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의 밤

2005.07.12 | 미분류

호남정맥환경실태조사 발표회에 함께하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서대구공단의 잿빛이 장마철 흐린 날씨와 더불어 암울함을 자아냅니다. 지리산휴게소의 88고속도로 준공기념비는 섬뜩한 날카로움을 뽐냅니다. 멀리 반야봉의 후덕함과 대조적입니다.
광주에 도착합니다.

저녁 7시에 발표회는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의 강행군이 슬라이드쇼를 통해 되살아납니다.

진안에서 수많은 덫을 제거하던 손길과 모악산의 위엄 있는 산세, 고당산을 오를 때 만난 눈보라, 제암산의 통과하기 어려워 무시무시했던(?) 철쭉군락의 모습들이 뇌하수체 깊숙이서 다시금 꺼내집니다.
사회에 다시 돌아와 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호남정맥탐사였습니다. 처음에 병장휴가 때 군인의 신분으로 얼떨결에 참여했고, 금요일 수업 빼고 광주행 고속버스에 헐레벌떡 몸을 싣기도 했습니다. 진안, 정읍, 순창, 광주, 장흥, 보성을 지나면서 어느새 제 등 뒤엔 군장 대신 배낭이, 손에는 총 대신 캠코더가 들려 있었고, 군바리에서 민간인으로 바뀌었고, 눈꽃 대신에 진달래, 얼레지가 함께하였습니다. 호남정맥 마루금을 걷는 일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했으며, 지리학도로서의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반가운 이들이 보입니다. 그들은 나이, 직업, 성별을 떠나 산에서 어느새 벗이 되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걸은 마루금에 우리의 추억이 온전히 녹아있습니다.
이날은 또한 광주전남녹색연합 5주년 기념일이기도 했습니다. 지역과 밀착한 그들의 활동은 우리사회의 한줄기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지는 농.도공동체실현의 노력에 건투를 빕니다.

흙피리 연주와 진도 아리랑의 판소리도 이어졌습니다. 흙과 공기가 만들어내는 공명과 흥겨운 남도가락이 호남정맥 산줄기의 흐름과 닮아 있습니다.

이번 탐사로 우리 땅의 아픔과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는 호남정맥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동식물들의 길과 서식지는 이리저리 잘려져 단편화 되어갑니다. 한때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분포하다 인간에 의해 플로리다 반도에 고립되어 근친교배로 멸종된 플로리다 팬더의 경고를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한반도 생태축으로서, 인문환경요소의 경계로서, 민초들 삶의 터전으로서 호남정맥의 힘을 되살려주어 보다 건강한 우리 땅이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들의 노력의 결실이 드디어 값진 열매를 맺었고, 호남정맥 재조명과 복원의 첫발자국으로서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줍니다. 이제 우리의 실천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글 : 호남정맥환경탐사대원 우동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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