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의 역습

2002.09.30 | 미분류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이하 리우)에서 세계 환경 NGO들은 비행기, 컴퓨터, 자동차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파괴와 기업과 정부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지구환경위기에 대해 경고했었다. 심지어 환경운동가들은 엄청난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비행기를 타고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것이 옳은가를 논쟁하기도 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지난 8월 26일부터 10일 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 회의 명칭이 거창한데, 쉽게 이해하면 리우에서 약속한 지구환경보전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를 평가하고 또 ‘위기의 지구’를 위한 새로운 ‘약속’을 하는 회의이다. 그 약속을 결정하고 또 지키기 위해서 모두 3만 여명의 사람이 참가했으며, 유엔(UN) 회의장에는 180여개 나라의 대통령과 수상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WSSD회의는 지구환경보전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밤낮으로 회의하고, 논쟁한 결과로 ‘이행계획’을 작성한다. 따라서 ‘이행계획’은 WSSD 회의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으며, 각 나라가 처한 상황과 형편에 따라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최종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회의에는 NGO 활동가들도 2만 여명이나 참가 했는데, 이는 바로 ‘이행계획’에 조금이라도 더 NGO의 생각과 입장을 반영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각 나라 정부의 정상이 참여하는 UN회의는 샌톤이라는 아주 현대적인 도심에서, NGO들이 참가하는 시민사회포럼은 샌톤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허허벌판 나스렉에서 열렸다.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는 물과 에너지, 건강, 농업, 생물다양성 등 5가지 의제가 핵심사항이었고 이와 함께 빈곤문제가 근저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 특히 기후변화문제를 포함한 에너지문제는 끝까지 치열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번 회의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국적기업의 역습’이었다. 10년 전 리우회의에서 지구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다국적기업들은 철저한 준비로 ‘환경경영(Eco-Business)’과 ’세계화(Globalization)’ 이념으로 무장한 채 이제 오히려 NGO를 향한 선전포고를 했다. 다국적기업들의 그 선명한 기업 광고 로고들이 머릿속에 뚜렷이 박혀 사라지질 않는다. 샌톤 UN회의장으로 향하는 광장은 대회기간 내내 ‘친환경기업(?)’ BMW의 상설전시장이 되었고, UN회의장 자체가 거대 쇼핑몰을 통과해야만 입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국적기업이 이제 더 이상 비행기나 컴퓨터로 돈을 버는데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과 바다, 그리고 식량과 같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자연환경 그자체가 다국적기업의 사업수단이 되고 있다. 전 세계 10억 여 명이 깨끗한 식수를 마시지 못하고 있다. 현재 물을 상품화 하면서 상하수도 서비스를 공기업이 아니라 민간기업이 제공하는 나라가 늘고 있고, 기업이 각 지역의 하천과 호수를 사들여 생수를 공급하고 있다.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물장사를 하는 프랑스 다국적기업이 두개나 들어가 있다.  쓰웨즈사와 비벤디사는 세계 120개 국가 1억 명에게 물을 팔고 있다. 이런 세계 물 다국적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사이에 민영화된 수도요금은 계속 인상돼 빈곤층에서는 이를 감당하기 힘들게 되었다. 볼리비아의 수돗물 공급권은 벡텔이 인수하면서 2-3배 상승했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수돗물 민연화 사업에 진출한 쓰웨즈도 수도가격을 20% 인상했다. 프랑스에서는 150%, 잉글랜드에서는 106%를 기록했다. 요하네스버그의 대표적 흑인 빈민 밀집지역중의 하나인 알렉산드라에서는 수도요금을 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물공급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콜레라와 설사에 시달려야 했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물의 사유화는 현재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물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데, 대형댐과 저수지 건설, 운하건설, 하천의 수로변경, 지하수의 무분별한 개발로 결국 지구의 물순환 자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이런 현상은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북극의 빙하를 녹여서 또 에베레스트산의 만년설을 녹여 플라스틱병에 담아 파는 게 지구촌 이모저모에 난 신기한 뉴스쯤으로 받아들일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에게 바다를 돌려 달라’ 나스렉 회의장에 모인 어부들의 간절한 외침이다. 서부 케이프 해안에서 어부들은 최소생계유지에 필요한 500란드(한국돈 약 60,000원) 이상에 달하는 생선을 잡을 수가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연안에서의 어업을 할당제로 분배해 제한하면서 다국적기업에게 조업권을 넘겨줬기 때문이다. 주요 수출상품인 바다가재는 이제 더 이상 케이프 해안 주민들의 흔히 먹었던 필수식품이 아니다. 나스렉에 모인 500여명의 어부들은 정부가 수출을 중요시하면서 다국적기업에 바다를 넘겨줘 버렸다고 맹비난 하고 있다.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제발 바다에 접근할 수 있도록만 해달라” 오직 ‘바다만을’ 의지해 생계를 꾸려온 어부들이 일손을 놓은 채 멍하니 ‘바다만을’ 바라보고 있다.

9월 4일, WSSD 폐막 연설에서 미국 수석대표 파월장관은 식량난에 처한 잠비아가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먹고 있는“ 유전자조작 옥수수의 식량원조를 거부한 것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아에 처한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이, 지난 1995년 이후 세계 각국에서 안전하게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바이오테크 옥수수를 거부함으로써 미국의 중요한 식량원조를 거부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급기야 청중석에 있던 세계 각국에서 참석한 NGO들의 참석자들은 “부시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Shame on Bush)”라는 구호를 반복 제창하며 파월 미 국무장관의 연설을 저지시켰다. 이들 중 몇몇은 “정부들에 배반당했다(Betrayed by governments)”와 “부시, 민중과 지구는 당신의 장삿거리가 아니야(Bush: people and planet are not big business)”라고 작성한 현수막을 펼쳐들기도 했다. 결국 시위자들의 상당수는 연설장에서 경비원들에 의해 강제 퇴장 당했다. 현장에서 “Shame on Bush”를 함께 외치면서 NGO 참석자들이 잘 조직되었더라면 파월의 연설을 저지하면서 미국의 지구환경 파괴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생각이 들만큼 미국의 연설문은 절망적이었다. 이날 아침 아프리카 현지 신문에는 부시대통령이 텍사스 휴가지에서 WSSD 회의를 조롱하듯이 개를 데리고 노는 사진이 1면 첫머리 기사로 실렸다. 지난 9일 외신을 통해 잠비아와 짐바브웨가 결국 유전자조작 식량을 미국으로부터 원조 받기로 했다는 보도를 접할 수 있었다. ‘미국이 원조라는 이름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거대한 생체실험을 하려는 것에 대해 강력히 거부한다’라고 밝혔던 잠비아도 기아가 해소되지 않으면 앞으로 6개월 내에 30만명이 죽을 것이라는 비극을 감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잔인한 인간성 파괴의 이면에 세계적 식량기업 몬산토가 있다. 실제 1998년 10월25일 몬산토의 사장 필 앤젤은 뉴욕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몬산토가 바이오테크 식량의 안정성을 입증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의 관심사는 유전자조작식품을 얼마나 많이 팔 수 있는가에 있고 그 안정성을 증명하는 일은 미국식약청에서 할 일이다”라고 공언한바 있다. 지구의 벗 리카르도 나바로 의장은 “나의 조국 엘살바도르도 몬산토가 사업을 하고 철수한 곳이 엄청난 다이옥신으로 오염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환경재앙에 시달리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나스렉에서도 몬산토에 반대하는 아프리카 엔지오들의 시위가 잇따랐다. 줄루 전통춤을 추며 몬산토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던 한 참가자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 아프리카의 미래가 몬산토의 유전자조작식품 폭격아래 위협받고 있다’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1970년 이래로 지구의 생물다양성의 3분의 1이 멸종했고, 이 멸종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고 있다. 이런 생물다양성의 상실에도 다국적기업의 광신개발, 화석연료 채취와 파이프운송 라인 개설, 상업적 벌목, 양식장과 공장, 그리고 거대규모의 수출주도형 농업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한술 더 떠 ‘Eco business’라는 마케팅 기법을 십분 활용해 기업의 깨끗한 이미지를 위해 ‘지구’와 ‘자연’을 들먹이고 있다. 맥도널드가 Clean food 운동을 벌이고 악명높은 다국적 석유기업 쉘이 제 3세계 환경 NGO에 자금을 대 아이들이게 환경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있다. 리우회의가 낳은 세계 최대 유행어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을 두고 세계 NGO들이 ‘지속가능한 개발’이 과연 실현 가능한 개념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동안 세계 다국적기업과 정부는 자기 입맛에 맞게 정의를 내리곤 ‘개발’을 향해 빠른 질주를 하고 있었다. 2002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세계정상 회담’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를 두고 ‘그들만의 잔치’, ‘말잔치’라는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더니 원래 그런 거였구나” 우리가 이번 요하네스버그 회의를 여기까지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접어버린다면 그렇다면 ‘지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지역에서 실천하고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 라는  말 그대로 살면서 한번 쯤 전 지구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이번 회의가 아닌가 한다. 사실 세계 정상들이 이렇게 요하네스버그에서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것은 전 세계가 적어도 지구 환경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회의가 정말 잘 준비되었더라면 하루하루 일과에 찌들어 세금 낼 걱정 아이들 학원비 낼 걱정에 찌들려 사는 한국의 평범한 가정에서도 아프리카에서 저렇게 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질병에 찌들어 살아가고 있구나, 아마존 숲이 사라지고, 교통사고 사망자수의 3배가 공해로 죽어가는 구나 이거 큰일인 걸 세계가 이대로 계속 나가도 되는 걸까 하는 질문을 한번이라도 던져 봤을 것이다. 원래 그럴 것이라는 체념, 이 체념이 바로 부시와 그의 일당들 캐나다, 호주(환경악의 축: The axes of environmental evils)가 노리던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철저한 평가와 긴호흡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는 일이다. WSSD 회의는 막나가는 인간의 탐욕과 자본주의의 과속에 브레이크를 역할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방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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