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민초들의 삶을 이어주던 옛길을 만나다.

2005.03.28 | 미분류

호남정맥 4차탐사 일곱째 날,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을 가르는 천치재에서 출발하여 가막골과 강천산을 감아 돌아 남쪽으로 가는 지점이다.

천치재 주변은 포도 과수원과 농장이 자리 잡고 있다. 천치재에서 조금만 오르다보면 임도로 들어서기 전까지 벌목이 심하게 되어 있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 532봉을 만나기 전에 출입통제가 되어 있었다. 가막골 야영장 관리사무소 바로 위쪽으로 지나는 임도는 보호관계로 통제가 되어 있었다. 이 임도는 용추봉에 올라서서 보니 순창 복흥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7부 능선을 따라 길을 재촉하면 가막골 야영장 등산로로 이어진다. 이 구간의 마루금은 바람님이 선선하게 불어온다. 잡목과 가시덤불이 우거진 마루금을 지나다 보면 가막골 야영장과 연결된 여러 갈래의 등산로와 임도가 어지럽게 연결되어 있다.

이 임도를 건너 오르면 591m의 안내판이 있는 ‘치재산’ 정상이다.
용추골과 치재골, 가막골 같은 골짜기가 많이 보인다.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하는데, 서재철 대장님이 ‘아침녁에 먹는 사과는 보약’이라며 쪼갠 사과를 건네었다. 출입 통제된 곳에서 연결된 임도를 앞에 두고 벌목이 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파헤쳐진 임도 주변 곳곳이 벌목현장이다. 잘려진 소나무의 나이테를 보고 있자니 미안함으로 가슴이 미어져 온다.




멀리서 보면 소갈머리가 없는 것처럼 벌거숭이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용추봉’에 올랐다. 560m 고지에 오르니 어제 지나온 추월산과 담양호가 한 눈에 들어오고 너머로 강천산이 어슴푸레 내다보인다. 바로 아래로는 가막골 야영장 진입로와 용추사로 들어오는 포장도로가 능선을 넘어가고 있다. 마루금을 타고 내리막길에 나타난 임지에 머물렀다. 점심식사를 위해서 걸음을 멈춘 것이다.

대장은 정리와 다음 진로를 확인하고 있고, 애기똥풀(은실)은 뭔가를 찾고 있다. 아마도 아까 보았던 나무이름을 찾고 있나보다. 선희는 쉬고 있고, 애터져와 석준이가 라면을 끓이며 점심 준비가 한창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어제 합류한 신참(?)이 준비를 해서인지 밥그릇을 빠뜨렸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반찬통 덮개를 그릇 삼아 맛있게 먹는다.

용추봉을 기점으로 마루금은 이제 완전히 남쪽으로 고개를 튼다. 내리쬐는 햇살을 벗 삼아 소나무 숲길을 따르다보면 508.4봉을 지나게 되고, 길은 암릉으로 이어진다. 암릉을 지나 다시 숲길과 능선을 지나면 수종갱신을 위해 벌목과 조림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참나무 몇 그루만 남기고 다른 나무는 베어있었고, 월정마을이 지척인 상황에서 뒷산을 수종갱신을 위한 벌목의 현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을로 내려오다 보면 오정자재까지 넓은 밤나무 과수원이 차지하고 있다. 밤나무 과수원 위쪽으로 농약의 흔적이 있었다. 밤나무에 살포했을 것이고, 바로 아래에 저수지가 있고 이 물은 마을로 흘러 내려갈 텐데 걱정이 되었다.

오정자재 직전에 씨농장이 있는데 커다란 사료화공장이 있고, 수십 마리의 개들을 사육하고 있다. 산 아래쪽으로 ‘시험포’(농촌진흥청 지원으로 종묘 등 시험 개발하는 곳)가 한창 준비 중이었다. 오정자재에 이르러 본부의 신입활동가 현장평가팀이 합류하였다.




담양과 순창을 경계 짓는 792번 지방도 오정자재를 건너 마루금은 다시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친다. 농장의 울타리에는 “출입할 경우 상습 절도범으로 간주함”이라는 경고문이 적혀있다. 해골 표시로 된 출입 경고판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돈이 무섭다. 밥벌이를 위해 타인의 생명을 저리도 쉽사리 파괴하려 할 수 있다는 게 무섭다. 이런 인간의 무서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훨훨 나는 나비를 보고 있자니 다시금 봄이 찾아온다.

520봉을 지나 내려오는 길은 지그재그로 되어있는데 이런 길은 보기 드문 ‘옛길’이란다. 현재까지의 호남정맥 구간에서 보기 드물었던 옛길이다. 예전부터 보부상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순창으로 넘어가는 주요한 길이었으리라.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이러한 길들이 고을과 고을을 잇는 주요한 길이었는데, 도로가 생기면서부터 이런 옛길은 말 그대로 ‘사라지는 옛길’이 되어버렸다. 민초들의 삶이 이어지는 길이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 이런 길을 찾고 보전하는 것이 호남정맥 탐사를 하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왕자봉을 300m 앞두고부터는 더더욱 평이한 길이다. 오전에는 조림과 벌목 현장이 눈에 들어왔는데, 오후에는 거의 없고 따스한 봄기운마저 밀려와 지루함마저 든다. 어찌 생각하면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사람처럼 조바심이 난다. 참으로 우매하다. 특이사항이 없는 것이 당연히 좋은 것이고, 상처 없이 보존되어 있는 곳만 있다면 자연에게 미안함이 덜 할 것인데 말이다.

왕자봉에서 내리막길로 내려오니 강천사다. 아름답던 강천사 계곡이 흙탕물로 변해있고, 계곡 주변에는 정비공사로 심하게 파헤쳐져 있다.




강천사가 자리한 순창은 예로부터 ‘절의節義’의 고장이라 일컬어진다. 강산이 파헤쳐지고 있는 세상에서 節義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절의탑 옆으로 아름답게만 흐르던 강천사 계곡을 그대로 보전하여 자연상태로 유지해가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이 시대가 원하는 節義가 아닐까? 절의의 터 순창에서 호남정맥을 만나 가슴이 뛴다. 가파른 산을 오르니 숨이 차서 뛰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하늘에 닿고 물을 내려 아래동네 사람들의 삶터를 일궈주고, 민초들의 삶을 이어주는 큰길인 호남정맥을 만난 기쁨에 가슴이 뛴다.



글 : 박필순 (광주전남녹색연합 시민참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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