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몸과 마음 깨우기

2003.01.08 | 미분류

평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기본원리이자 생명의 질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 개념처럼 너무 멀고 어려운 존재처럼 느끼고 있다. 쌀 한 톨에 평화가 있고 우주가 있다. 쌀 한 톨은 생명을 만들고 생명을 키우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 에너지 덩어리를 나누어 먹으며 우리는 더불어 살아 왔다.
평화는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이 없고, 민족과 민족간의 분쟁이 없고, 사람과 사람간의 다툼이 없고, 사람이 자연을 마구 수탈하지 않는 상태이다. 평화는 서로 나누며 더불어 사는 삶의 꼴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바탕이며, 나의 참다운 인생을 완성시켜 가는 교과서이다.

  ㅇ 말과 평화

우리말은 참 좋은 소리와 뜻을 가지고 있다. 흥겨우면 어깨춤이 절로 나며 ‘얼씨구 좋다’고 한다. 얼 쓰고 좋은 것이다. 에너지가 있으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남을 해롭게 하면 나쁘고 남이 잘 되면 좋다. 남이 잘 되어야 기분이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기의 분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좋다’와 같은 우리말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나의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는 삶의 이치를 담고 있다. 좋으면 절로 고마움의 마음과 인사가 나온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은 평화를 모르는 사람이며,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는 일에 한몫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살면서 남이 잘 되도록 돕고 배려하면서 좋은 기운을 불러 넣는 일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평화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의 에너지가 가득한 말 대신에 강자의 이해를 담은 기죽이는 말, 폭력의 말로 평화의 정신을 흐리고 오염시키고 있다.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성차별의 말, 냉전과 군사주의를 지켜온 폭력의 말, 타인의 기를 죽이는 말, 생기를 누르고 사기를 퍼뜨리는 말, 밝고 창조하는 에너지를 파괴하는 썰렁한 냉소의 말 따위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폭력의 말을 즐기며 자기의 힘을 과시하는 버릇을 가지고 산다. 군사권력, 정치권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 퍼뜨려 온 평화를 죽이는 말의 문화를 잘못되었다고 하면서도 그 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권력의 테두리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한바탕의 욕설과 기괴한 내용, 죽고 죽이는 내용을 담은 영화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권력의 대리만족에 지나지 않으며, 아름답고 평화의 기운이 넘치는 말들을 죽이고 반평화의 문화를 넓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의 말 한마디에 세계평화의 생사가 달려 있다는 깨달음과 평화의 에너지를 담은 말의 실천은 평화를 사랑하고 실천하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ㅇ 음식과 평화

나는 2년전 단식 수련이후부터 육식을 하지 않고 있다. 먹는 일의 귀중함을 깨닫고 자연이 주는 은혜로운 음식에 고마움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더러워진 육신을 깨끗하게 하여 자연과 호흡하고 건강한 육체에 맑고 밝은 정신을 담고 싶었다.
음식을 통해 우리는 생명을 유지시키고 건강한 몸을 만들어 간다. 음식을 통해 자연의 에너지를 얻고 자연과 조화롭고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자연의 심성을 닮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먹는 일에 집착하면서 자연을 닮은 심성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고 있다.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생명의 살림살이 질서인 평화를 깨고 농약, 화학약품으로 자연을 질식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유전자를 조작하여 인간만을 위한, 아니 다국적 자본의 이익을 위한 대량생산의 신화를 만들어 세뇌시키려 들고 있다. 지금 세계는 절대 빈곤으로 굶어 죽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과다하고 폭력과 같은 가공음식으로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이 있다. 건강한 생명활동이 되어야 할 음식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와 같은 여리고 순한 생명들은 얼마나 많은 학살과 폭력을 당해야만 하는가?
생명활동 이상으로 먹는 일에 과욕을 부리며 집착해 생명에 반하고 폭력이 담긴 방법으로 동물을 기르고, 심지어는 야생의 동물을 무자비하게 잡아먹는 일에 열중하여 얻는 것은 불로장생이 아니라 병들고 탐욕에 찌든 육신이며, 그 독하고 탐욕스러운 기운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나의 건강하고 소박한 음식문화와 식습관이 우리 아이들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보장하고 자연과 더불어 평화공존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평화의 실천이 아니겠는가? 나는 기꺼이 아름다운 평화공존의 이 길을 갈 것이다.
그렇게나 많은 음식과 넘치는 영양분을 탕진하면서도 암세포가 우리의 건강한 세포를 죽음으로 가두어 병원신세를 져야 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조화를 깬 우리 몸의 반평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스스로 건강한 몸을 돌보고 가꾸는 사람이야말로 평화를 알고 평화를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몸과 정신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자연과 인류를 자기 몸처럼 보살펴 평화의 꽃을 피울 것이다.

   ㅇ 관계와 평화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한다. 이는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여 공존하는 것이리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차이는 아주 많다. 종교, 사상, 인종, 문화, 성, 세대, 취미, 표현, 생물종…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지구생태계가 유지되고 인류의 역사가 발전되어 온 것은 많은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많은 차이의 존중과 평화공존이 있었기 때문이며 너와 나는 자연 안에서, 우주 안에서 하나라는 깊은 연대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전쟁과 폭력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은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차별하는 것에서 온다. 인종차별, 성차별, 문화차별 등은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습관이 되어 고정관념으로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이러한 차별의식은 가족이나 같은 뜻을 가진 집단 사이에서도 무섭게 드러나곤 한다. 차별은 갖가지 전쟁이나 폭력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갖가지 패권주의로 나타난다. 이러한 차별의식이 생기는 가장 기본의 의식은 나만 잘났다는 것이고, 나만 잘 살겠다는 것이다. 남의 성장과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아니 남을 딛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 되는 것이다. 성차별을 들면 남성 중심의 사고는 우주의 질서가 모든 다양한 생명체들의 조화로운 관계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성인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남성인 나 이외의 것은 나를 위해 복종하며 존재하는 것이라는 의식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하자면 여성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한다. 여성은 내가 중심인 것이 아니라 여성인 내가 보살피며 나누는 모든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빛이 나고 자연의 에너지를 함께 나누어 먹는‘식구’’동반’으로서 함께 나눌 때 비로소 평화로워지리라.

* 2003년 새해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누고 싶어 다시 싣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