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라?

2002.07.22 | 미분류

우리 정부가 최근 유전자조작식품(GMO) 표시 대상 식품의 경우 구분유통관리증명서를 비치하거나 미국 정부가 이를 보증하도록 한 제도를 철회하는 것을 골자로 수입시 서류제출을 간소화하고, 대신 원료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구분유통관리증명서 비치 의무의 폐기는 홍수처럼 밀려드는 GMO식품에 대하여 정부 스스로 국민의 식탁 안전성을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최소한 안전장치마저 포기한 결과이며,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 차원에서 도입된 GMO 표시제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유전자조작식품 표시제가 시행되는 시점에서 정부는 유전자조작식품의 생산에서 소비단계까지 유전자조작 여부를 구분, 확인할 수 있는 ‘구분유통관리체제’ 확립과 생산, 수입업자가 ‘구분유통관리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번 완화조치로 식품내의 유전자조작 여부의 입증책임을 수입업자나 생산업자는 벗어나게 되었다. 특히, 미국은 2001년 제정된 ‘생명공학안전성의정서(Biosafety protocol)’에도 서명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는 자국의 더러운 식품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게 되었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었다.

이번 정부의 GMO표시제 완화 조치는 한국정부가 미국의 전방위 통상압력에 굴복하여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보장을 희생시킨 결과이다. 지난 1월 21일과 22일 양일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 존 헌츠먼 부대표가 농림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을 방문해 GMO 표시제도의 완화를 요구하였으며, 그 다음날인 23일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한미 통상현안 회의’에서 미 무역대표부(USTR) 바버라 와이젤 아태담당 부대표보 등 미국 측 대표들은 농산물 등에 대한 한국의 수입장벽을 더 낮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민의 생명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통상압력에 굴복해 GMO표시제를 도입한지 1년만에 철회하는 모습은 분노의 정도를 넘어서 절망감마저 느끼게 했다.  

정부가 GMO표시제가 완화되는 것에 있어 소비자의 권리를 철저히 무시했다. 즉 ‘소비자의 안전할 권리’와 ‘소비자의 알권리’, 그리고 ‘소비자의 선택할 권리’차원에서 외면했다. ‘소비자의 안전할 권리’는 GMO식품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것은 이 ‘소비자의 안전할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알 권리’는 상품을 판매하는 측에서 알리는 대로 상품을 선택해도 아무 탈이 없도록 보호받고, 더 나아가 사업자에 대해 정확한 정보의 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나 현재 소비자는 어떤 제품이 GMO식품인지도 모른채 먹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의 선택할 권리’는 소비자가 보다 좋은 조건의 상품을 비교 선택할 수 있고 이의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는 거래환경을 선택할 권리를 말하나, GMO식품인지 아닌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즉 소비자들이 원할 경우 GMO식품을 소비하지 않을 권리를 정부 스스로 박탈했다는 것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이 GMO표시제를 보다 강화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킨 점에 대해 정부당국자들은 뭐라고 이야기 할 것인가? GMO식품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유럽연합이 미국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GMO식품 표시제를 강화했다. 유럽의회는 7월3일 GMO성분이 함유된 모든 식품을 판매할 때 포장지에 GMO 표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1% 이상 GMO 성분이 포함된 식품에 대해 표시를 의무화한 현행 제도를 강화시킨 것이다. 법안은 또 식품 유통과정에서 GMO 성분을 쉽사리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것도 명문화했다.

정부의 이번 발표로 국민들은 GMO식품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내용은 최근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녹색연합이 GMO표시제 시행 1주년을 맞아 지난 6월 한달 동안 서울에 사는 20∼59살의 기혼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80.6%가 GMO의 안전성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이 가운데 44.8%는 GMO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과학의 산물로 인체와 생태계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35.8%는 ‘안전성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GMO표시제는 국내 농산물시장의 전면 개방으로 비록 GMO의 수입은 막을 수 없었지만 소비자들에게 GMO 포함여부에 대한 알권리와 그에 대한 선택권을 제공해 스스로 선택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원료 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GMO 성분검사의 기술적인 어려움은 물론 무작위 샘플 검사의 한계, 검사시의 비용발생 문제 등으로 따져볼 때 사실상 GMO 수입을 무방비로 방치하는 극히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GMO 포함 여부를 원료 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과학만능이나 기술지상주의의 결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환경문제나 생명안전의 문제를 다룰 때는 과학주의가 아니라 사전예방원칙에 입각한 접근이 세계적인 추세로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을 무시한 결과는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줄 수도 있으며, 자연생태계를 회복 불능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우리는 이번 정부의 GMO표시제의 완화결정이 미국의 통상압력에 의한 굴복, 행정편의적인 발상의 결과에 의한 정치적 결정이지, 국민의 건강권 지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는 적어도 아니다. 또한 이번 결정이 ‘생명공학의 육성’이라는 국가정책 수행일지는 모르지만 국민건강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신중한 결정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GMO표시제의 완화 결정은 철회되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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