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생태학교] – 야영의 힘

2005.08.29 | 미분류

8월 12일
12, 13, 14.. 사흘 동안 야영을 간다. 야영 가본 적 한번도 없다. 사흘 동안 산에서 사는 것인가.. 어젯밤에 야영에서의 기본 사항을 설명 들었던 것이 떠오른다. 대장 말씀 잘 듣고 자기 한 몸 사리기보다는 모두를 생각하라. 솔선수범하라. 밥은 나누어 먹어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설렌다.

서지농원을 출발한 트럭이 꼬불꼬불 산을 깎아 만든 아스팔트 도로를 한참 달리더니 이상한 다리 위에 우리 일곱 명을 떨어뜨리고는 떠나간다. 일곱 명이다. 하루 늦게 청생에 합류하여 사람들이 낯설다. 얼굴은 본 적 있지만 이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친하지는 않다. 남자셋 여자넷.. 좋은 사람들 같긴 한데.. 에잇 모르겠다.. 기점은 자혜교. 경남 함양이다. 저 멀리 산이 보이고 가까운 곳에 강이 보이고 논이 있고 흙이 있다. 하늘은 파랗고 태양은 뜨겁다. 강을 오른편에 두고 이름은 모르지만 낯익은 풀들이 가득한 흙길을 걷는다.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 등 풀이름을 누군가가 일러준다. 풀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냄새도 맡아보고 만져도 본다. 꽤 많은 종류의 풀을 봤는데.. 이런~ 이름들이 기억이 안 난다. ‘아니 도대체 내가 이름을 아는 풀은 하나도 없군. 난 뭐하고 살았나. 근데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뭘까. 어떻게 저렇게 잘 알지?’

걷다보니 동네가 보인다. 가게도 있고 나무그늘 아래 평상도 있다. 오호라~ 배도 출출한 것이 점심때가 되었나보다. 만장일치로 점심은 엄천상회 아줌마가 끓여주시는 라면으로 결정된다.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길을 제일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이름이 애벌레라고 한다. 가슴에 ‘안멋진애벌레’라고 적혀있다. 금방 외우겠다. 꼼꼼하고 책임감 있어 보이는 사람. 청생에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다. 이름이 에말이오. ‘엥? 도대체 그게 어느 나라 말이래.’하고 있는데 호남정맥 탐사할 때 얻은 전라도 사투리 애칭이라 한다. 사람에게 말을 걸 때 하는 말. 음, 정이 간다. 붉은 티에 선글라스. 나도 붉은색 매우 좋아하는데.. 틈만 나면 일행에서 멀리 떨어져서는 담배를 입에 무는 사람. 붉은나무. 고등학교 사회선생님이라신다. 당차면서도 사려 깊어 보이는 사람. 카메라가 멋지다. 사진 찍는 소리가 매우 경쾌하여 듣기에 좋다. 영국유학생 수레국화. 음, 이건 또 뭘까. 들어본 적 없다. 외우기 힘들 것 같다. (집에 와서 찾아 봤다. 독일국화. 소박하고 아름답다.) 출판사를 경영한다고 사람들이 그러는 분은 목소리가 아나운서 같다. 논리적이고 예리하다. 노루발. (이것도 찾아봤다. 매우 예쁘다.) 젊은 사람 같은데 수염이 길다. 얼굴은 하얀데. 특이하다. 중학교 국어선생님 산양똥. 이름이 웃기다. 그리고 나는 간호사, 전체 인사 시간에 ‘갯바위’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애칭이 갯바위가 되었다. 사실 난 바다보다 산이 좋은데…

점심을 먹고 쉬고 다시 출발. 또 강을 따라 걷는다. 강이 너무 멋지다. 멋지다. 사실 얼마 안 걸었다. 그런데 또 나무그늘 아래 평상이 보인다. 또 쉬는 분위기.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니 세상이 내 것이다.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엔 진짜다. 슬슬 어깨가 아파오고 숨이 찬다. 걷고 또 걷고.. 그래도 눈앞이 온통 녹색천지니 걸을 맛이 난다. 때로는 혼자 걷고 때로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보조를 맞춘다. 이도 좋고 저도 좋다. 땡볕인데 그 아래를 걷는 것이 기분이 좋다. 산 입구. 이상한 절집에서 잠시 쉬고 산을 오른다. 빨치산안내소를 둘러보고 또 산을 오른다. 드디어 어느 이상한 곳에 도착한다. 나의 자취집만한 작은 넓이로 아담하고 아늑한 장소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것이다. 이제 텐트도 쳐야하고 밥도 차려야한다. 그런데 난 텐트도 칠 줄 모르고 밥물도 맞출 줄 모르고 버너를 다룰 줄도 모른다. 이를 어쩌나? 아무도 나에게 할 일을 일러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인다. 쌀을 씻고 감자를 썰고. 즐겁다.
벌써 어두워진다. 밥을 먹는다. 다 맛있는데 누룽지 숭늉이 특히 너무 맛있다. 씻으러간다. 오호~ 근데 이 계곡이 또 예술이다. 기대하지도 않았건만 여자 네 명이서 함께 마치 선녀인양 목욕을 한다. 이렇게 시원하다니!!! 감동이다. 시간이 밤 열시를 향해간다. 아담한 우리의 공간에 모두 둘러앉았다. 랜턴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과 각종 곤충들과 함께 밤이 깊어가고 이야기도 깊어진다.

8월 13일
이런 곳에 오면 누군가가 졸려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깨우고 서둘러 준비하고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것이 보통 아닌가? 난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는 남달랐다. 마음가는대로, 자율성, 자유가 기본이념인 2모둠 웃는돌. 모든 일이 자연스레 흐른다. 강제란 없다.



길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내 발 바로 옆으로 자그마한 뱀이 휙 지나간다. 에구 놀래라. 진땀이 난다. 무슨 뱀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러다 계곡에서 꽈당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친 곳은 없다. 다행이다. 다시 한번 안전을 상기한다. 특히 미끄럼주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오늘 우리는 오르고 올라 노장대를 들르고 정상을 넘어 능선을 따라 내려와 벽송사에 이를 것이다. 산을 오르는 것,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특히 지리산이라니. 난 지리산이 너무 좋다. 지리산이 있는 한국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아직 내가 못 가본 지리산이 더~ 많다는 사실에 또 감사한다. 함께하는 사람들도 좋다. 이상하게 한사람 예외 없이 다 정이 간다. 하룻밤 사이에 한 가족이 된 우리 웃는돌들. 아침이라 더욱 상쾌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는데… 허걱, 누군가 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숨어서 총을 겨누는 모습의 빨치산 밀랍 인형 모형물과 안내판이 있는 곳. 그렇다. 이곳은 빨치산 루트다. 하루 늦게 청생에 왔기 때문에 첫날밤에 펼쳐졌던 빨치산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인민을 위한 민족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살육을 자행한 그들과,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을 위해 반란군을 소탕한다는 당위성만으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토벌대…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그들의 행위는 우리들 모두의 비극이며 우리들 모두의 한 맺힌 슬픔이었다.’ 음.. 슬프다.

산행이 계속된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슬슬 출출해지는데 마침 하늘이 열린다. 지리산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하늘은 파랗다. 바람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하다. 다들 감탄사를 내뱉고 있다. 더욱더 내 입을 벌어지게 한 것은 이 맛이다. 미숫가루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미숫가루에 모두가 행복해진다. 한차례 휴식을 마치고 길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었다. 근데 아까 그곳보다 더 멋진 풍경을 펼쳐 보이는 곳이 또 나온다.

황홀경에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가다 서다를 몇 번 반복한 후 도착한 곳이 노장대 전망대라는 곳이다. 전망이 최고는 맞는데 가장 명당인 곳에 눈치 없이 서 있는 엄청 커다란 안내판이 모두를 어이없게 한다. 한바탕 웃음이 퍼진다. 다시 출발. 노장대로 향한다. 노장대. 사실 난 그때까지 노장대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곳을 보고난 지금 이제 난 그곳을 잊을 수 없다.



아슬아슬 밧줄에 매달려 올라간 그 곳에는 이제와는 다른 모습의 지리산이 있다. 넘실넘실. 저 멀리서 나를 중심에 두고 완벽한 원을 꿈꾸며 이어지는 선의 예술. 그 위에 동그랗게 띠를 두른 구름과 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파란하늘. 그리고 내 온몸을 휘감는 바람. 뭐라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지리산을 찍은 사진은 매우 아름다워 황홀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사진도 직접 보는 것만큼 더 큰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잠시 생각을 잃은 나에게 이제 내려가자는 소리가 들려온다. 음, 다음에 또 봅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작별을 고한다. ‘내려가야지. 근데 어떻게 내려가나?’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슴이 철렁한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한다. 애벌레가 도와주신다한다. “여기다 발을 짚고 이 밧줄을 잡으..” 몇 번 망설이다 시도한다. 조심조심.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느껴진다. 죽지는 않을 것 같다.

휴~ 거의 다 내려왔다. 이제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바지 좀 놔주실래요.” 산양똥이 이후에 말하기를 자신이 애벌레였다면 그 순간 내 바지 잡은 채 그대로 산 밑으로 휙~ 던져버렸을 거라 했다. 기껏 도와줬더니. 헤헤.. 애벌레, 던지지 않고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산행이 계속된다. 길이 험하다. 풀에 의해 팔과 다리에 상처가 생기고 어떤 곳은 아슬아슬 기어서 간다. 땀이 흐른다. 어깨도 아파온다. 배도 고픈 것 같다. 목도 조금 마르다. 하지만 곳곳에 멋진 광경이 있다. 이쁜 꽃, 쇠살모사, 오소리 똥굴, 촉감이 특이한 하얀 나무, 동물들이 지나다니는 길, 에어콘보다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바위 구멍.. 멧돼지 소리.. 그리고 사람들.. 대 여섯 시간 지난 것 같은데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이다. 모두 지치고 힘들텐데..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남은 물 한 방울까지 나누어 먹고 힘들면 함께 쉰다. 양말까지 다 벗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에 주저앉아 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소중한 인연이다.
드디어 벽송사에 이른다. 인민군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곳. 당시 국군의 공격으로 불에 탔다가 재건되었다한다. 삼층석탑과 괴상한 두 점의 목장승을 구경한다.



  

이미 점심때가 한참 지나 있었으므로 활발한 논의 끝에 일단 절 아래에서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저녁을 거하게 먹기로 합의한다. 산을 내려와 마천면소재지에서 장을 보고 마천초등학교에 짐을 푼다. 오늘밤은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서 쏟아지는 별과 그리고 내일이면 일정이 끝난다는 아쉬움을 안주로 이야기가 깊어갈 것이다.

8월 14일
오늘 일정은 간단하다. 실상사를 다녀와 다시 서지농원으로 돌아가면 된다. 실상사는 독특한 절이다. 산이 아닌 논 가운데 절이 있다. 그러나 평지긴 한데 실제로는 해발이 높아 산에 해당하고 기가 대단히 센 곳이라 한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분이 설명하기로 절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천왕봉에 모인 한반도의 기가 일본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곳에 연좌대 없는 부처님, 철불을 세웠다한다.

이제 일정이 끝났다. 우리를 데리러 올 트럭을 기다리며 한가하게 길바닥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음, 아쉽다. 그리고 가슴 벅차다.

내 꿈은 산에서 사는 거다. 산 속에 흙과 돌로 집을 짓고 산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이곳 도시에서처럼 나 하나 그저 사는 것으로도 매일매일 일정한 양의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물을 오염시키는 삶, 또한 인간의 편의와 건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엄청난 양의 일회용품 사용과 그로 인한 쓰레기, 함부로 접근조차 위험하다는 감염성 폐기물, 독한 화학약품을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사태를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생각 뿐 나에겐 두려운 것,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나약한 자신과 그런 나의 발목을 잡는 현실의 벽이 두껍다. 이번 청생이 나에게 올바른 삶에 대해 어떠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야영을 통한 나의 체험과 나뿐 아니라 내 가까운 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어떤 희망을 보았고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지금 당장 내 모든 삶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앞으로 익히고 배워야할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나는 이 여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선물해준 청년생태학교에 감사한다.

글 : 2모둠 조대숙(갯바위)님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