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생태학교] 알딸딸공주의 후기

2005.08.25 | 미분류

‘갈까 말까? 가고는 싶은데 과연 내가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좀 되었다. 여름휴간데 늘어지게 늦잠 자고 편안히 쉬고 싶은 생각이 날 유혹해왔다. 한편으로 ‘다음 기회가 또 있겠지’ 하면서 미루면 영원히 참가하지 못할 거 같은 생각도 들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생!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매우 즐거웠고 많이도 웃었다.

일산에서 버스를 타고 양재역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출발 1시간이나 늦은 8시 30분이었다. 내가 버스에 타자마자 출발을 했고, 늦은 미안함에 약간은 쭈뼛했지만 자리를 잡고 앉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여기 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경남 산청으로 내려가는 길, 자다 깨다를 하다보니 어느덧 덕산(시천면 소재지)에 도착해 대전에서 온 민규를 태우고 부산팀을 태우고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유난히 밤나무가 많은 동네구나. 가을엔 밤 주우러 와야지’ 하면서.
베이스캠프에 짐을 부리고 다함께 소개를 시작하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까 생각하면서도 참가자들 얼굴 보느라 얼결에 난 건강한 삶에 관심이 있어 참가하게 되었다고 말을 했고, ‘맞아.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잊고 있었구나’ 느끼기도 했다. 축구선수와 이름이 같다는 분, 여자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어서 참가하게 됐다는 깜찍한 분도 있었다. 각 지역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점심식사 후 지리산국립공원관리소 에코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산길을 따라 걸었다. 며느리밥풀꽃, 상사화 작은 풀도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크고 거창한 것들에만 관심이 가 있어서 작은 풀꽃, 나무 하나 생소한 게 대부분이었다. 어쩜 그런 사연을 가졌을까? 제삿날 밥이 잘 되었는지 보려고 입에 넣은 밥풀 2알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자리에 피었다는 며느리밥풀꽃. ‘그 시절 참으로 가난했구나. 며느리란 존재는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불쌍한 존재였구나.’ 참 슬픈 사연이었다. 상사화, 때죽나무, 떡갈나무, 맥문동, 조릿대, 모두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담겨있거나 일상생활과 연관되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열매를 물고기 잡는데 이용하고, 기침 가래를 없애는데 뿌리를 이용하고, 떡을 싸서 보관하고, 조리를 만들고, 그러고 보니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얻어먹고 얻어쓰고 도움만 받는 것 같다. 비가 오는 데도 안내선생님은 열정적으로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셔서 그 분을 보며 또 한번 지리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 받았다.

다음날 지리산에 있는 여러 동물에 대한 공부가 시작되었다. 어둑한 조명 속에서 슬라이드를 보자니 졸립기도 했는데, 눈밭위로 찍힌 동물들의 자국으로 무슨 동물인지, 어떤 식으로 걸었는지 알아보는 건 신기하기도 하고, 그 모양 자체로도 귀여웠다. 모두가 다 귀여운 건 아니었는데, 그게 뱀이다. 뱀은 왠지 아직도 위협적이란 생각이다. 독이 있어 나를 물것만 같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그런 선입견을 조금은 버리게 되었고, 야영 중에 뱀을 만나지 못한 게 서운하기도 하다. 뱀을 만난 다른 모둠이 부러웠으니까. 동식물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 많이 나왔던 이야기가 보신용으로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는데, 약사로서 그 보신용 동식물의 효능이 사실인지, 어느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잡아먹는 건 객관적 효능 때문이 아니라 불로장생의 명약을 찾는 인간의 욕심과 그것을 팔아 돈을 벌려는 상업주의의 농간이 섞여 나온 현상이 아닌가싶다. 곰을 우리 안에 사육하면서 몸에 호스를 꼽아 쓸개즙을 받아낸다니 잔인하단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설사 특효가 있더라도 그런 방식은 해서는 안 될 짓이 아닐까?

셋째 날 드디어 야영을 가는 날, 다들 부산히 짐을 꾸리고 조모임을 하고 길을 나섰다.

중산리 방향으로 걷다 철탑이 설치된 산을 타고 양수발전소에 도착했다.

무심코 지나며 풍경을 감상했던 산속 아스팔트길이 산을 파괴하는 것이라 한다. 생활의 편리함과 생태보전 사이에 균형과 양보가 필요한거 같다. 산을 깎아 만든 발전소 자리에 발전소는 휴업 중이고, 간간이 관광객을 태운 차들이 왔다가 간다. 그곳에 아름다운 고운동 계곡이 있어 달빛 비치는 풍경을 볼 수 있었으면 이런 아쉬움은 들지 않았을 거 같다. 다시 길을 따라 걷기 시작, 양수발전소에서 묵계리 청학동 방향으로 향했다. 우리가 노래를 불러 기쁘게 해줘서 였을까? 아무르 장지뱀 두 마리를 만났다. 처음으로 직접 보는 장지뱀이었는데, 작은 크기에 한번 놀래고, 부드러운 촉감에 한번 더 놀랬다. 어렸을 적 열심히 봤던[브이V]의 파충류하고는 너무 달랐다.

방금 전까지도 머리까지 올라온 조릿대 숲을 헤쳐 나오느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평지로 나오니까 밋밋하고 지루하기도 해서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청학동을 지나쳤다. 다리 밑 계곡에서 더위를 식히니 기분 최고였다.

다시 선녀탕 보다 조금 작은 금붕어탕이 있다는 1박 야영지를 향해 걸었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둑한데 우리 야인 형님들은 잽싸게 텐트를 쳤다. 계곡 물이 달아서였을까 김치가 맛있어서였을까 황언니(황은자님)가 끓여낸 꽁치 김치찌개는 맛이 기가 막혔다.

다음날 회남재를 넘어 악양면 들에 들어섰다.

덕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 짧은 인연을 맺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잔 뒤 악양뜰을 향해 내려왔다. 21살 때부터 피던 담배를 지금도 피우고 계신 81세의 할머니. 그 시절에도 담배를 못 피우게 하면 보따리 싸서 나간다고 으름장을 놓아 여태 피우고 계신다는데,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정정하게 82세 할아버지와 해로하고 계신다.

세 방향 산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이고 가운데로 천이 흐르고 양옆으로 넓게 펼쳐진 악양뜰은 정말 富티 나고 아름다웠다.

기억이 삼삼하다. 시원한 계곡물에 수박을 먹던 모습, 걸어가는 우리를 보고 고개를 넘어왔다고 하니 욕본다고 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렇게 야영을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모둠별 발표를 하고 아쉬운 밤을 보냈다. 모두들 계획하신대로 작업(?) 잘 진행하셨는지 궁금하다.

마지막 날 이번 청생의 아우름이셨던 박충수 도편수님의 곶감막에서 수료식을 했는데 녹차와 황차를 번갈아 마시며 청생 참가소감을 이야기하고 수료증을 받았다. 천왕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고, 몇몇은 옛 방식의 생태화장실을 경험했는데, 우리가 무더기로 사용해서인지 아주 냄새가 안 나는 건 아니었다.

돌아오고 그리움도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언젠가 그 곳에서 살고 싶단 마음을 먹는다. 더불어 함께하는 생활이 왠지 지리산 자락에 있을 거 같고 이룰 수도 있을 거 같다. 종주하듯 바쁜 삶보다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 한숨 잘 수 있는 느린 삶을 살 수 있을까? 모든 게 내 욕심과 게으름에 달려있는 거 같다.

글 : 5모둠 이가영(알딸딸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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