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비상

2002.10.21 | 미분류

아름다운 비상

겨울나기가 한창인 때이다.
철새들이 겨울나기를 위해 무리 지어 생존을 향한 비상을 하고 있다. 이 땅에서 여름을 난 제비들은 음력 9월 9일을 전후하여 깊은 산 고목나무로 들어가고 통통하게 살찐 콩새가 겨울을 위해 나온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러시아 등 북쪽에서 여름을 지내던 오리, 갈매기, 기러기, 고니, 두루미 등 철새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지 못하는 나그네새들은 호주 등 더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 든다. 철새들의 이동은 계절의 변화라는 자연법칙에 순응한 생존을 위한 아름다운 비상이다. 짝짓기하고 먹이를 구하고 종족을 번식시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아름다운 비상인 것이다.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 개인의 정치야욕을 위해 이동하는 정치인들을 철새에 비유하곤 한다. 철새들의 생존을 향한 아름다운 비상에 비할 바 없지만 대선정국인 요즈음 정치권은 한바탕 철새들이 대이동을 준비하는 듯 자신을 위한 정치입지를 위해 줄서기를 하고 이동하고 있다.
분열하고 야합하기를 즐기는 정치꾼들의 권력을 향한 추한 비상이라고나 할까.
여기 또 하나의 겨울나기가 있다. 시민운동가들의 겨울나기이다. 여러 시민단체에서 후원행사를 열어 겨울나기를 위한 모금을 하고 있다. 물론 정치인들은 시민단체들이 모금을 해야 하는 절박함을 이해하기보다 조직된 홍보의 장에 관심이 많고 기업인들은 여전히 공익을 위한 요구에 인색하게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시민들의 작은 정성이 모아진 기부가 아직은 모금 목표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시민운동가대회 초청연사로 나온 홍세화씨는 ‘한국사회에는 시민이 없다. 한국의 시민단체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90%의 한국 사람들은 시민의식의 성장을 가로막는 폐쇄회로에 갖혀 시민운동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고 하였다. 프랑스 6천만 인구 중에 절반은 70만개에 이르는 시민단체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였다. 홍세화씨가 말하는 프랑스는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영역의 공익을 위해 다수의 시민들이 함께 나누고 연결되어 있기에 자신있게 시민임을 자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국경없는의사회가 70만 명의 회원과 연결되어 있고 100년의 역사를 갖는 시에라클럽은 100만 명의 회원이 기부자로, 자원봉사자로, 감시자로서, 전문가로서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시민이 없다는 것을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한국의 시민사회 발전이 늦고 시민들의 참여가 이제야 싹이 트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는 급속한 물질 중심의 양적인 성장 패더다임과 이를 지탱해 온 개발독재, 비정상적인 사적 자본의 축적 과정에서 비롯한다. 공공의 부와 형평한 나눔보다는 개인의 부를 축적하여 높게 울타리를 치고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는 지배층의 의식이 우리 사회와 시민의식을 가두어 온 것이다. 그야말로 물질 중심의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는 개인은 있으되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웃을 돌보고 공공의 몫을 위해 나누는 시민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근 시민의 참여와 시민의식의 성장을 기뻐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공공의 과제가 쌓여 있고 시민의 참여가 척박한 현실에서 시민운동가들이 고난의 길임을 알고도 운동가의 삶을 선택하고 뛰어 든 것은 바로 우리를 격려하고 함께 박수칠 수 있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선정국이다 해서 자칫 뒷전으로 밀릴 수 있는 시민단체의 겨울나기와 활동가들의 삶에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가온다. 철새들이, 야생동물이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밀렵으로부터, 겨울먹이와 서식지 훼손으로부터 야생동물의 겨울나기를 보살피듯 시민운동가들이 춥고 배고픈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시민의 품과 시민사회 현장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시민들이 보살펴 주어야 한다. 한 시민단체(녹색연합)의 공동대표들은 활동가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회원들에게 특별회비를 부탁하는 아름다운 편지를 보낸다고 한다.
우리 사회를 투명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생각의 바탕을 세우고 시민들의 벗으로 손을 잡고 운동가의 길을 가는 활동가들이 있기에 시민사회 발전의 희망이 있다. 시민사회를 향한 이들의 비상은 그 뜻이 장대하고 참으로 아름답다.
오늘도 시민운동가들은 ‘시민에서 아름다운 지구인, 회원이 되자’고 회원가입서를 들고 시민들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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