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에 뚝뚝 떨어지는 새만금 갯벌의 눈물

2003.04.20 | 미분류

                       < 아스팔트에 뚝뚝 떨어지는 새만금 갯벌의 눈물 >

아스팔트 위에 뚝뚝 떨어지는 두 님의 땅방울은 새만금 갯벌이 쏟아내는 눈물이었다.
새만금 갯벌에는 무수히 많은 생명, 함께 나누는 평화가 있다.
그들이 개발과 돈이라는 이름으로 포크레인의 삽날을 들이대기 이전에는 새만금 갯벌은 생명 그리고 평화 바로 그것이었다.
오늘도 문규현 신부님, 수경 수님 두 분은 22일째 아스팔트위에서 3보 1배 고행의 길을 가고 계시다. 두 분이 지나간 아스팔트 위엔 땅방울이 쏟아진다. 두 님이 쏟아내는 땅방울은 새만금 갯벌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어머니 산고의 땅방울이고 새만금 갯벌이 울부짓는 눈물이기도 하다. 성한 곳 없는 스님의 무릎은 매일매일 고행의 길을 떠나시기 위해 침이며 뜸이며로 지켜내고 계시지만 진정 두 님의 발길과 마음에 담긴 힘은 새만금 갯벌 생명의 영혼과 신성이 담긴 에너지이다.
새만금 갯벌을 매립해서 농지를 만들지 않으면 당장 식량위기로 우리 아이들이 굶어 죽을 지도 모른다며 거의 협박에 가까운 논리로 새만금 간척사업을 강행했다. 그러나 올해 농림부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만들겠다는 농지 2만8천3백ha에 맞먹는 2만7천5백ha의 농지를 휴경 보상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앞으로 13만ha 농지를 줄이는 쌀 생산량 조절제도를 시행한다고 한다. 이런 모순과 비이성이 어디 있는가? 우리 환경인들은 사업의 타당성이 없으니 사업을 중단하라고 7년여 이상을 요구해 오건만 타당하지 않은 경제논리로 농지하겠다고 새만금 갯벌의 생명줄을 조이던 그들이 이제는 농지는 아니라고 한다. 남아도는 쌀을 감당하지 못해 농지를 휴경보상하고 있으면 새만금 간척사업을 해야 할 목적이 없어진 터인데 왜 새만금 갯벌의 생명줄을 붙들고 앉아 해양도시니, 첨단산업단지니 하는 허황한 논리로 위장하여 정치인과 개발론자들의 밥상 타령을 하고 있느냐 말인가?
오늘 동자승들이 두 님의 뒤를 따르며 ‘새만금 갯벌을 살려주세요’한다. 그 천진한 눈망울과 맑은 마음이 지금 어른들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를 채 알아채지 못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대통령 아저씨가, 장관이, 국회의원이, 공기업 사장이 앗아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또 다시 아스팔트 위엔 아이들의 눈물로 얼룩질 것이다.
한국의 정치사와 사회구조가 부패와 부정의로 얼룩지고 낡은 개발패러다임으로 온 국토가 망가지고 상처로 신음하고 있는 현실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정치인이라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가는 지혜와 멀리 대다보는 혜안이 있을 것이다. 진정 원칙과 투명성을 내세우는 참여정부, 개혁정부를 만들고자 한다면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이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속해 가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성장과 그 힘을 믿고 갈지어다.
개발에 눈먼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해치워야만 이제 방조제 공사가 끝났으니 어쩔 수 없다는 숙명론에 국민들을 포위라도 하려는 듯 방조제 공사의 속도를 더해 가고 있다. 멈추어야 한다. 새만금 갯벌에 가하는 살상을 멈추어야 한다. 아직도 살아 출렁이는 바다와 간조 때 넓게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갯벌과 그 속의 무수한 생명과 그 생명의 벗인 아이들의 웃음은 두 님의 3보 1배 땀방울과 함께 살아 있다. 그 귀하고 소중한 생명의 소리를 듣고 새만금 갯벌을 살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민의 합의를 모아야 한다. 그동안 느껴 온 전북도민의 소외의 실상과 진실을 담은 전북도민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새만금 갯벌을 살리는 두 님의 3보 1배는 새만금 갯벌을 구원하는 구도자의 기도요, 생명의 진실을 씨 뿌리는 큰 실천이요,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 시민사회의 마음과 뜻의 총화이다. 생명의 소리에 귀 막고 생명의 아름다움에 눈 감은 어리석은 정치인들에게 주는 큰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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