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면서 / 이옥선

2003.02.21 | 미분류

비행기! 하면 우선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기분이 매우 좋을 때 우리는 흔히 ‘비행기 탄 기분이다’ 라고 하지요. 또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베풀 때 ‘비행기 태우지 말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늘을 날다가 추락한 그리이스 신화 속의 이카루스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초월, 효율성, 근대적 기술과 같은 개념들도 떠올리게 합니다. 아뭏든 비행기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내용들 대부분이 신비롭거나 또는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21세기 초입의 이 시점에서 비행기는 더 이상 낭만적이거나 과학 기술의 승리라는 식의 긍정적 평가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잉747 점보제트기는 4백90명의 승객을 태운 채 김포공항에 하루 평균 92차례나 3백50t의 육중한 몸체를 띄우고 내린다. 이때마다 김포공항 주변에는 승용차 5천대가 하루 종일 내뿜는 양과 같은 47.66㎏의 질소산화물이 흩뿌려진다. 김포공항의 항공기들이 수도권 대기오염의 새로운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규제의 사각 지대에서 항공운항 횟수가 해마다 늘어나면서 수도권의 오존공해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대기환경보전법에는 항공기에 대한 규정은 없다. 항공기는 소음공해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다’ (한겨레신문, 1996년10월13일 )

그러니까 비행기는 생태주의 시각으로 평가한다면 엄청난 규모로 환경을 파괴해대는 기계 덩어리라고 볼 수 있겠지요.
여기까지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저를 아마도 비행기의 해악에 대하여 앞장서서 홍보하고 따라서 절대로 비행기 여행은 하지 않는 사람이려니… 그런 생각을 얼핏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지난 1월 초에 지중해를 다녀왔습니다. 유럽,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를 그동안 다녀오기도 한 사람으로서 적지 않은 외국 나들이를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나들이의 처음 목적지는 그리스 아테네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움직이기 위해 일단 일본 오사카를 거치고, 이탈리아의 밀라노를 경유하여 아테네에 도착하는 비행기표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오사카까지는 대한항공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사카에서 밀라노까지는 모 항공사의 비행기를 이용하였습니다. 외국여행이 처음이 아니고 그 동안 몇 차례 있었기에 비행기를 이용하면서 각 항공사의 서비스 수준과 비행기의 쾌적한 상태를 나름대로 비교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내식의 내용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에는 무슨 음식이 나올까?.. 혼자 기대에 부풀기도 합니다.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요.

비행기 기내식과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식사때 사용하는 스푼, 포크와 나이프에 대한 것입니다. 인천에서 오사카까지 이용한 대한항공의 기내식에서는 스테인레스로 만든 스푼과 포크, 나이프를 사용하였지요. 또 제가 그동안 타고 다녔던 대부분의 비행기 기내식에서도 그러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된 것은 오사카에서 밀라노까지 가는 동안에 서비스되었던 기내식에 나왔던 스푼과 나이프였습니다. 그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기분이 묘하더군요. 아! 물론 제가 그 비행기 스튜어디스에게 승객들이 사용하는 스푼과 포크, 나이프가 재활용되는지 정확하게 물어보지 않았던 것은 저의 엄청난 잘못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듭니다. 그렇지만 일단 그것이 재활용하기에는 부적합한 수준이라는 시각적 판단들었고 그 판단으로 저는 이것이 일회용이겠거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00여명 이상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식사도구를 이용하여 식사를 할 것이고 아마도 그것은 곧바로 폐기처분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환경파괴 및 자원낭비라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이번 저의 지중해 여행 동안 사실 제가 말하는 이 항공사의 비행기를 여러번 이용하였습니다. 왕복은 물론이고 나라간 이동에도 이 비행기를 이용하였는데 그때마다 플라스틱 식사도구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음료수 서비스에 대한 것입니다.
국내선의 경우에도 음료수가 서비스됩니다. 저는 사실 국내선 이용은 많지 않습니다만 그때는 종이컵에 음료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국제선 기내 음료수 서비스의 경우에는 대부분 플라스틱 컵으로 음료수를 서비스합니다. 투명하고 청결한 기분을 자아내는 그 컵에 물이나 콜라, 쥬스를 마시면서 지루한 여행을 견딜 수 있게 서비스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그 컵이 일회용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전에 우리나라 모 항공사에 이런 내용과 관련하여 전화를 하였습니다. 저와 통화하셨던 그 분께서도 말씀하시길 ‘저도 항공사에 근무합니다만 한번 쓰고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을 합니다’고 하시더군요. 사용해보신 분들 아시겠지만 국제선 음료수 서비스용 컵의 수준은 한번 쓰고 버리기에 너무너무 아깝습니다. 그래서 집에 갖고 오고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게다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으니까 폐기처분과 관련하여 또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지요. 문득, 하루에도 엄청난 사람들에게 서비스될 이 음료수 컵의 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음과 대기오염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비행기, 게다가 헤아리기조차 힘든 많은 양의 플라스틱 컵까지 생각하니 비행기를 이용하여 여행을 하고 다니는 내 자신이.

그 동안 몇 차례 외국여행을 다니면서 기내 서비스와 환경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번에 절실하게 이 일회용 컵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기내식에 딸려 나온 플라스틱 재질의 스푼과 나이프 그리고 포크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두시간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 다섯 시간 많으면 12시간 또는 그 이상 비행을 해야 하는 노선의 경우 비행기 안에서 거의 포로처럼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하는 승객들을 위해 항공사에서는 최대한 편안함을 제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가지가 음식 서비스이겠지요. 청결하고 쾌적한 식사와 음료의 공급에 사용되는 용기들 또한 승객들의 기분을 다운시키지 않는 것으로 해야하겠으므로 이와 관련하여 상당한 고민들을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게다가 승객들 또한 우선은 쾌적함을 강조하니까 재활용과 같은 머리 무거워지는 방향으로는 생각들을 많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제가 부끄러운 것은,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그 모 항공사에 질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입니다. 확실히 그 플라스틱 재질의 식사 도구가 일회용인지를 확인한 후, 다른 항공사의 예를 들면서 일회용 도구의 사용을 억제해 주십사하는 글을 아직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스테인레스 재질의 스푼과 포크, 나이프를 이용해서도 쾌적한 식사를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이번 기회에 여러 항공사에 이와 관련한 글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5년 전 인가요. ‘우유병 되살리기 운동’과 관련하여 환경부와 서울우유에 글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환경부와 서울우유에서 각각 답신이 왔었는데 특히 환경부의 경우에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을 할 것이라는 글을 보내왔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환경부에서는 연구만 하고 있는 중인가봅니다. 여전히 우리는 팩에 든 우유를 먹고 있습니다. 나 혼자의 목소리와 주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고민은 하고 싶습니다. 효율성, 근대성이 지나치게 신성시되는 인간사를 개혁하려는 생태주의자들에 대하여 주위에서 보고 듣고 합니다. 그분들 만큼은 못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음에도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하지 못한 것들을 하려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다음에 저는 스테인레스 컵을 들고 비행기에 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컵으로 음료수 서비스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번에 그렇게 하지 않은, 못한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 이옥선 회원님은 강원도 고성에 사시는 선생님이십니다. 좋은 글 주신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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