.

글 : 한진수 (광주전남녹색연합 녹색사회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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