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의 유럽여행기②]독일에서 만난 녹색당과 녹색정치

2003.05.04 | 미분류

우리 나라 정치인들이 공무용 항공여행으로 얻은 보너스 마일리지를 개인의 용도로 사용했다면 어떻게 될까? 독일 베를린 시 경제장관 겸 베를린 시의원도 겸하고 있는 그레고르 기지는 마일리지 사용사실이 알려진 다음날 잘못을 시인하고 전격 사임한 데 이어 정계은퇴까지 했다. 이에 앞서 녹색당의 쳄 외츠데미르 의원도 공용 마일리지를 개인용도로 사용한 데다 자문에 응한 대가로 홍보대행업자로부터 저리 융자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대변인에서 물러나야 했다. 독일에서도 부정부패나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떳떳치 못한 정치자금을 받았다거나, 정치헌금을 오용, 거짓 증언하는 일이 드러나서 많은 정치인들이 정계를 은퇴해야 했다. 만약 우리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마일리지 정도를 문제삼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스워 보이지 않을까?

21세기 첫 대통령을 뽑기 위한 몸부림이 한창일 때 유럽의 시민운동을 직접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독일의 녹색당을 방문했다. 환경운동과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는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한 몸에 얻고 있는 녹색당의 비결이 무척 궁금했다. 2002년 9월에 있었던 독일 총선에서도 녹색당의 지지율이 득표로 잘 나타났다. 실업문제와 조세제도 개혁에 실패한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합 정권이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독일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하리라는 당초 예상을 뒤엎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또, 녹색당은 8.5%의 지지와 연방하원이 55석을 차지해 제3당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지난 선거 47석에서 55석으로 늘어난 것으로, 이것은 전체 연방 의석이 60석이 줄어든 상황에서 늘어난 것이니 매우 의미있는 일로 평가받았다. 이번 승리는 두 당이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이라크 전쟁 반대와 더불어 환경문제에 대한 뚜렷한 자기 주장을 펼쳤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녹색당 간판격인 ‘요쉬카 피셔’가 상당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녹색당 관계자는 말하고 있다. 그는 독일 정치인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정치인으로 유권자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다.  
독일의 유권자들은 녹색당의 대표인 요쉬카 피셔가 낙선한다면 독일 정치일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것은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유권자들은 인기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과 자기원칙을 가지고 오랫동안 활동을 해온 요쉬카 피셔를 버리지 않았다. 피셔는 지난 삼십 년 동안 핵발전소 폐쇄, 이민법 개정, 소수민족 보호정책에 있어 명확한 노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녹색당도 반전, 평화운동을 펼쳐 이라크 전쟁가능성이 있을 때마다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당 같은 반대파들은 녹색당의 노선을 무효화하겠다고 주장했으나 이에 대해 국민들은 녹색당의 정책이 무효화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보수화 물결’과 ‘성장위주의 정책’ 같은 우려할 만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우려해 녹색당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독일 녹색당은 정치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에 위치한 연방의회를 옆으로 끼고 대통령 관저와 슈미트 총리의 집무실 건물에서 십 여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녹색당 사무총장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약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녹색당 건물외벽에는 녹색바탕에, 녹색당의 마크인 해바라기가 선명하게 그려진 깃발이 걸려 있었다. 녹색당은 건물을 지키는 경비도 없었다. 녹색층계를 따라 5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복도에는 “미래는 녹색이다”라는 구호와 포스터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핵발전소가 폐쇄되고 대체에너지로 넘어가야 한다고 쓰인 포스터, 태양광발전 안내포스터 들이 기존정당과 차별화된 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뷔터코퍼 독일녹색당 사무총장을 만났다. 체육복에, 편한 바지를 입고 나타난 녹색당 사무총장은 우리네 정당의 고위직 분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격식을 벗어나 실용을 중시는 독일인의 모습이 배어 나왔다. 집무실에는 지난 선거에 사용한 선거포스터와 정책보고서가 쌓여 있었다. 환경문제가 중심이 아닌 녹색당, 환경문제의 관점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환경문제만 다루는 일은 없다고 했다. 지속가능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무총장의 말에서 지난해 녹색연합이 더 이상 환경단체에 머물지 않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난해 8월초 우리 언론에도 소개된 ‘마일리지 스캔들’과 9월 총선이야기도 나눴다. 그는 독일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는 까닭은 어떤 형태로든 정도에 벗어난 행위를 했을 때는 확실하게 책임지는 독일의 정치풍토에 있다고 했다. 비리와 의혹이 난무한 한국정치와는 사뭇 달랐다. 방탄국회니, 정치탄압이니 하는 구차한 변명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것과도 달랐다. 이번 총선에서 녹색당은 최대의 득표율을 올렸다고 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는 대도시의 지지도가 높아졌다. 뮌헨과 함부르크에서 각각 16%와 30%를 차지하면서 큰 도시를 비롯한 대학도시에서 상당히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며 이것은 “지난 삼십여 년 동안 반전평화운동의 결과이며, 원전폐쇄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환경문제를 대표하는 정당인 녹색당이 유권자의 마음을 적.녹 연정으로 움직이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녹색당은 당원과 시민들에게 정치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궁금했다. 선거 때마다 최저투표율을 기록하는 우리 나라와 달리 80% 이상을 넘나드는 독일은 생활 속의 정치교육이 선거에 대한 높은 관심과 참여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정당에서는 현재 당면하고 있는 환경과 평화 문제를 포함한 모든 사회문제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대상자별로 여러 자료들을 제공하고, 세미나 같은 토론회를 통해 시민들이나 당원들이 ‘지구 크기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행동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우선 신문과 텔레비전 토론으로 적극 홍보하고 있었다. 녹색당의 지지자들은 신문으로 많은 정보를 얻는다는 조사를 바탕으로 ‘신문’을 주로 공략한다고 뷔터 코퍼 사무총장은 말했다. 그는 지난 9월에 사용한 정치홍보 포스터가 담긴 서류상자를 펼쳐 보여주며 녹색당의 메시지를 설명해 주었다. 자칫 딱딱하기 쉬운 정치 메시지를 재미와 웃음으로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게 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주제를 담고 있었다. 녹색당의 가장 큰 지지자는 ‘여성’이다. 여성유권자가 남성유권자들보다 배가 많다. 비례대표제에서 명단을 작성할 때 짝수는 여성이나 남성으로 하고, 홀수는 여성으로 한다. 1번은 여성으로 한다. 그래서 당연히 의원 수는 여성이 훨씬 많다. 여성의 힘이 다른 정당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녹색정치이념을 가진 정당이 생겼다고 소개했다. 그는 상호 협력에 대해 적극 관심을 보였다. 에너지 문제를 비롯해 지구온난화 같은 국제문제에 대해 연대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멕시코 녹색당 관계자들이 독일 녹색당을 방문해 신재생 에너지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고, 전문가까지 파견한 국제협력이 최근이 있었다며 소개해 주었다. 녹색당은 정당으로는 유일하게 전세계 연대망을 형성하고 있고, 80여 개국의 녹색당이 중요한 관심사에 대해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의 욕심과 당리당략 때문에 나오는 거짓말을 당연시하는 정치인들, 철새도 모르면서 철새정치인의 대접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가 되는 폭로정치가 판치는 우리 정치 현실을 돌아본다. 21세기, 우리의 대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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