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의 유럽여행기③] 자전거의 천국, 독일 뭔스터시를 찾아서

2003.05.21 | 미분류

늦은 오후 뭔스터 중앙역에 도착한 우리를 반겨준 것은 역 주변에 어지럽게 놓여 있던 자전거와 역 앞에 서 있는 자전거 전용 주차빌딩이었다. 내가 한국에 살면서 보아 온 자전거보다 많은 수가 물 만난 고기처럼 거리를 헤엄치고 있었다. 시에서 6백50만 유로(81억여 원)를 들여서 지은 주차빌딩에는 3천5백대의 자전거를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한 대는 바닥에 놓고, 한 대는 천장에 걸어두는 자전거 주차 아이디어도 반짝였다. 이 건물에서는 자전거 보관뿐만 아니라 관리와 수리도 할 수 있다. 자전거 세차장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말 그대로 자전거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우리나라의 자전거 도시로 유명한 ‘상주’가 떠올랐다. 가구 당 2대 꼴의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상주는 시청에 ‘자전거 문화계’라는 전담 부서가 있다. 자전거를 관광상품으로 알리고, 자전거 타기 문화를 지역주민의 삶 깊숙이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상주시청 담당 공무원의 말이 지구 반대쪽에서 떠오른 건 지구를 살리는 두발 자전거의 힘찬 발길이 독일의 도시에서도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스터 시가 자전거도시로 성장하게 된 것은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15년째 뮌스터 시 교통계획과의 자전거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자전거 박사’ 마르티나 귀틀러 씨를 만났다.  뭔스터 시의 토박이인 그녀는 도시의 도로와 골목 구석구석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우리는 부러움을 숨기기 위하여 도발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유독 뮌스터에 자전거가 많은 이유를 그녀는 “1948년부터 자전거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뮌스터는 도시가 원형이라 자전거를 타기에 유리한 모양새다”라고 밝혔다. “어디서든 도심 진입에 걸리는 시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전거를 위한 각종 제도와 도로망도 굉장히 발전해 있다”는 자랑도 덧붙이면서. 지금 현재 독일의 자동차 1대 당 평균 탑승자 수는 1.2명이란다. 가령 70명이 60대의 자동차를 탄다면 1천㎡의 주차장이 상시적으로 필요하단 이야기다. 허나 70명이 자전거를 탄다면 90㎡의 땅만 있어도 된다는 연구보고서와 관련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는 자전거가 왜 효율적인가를 명쾌하게 설명해주었다. 자전거가 누비는 뭔스터 시는 매우 인간적이다. “뭔스터 시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열 살만 되면 자전거를 선물받는다. 대학 신입생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방 구하기와 자전거 구하기다. 초등학교에선 자전거 타기와 관련한 시험도 본다. 그만큼 자전거는 뭔스터 시에서 살아가기 위한 생활 필수품이다”라며 마르티나 귀틀러 씨는 약속시간을 훨씬 넘는 시간까지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한 뭔스터 시의 자랑을 들려주었다. 떠나려고 일어선 우리에게 들려준 그녀의 한마디는 인상적이다. ‘자전거의 에너지원은 석유가 아니라 음식입니다.’-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석유가 필요하지만 자전거는 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자전거 탈 때 시민이 느낄 불편 사항을 줄여 나가면 굳이 캠페인을 하지 않아도 자전거 인구는 절로 늘어난다”는 그녀의 조언은 단순한 듯 들리지만 정답이다.

시청에서 마르티나 귀틀러 씨와 헤어진 후 택시를 타고 시내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더 많은 자전거를 목격할 수 있었다. 자동차보다 휠씬 많은 자전거가 도시를 누빈다. 대학도시로도 유명한 뭔스터 시는 28만 명이 살고 있는 독일의 4번 째 도시다. 인구는 28만인데 자전거는 55만 대라니 1인당 2대 꼴이다. “왜 2대일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은 후에는 독일 사람들의 실용주의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로 1대는 출․퇴근할 때에 정류장이나 기차역 등을 연계하기 위해 쓰고 나머지 1대는 가정용으로 사용한단다. 자전거의 물결에 함께 묻히고픈 욕망에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나섰다. 자전거 주차빌딩에서 관리인에게 여권과 임시숙소의 연락처를 남긴 후 자전거의 안전상태를 점검받고 자전거를 빌렸다. 독일의 자전거는 페달을 뒤로 돌리는 것만으로도 브레이크의 역할을 해낸다. 우리와는 다른 작은 차이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중세시대였더라면 마차가 다녔을 법한 길인 도심의 중심거리를 자전거가 점령하고 있었다. 초행인지라 약간은 긴장을 했었는가 보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자전거 위에서 맞는 바람이 시원했다. 뭔스터 시에서 자전거 타기는 쉬웠다. 교통이 복잡한 네거리에는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 있었다. 자동차용 교통신호등에 익숙한 나로서는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 정말 시의 교통체계가 철저히 자전거 우선이다.  도로 중심부에 자전거를 위한 신호체계와 구획선이 있다니 ‘자전거 천국’이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위한 배려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자전거 도로 여기저기에 서 있는 표지판들은 특정 지점까지 몇 분이나 달려야 할지를 분 단위로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또 일방통행 도로에서도 자전거만은 역주행을 할 수 있으며 보행자 전용 산책로도 자전거는 달릴 수 있었다. 장거리 통근자들을 위해 주요 버스 정류장이나 역에는 반드시 자전거 보관소가 설치되어 있다. 자동차나 기차에서 손쉽게 자전거로 바꾸어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이런 배려와 편리는 자전거 타기를 적극 지원하는 교통정책과 법규 덕분에 가능했다. 뭔스터 시의 주택가 골목길 곳곳에는 ‘자동차 속도를 시속 14㎞(자전거 평균 속도) 이하로 제한한다’는 표지판이 서 있다. 좁은 골목길에서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빨리 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만약 자동차가 이것을 위반했을 경우에는 범칙금을 내야 한다. 새로운 규정에 의해 자동차가 좌․우회전을 할 때에는 자전거 통행을 위해 반드시 기다려야 하며, 골목에서는 자전거와 50센티미터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훨씬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 부상하였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뭔스터 시가 자전거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외곽에서 도시를 동그랗게 에워싸는 순환도로 ’푸로미나데’가 있기 때문이다. 주민투표를 거쳐 19세기에 세워졌던 성벽을 허물고 조성한 자전거길이다. 도시외곽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도심중심부로 들어오기 위해 무리하게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 보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빠르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자전거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도시교통체계 자체가 자동차를 이용하기에는 불편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일방통행으로 도심의 중심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변부를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서 접근해야 한다. 때문에 일직선으로 통과하는 자전거보다 시간적으로나 훨씬 뒤질 수밖에 없다.  울창한 보리수 숲 사이로 난 ꡐ푸로미나데ꡑ를 거치면 외곽에서 시내로의 진입은 쉽고도 즐거운 일이다. 자전거 뒤에다 유모차를 연결해 타고 다니는 주부도 볼 수 있었다.

시내진입로 벤치에서 한국의 도시를 떠올렸다. 자전거교통은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여가용’으로만 인식될 뿐, 교통수단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자전거도로는 ‘자전거전용’이 아니라 ‘자전거겸용’ 도로다. 기존의 인도나 차도에 선만 긋는 경우도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연계 교통망과 보관소의 부족, 그리고 안전사고 예방장치 미흡 등도 시민들의 자전거 이용을 막는 요인이다. 도로증설위주에서 교통량발생 억제 위주로, 자동차 위주에서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으로 정부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있는 독일의 뭔스터 시. 넘치는 자동차로 몸살을 알고 있는 우리네 삶에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고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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