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 현장에서

2002.10.02 | 미분류

9월 21일, 전국이 추석 명절로 고즈넉하던 그 시간, 황금빛이 돌기 시작한 들녘을 걷는 100여명의 나지막한 발걸음들이 있었다. 이 발걸음은 7월 1일 진도를 출발해 진주-남원-광주-순천-부안-무주-대구-상주-홍성-충주를 이어 82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쌀은 생명’, ‘밥은 생명’, ‘우리쌀을 지킵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1,800㎞의 국토순례의 길을 나선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이다.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 주부, 직장인, 선생님, 학자, 종교인, 청소년, 귀농자, 농민, 빈민운동가, 환경운동가, 농민운동가, 문화예술가 등 직업도 다양할 뿐 아니라 10대 이하에서 8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었다. 걷기팀은 도심지를 통과할 때는 작은 집회를 가지기도 하고, 차량 방송이나 홍보팜플렛을 나누어주는 등 다양한 거리캠페인을 벌이며 일일 평균 100여명 규모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걷기팀은 지역에서 결합한 지역주민들과 유전자조작식품, 학교급식조례제정, 농업회생 등을 주제로 간담회를 가져 지역별 실천과제들을 제시하고 전국연대활동 방안을 논의하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도시민이나 농민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 운동의 동참자로 남는다. 걷기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이 운동에 대해 거는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각지에서 모여든 평범한 시민들이 왜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참가자들은 전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던지고자 한다.  

1. 정부의 쌀 농사 포기정책 때문에 농업이 무너지고 있다.
개발과 성장 중심의 경제논리에 짜맞추어진 농업정책은 농민들로 하여금 더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정부수매가 인하, 수입농산물의 관세 인하, 국내외 쌀가격차를 좁히기 위한 국내 쌀값을 75% 인하하는 신농업정책은 우리 농산물과 농업 전반에 치명적인 연쇄 파급효과를 일으킬 것이고, 급기야 우리 농업은 회생불능의 상태로 빠져들 것이다.



2. 쌀 농사가 무너지면 농촌이 붕괴되고 우리의 건강과 생명도 함께 무너진다.
한국 농업의 근간인 쌀농사가 무너지는 것은 농업인구 말살, 농지파괴 등 현 한국사회의 기반이 되는 농촌사회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식량을 미국 등지의 외국과 이익집단인 다국적기업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의존하는 것은 농약, 유전자조작식품(GMO), 환경호르몬 등에 대해 식품의 안전을 검증하고 선택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함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의 건강과 생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3. 쌀 농사와 농업의 붕괴는 우리의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한다.
농업은 춘천댐의 15배 정도에 해당하는 홍수조절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지하수 담수기능, 대기정화기능, 수질정화기능, 폐기물처리기능, 토양유실경감기능 등 연간 약 20조원 이상의 가치를 생산한다. 또한 농업은 지역사회의 유지, 자연환경의 보전, 자연경관의 제공 등 우리 사회와 국민의 건강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땅의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것은 생물다양성의 위기로 이어져 생태계의 파괴를 동반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쌀을 지킨다는 것은 국민들의 건강은 물론, 우리의 환경과 생태계를 지키는 것며, 농민들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쌀은 우리 민족의 반만년 전통을 상징하는 뿌리로서 우리의 정신과 미래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가 담긴 우리쌀지키기는 이제 더 이상 정부정책에만 의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우리쌀지키기운동>은 이제 쌀을 지키는 운동은 농민들만의 몫이 아니라, 도시민들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의 몫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우리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새로운 눈과 마음을 가져 줄 것과 이러한 운동에 전국민이 함께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쌀지키기운동>은 단순히 WTO(세계무역기구)의 협약조항에 의거한 ‘쌀’개방을 반대하자는 의미만 지닌 것이 아니다. 쌀이라는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신자유주의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인하여 앞으로 한국사회에 닥칠 미래, 농업 붕괴와 이로 인한 식량주권 말살, 환경과 생태계 파괴, 유전자조작, 생명안전 위협, 전통문화 말살 등을 전국민들에게 예고하고 있다.

911테러 사건은 전세계가 예견했건, 예견하지 못했건 바로 우리 모두가 속한 인류공동체가 만들어온 역사의 결과물이다. 마찬가지로 쌀시장개방 역시 우리가 원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를 예견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열린 눈과 마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대처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1,800㎞ 대장정을 떠난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은 길을 통해 만나는 누구나 농업과 농민을 살리는 운동, 환경과 생태계를 지키는 운동, 지구생명체를 지키는 운동,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확산에 항거하는 운동의 주인이 되게 한다. 이 운동을 통해 전국의 국민들과 가슴을 나누며, 우리 공동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걷기운동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증폭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또한, 이것은 걷기운동이 새로운 시발점이 되어 생명운동, 대안문명운동,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이 대중적인 생활문화운동으로 자리잡게 되기를 기대한다. 걷기팀은 이후 춘천, 여주, 의정부, 성남, 김포 등의 수도권지역을 거쳐 10월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100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경화(대안사회국 국장)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 홈페이지 www.refarm.or.kr에서 걷기운동의 일일 현장스케치와 각종 자료들을 검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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