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난민을 아십니까?

2003.05.17 | 미분류

핵 위주 에너지정책의 전환과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의 백지화를 요구하며 36일째 청와대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던 원불교 김성근 교무님이 5월2일 오전 탈진했습니다. 단식농성장인 단식 농성장인 청와대앞 분수대로 가는 도중 쓰러져 원불교 종로수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이처럼 전국 각지에서 단식과 삼보일배 등으로 참여정부의 환경철학 부재를 바로세우기 위한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금정산 관통문제와 관련해 38일간의 단식농성을 벌인 바 있는 내원사의 지율 스님, 전남 보길도 상수원댐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문화재보호구역을 지키기 위해 30여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강제윤 시인,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갯벌을 살리기 위해 새만금 갯벌에서 서울까지 삼백여키로미터라는 먼 길을 ‘삼보일배’라는 고행을 실천하고 있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환경을 살리기 위한 이 분들의 저항은 대규모 환경 파괴의 주요 원인자인 정부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과거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개발 관행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국민의 안전망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국민들을 거리로, 농성장으로 내몰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참여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여간 걱정스럽습니다. 어쩌면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만 속으로 삭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폭발하였을때는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환경난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다 나은 직업이나 더 많은 벌이에 ‘이끌려서’ 스스로 떠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홍수와 삼림파괴, 가뭄 등 감당할 수 없는 환경적인 요인들에 의해 ‘밀려나서’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90년대말 한해동안 2천5백만명이 홍수와 삼림파괴, 가뭄 및 토양의 황폐화로 인해 고향을 등졌는데 이같은 ‘환경난민’은 전세계 난민의 58%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2025년까지 환경난민의 수가 4배로 증가할 수 있다는 경고가 외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3분의2와 중국 등 아시아의 일부는 사막화의 영향권에 접어들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경작 가능한 토지의 3분의 1이 모래 바람에 파묻혀 집을 잃고 떠도는 ‘환경난민’만도 1억을 넘어섰다는 보도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환경난민들이 존재합니다. 물론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지율스님, 수경스님, 문규현신부님, 김성근교부님의 이러한 활동은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제쳐놓더라도, 지역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고행으로 여겨집니다. 즉 환경적 궁핍과 사회적 불평등 속에 숨어 있는 환경난민이 이 땅에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실향민’ 이라고 부릅니다. 댐건설로 인하여 조상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사람들, 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아 상습적인 수해지역으로 전락해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대규모 리조트 건설로 인하여 집단 이주를 할 수밖에 없었든 사람들, 갈코리와 망태기를 들고 갯벌에 반나절만 나가도 자식 공부시키기 걱정없었든 곳이 간척사업으로 비록 땅은 넓어졌지만 바다의 땅을 빼앗아 버린 사람들, 도로건설 등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해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이들은 개발사업의 결과물들을 ‘무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수몰민들의 고향과 삶을 송두리째 수장시킨 댐이 ‘물의 무덤’이라면, 간척사업의 방조제는 ‘갯벌의 무덤’이며, 무분별한 도로개설은 바로 ‘산의 무덤’이자 ‘생태계의 무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환경난민들은 아마도 온산지역주민들입니다. 국내최대의 공해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온산병’은 이미 1982년부터 주민들 사이에서 발견되었지만 정부와 기업에 의해 계속해서 무시되어 왔습니다. 1985년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지면서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결국엔 집단이주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정부의 대책은 주민집단이주정책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오염된 지역의 생태적 복원이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시기였습니다. 어쩌면 6-70년대 ‘개발만이 살길이다’라는 성장위주의 정책이 낳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수많은 ‘성장의 무덤’말입니다.

저 역시도 이러한 곳 중의 하나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경남 합천, 해인사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합천댐에 의한 호수도 유명하죠!. 세상물정에 밝지 못한 시기에 댐이 건설되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중장비 트럭이 쉴새없이 흙먼지를 토해내는 모습이 한밤새고 일어나면 콘크리트 기둥이 하나둘 세워지곤 했으니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특히 그러했습니다. 자신의 고향을 발전시켜보겠다는 이마가 빛나는 사람의 입장에서, 또한 정부가 하는 일이기에 순박한 사람들은 선산에 묻힌 조상의 묘를 이장하고, 몇푼의 돈에 전답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상실감’이 밀려왔습니다. 도회지로 나간 순박한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빠른 도시사람들과 경쟁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시간이 많이 지나고서입니다. 우리가 살았던 곳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문화와 정서를 배양하는 삶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지역을 사실상 타의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받게되는 정신적인 타격은 대단히 클 수밖에 없습니다. 패배감과 무력감이 새로운 지역에서의 적응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저는 환경운동가입니다. 어린 조카들은 저를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5형제’ 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구를 지키는 사람, 그러나 저는 자연과 인간의 물질대사를 회복하고, 자립적이고 순환적인 사회, 지역의 자연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또는 저와 같은 환경난민이 다시는 생기지 않는 날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성장으로 찌꺼기로 남아있는 ‘무덤’을 파헤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야 겠습니다,

탈진하신 원불교 김성근 교무님께서 빨리 회복되셨으면 합니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갯벌을 살리기 위한 일렴으로 삼배일배하고 계신 수경스님, 문규현신부님, 태산을 움직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모이는 것 같습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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