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딸 지구시인 레이첼 카슨을 읽고

2003.07.23 | 미분류

녹색의 세상, 평화의 시대여야 할 21세기, 지금 우리는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침묵의 봄>을 맞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이 저지른 야만스런 전쟁은 이라크에서 숱한 인명을 살상하고 자연생태계를 망가뜨리며 생명의 질서를 짓밟았다. 이라크 전쟁동안 공중에서 쏟아 부은 미사일과 맹독성 살상무기는 무고한 어린이를 비롯해 자연과 생명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사람과 자연을 몰살하는 살충제, DDT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멈추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사람과 자연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무차별 공중폭격은 화염에 휩싸인 전쟁의 현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무차별한 살상공격이 어디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만 벌어지고 있을까?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현대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채, 자연자원을 탕진하고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개발의 현장에서도 꼭 같은 일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난히도 평화의 봄, 따뜻한 봄을 갈망하며 연록 생명의 싹을 피워내기 위해 반전평화를 외치던 2003년 봄, 생명과 평화를 위한 순례 ‘삼보일배 三步一拜’ 고행의 길을 걷는 한국의 녹색운동은 레이첼 카슨이 생명의 죽음 앞에 절규했던 시대와 정신을 다시금 만나고 있다.
우리의 새만금 갯벌은 바로 레이첼 카슨이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서 신의 음성처럼 영롱한 소리로 온전히 드러내 보인 생명을 낳는 어머니 바다, 그 고운 살결과 그대로 한 몸이다.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구의 자궁, 생명의 터인 갯벌과 바다에 33킬로미터 콘크리트 방조제를 쌓아 모든 생명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끔찍한 일이 바로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바다의 생명줄을 조이겠다는 이 사업은 유구한 세월, 갯벌과 바다에서 조화롭게 생명살이를 해온 수많은 생명을 무차별하게 몰살시키는 무자비한 공격행위에 다름 아니다.
새만금 갯벌에서 서울까지 뭇 생명에게 참회하며 고행의 길을 걸으신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스님, 자연의 심장을 관통하는 천성산 고속철도 계획에 맞서 37일 단식을 해 온 지율스님에게서 나는 레이첼 카슨이 던지고 간 아름답고 억센 생명의 힘을 다시 발견한다.

DDT와 같은 살충제가 아니면 당장 식량위기로 인류의 삶이 위협받을 것처럼 살충제 위력을 맹신하던 과학자와 기업들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농지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곧 굶어 죽을지 모른다며 사업을 강행한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살충제의 위력은 새들의 소리와 봄의 소리를 앗아가는 살상력으로 드러나고, 갯벌을 매립하여 농지를 만들어야 할 만큼 절박하다던 식량위기는 남아도는 농지와 쌀에 대한 보상으로 대체되며 갯벌에 깃들어 살던 생명의 몰살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갯벌과 바다는 물떼새, 망둥어, 칠면초, 갯지렁이, 고둥, 백합 등 다양한 생물과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 온 어민들을 하나의 생명공동체로 연결시켜 주는 ‘순환의 고리’다.
레이첼 카슨은 생명의 개체를 아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을 순환하고 공생하는 자연의  생명공동체로 깊이 들여다보며 이들의 정교한 순환양식에 감탄했는데, 바로 그러한 생명의 현장이 우리의 새만금 갯벌이다. 함께 숨쉬고 서로에게 얹혀사는 생명시스템 전체를 함께 들여다보는 이러한 인식은 바다와 땅, 크고 작은 생명체, 사람과 자연이 촘촘한 생명의 그물로 서로 관련 맺고 살아가는 생명의 질서에 대한 깊은 관찰과 애정으로부터 우러나온다.

이러한 생명의 그물로 연결된 자연, 그 깊은 연결을 알지 못한 채 두꺼운 콘크리트 둑을 쌓는 일은 생태계를 유지하는 균형을 깨뜨려 결국은 자연생태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천벌을 받을 짓이다.
수 천년 동안 밀물과 썰물이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태양과 달, 바람과 비와 구름이 주거니 받거니 만들어 낸 갯벌 생태계!! 그 엄청난 역사를 알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한 치 땅과 논과 돈으로 바꾸겠다고 이 너른 갯벌을  매립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어머니 자연의 품에서 태어나 다시 그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물려주신 자연의 심성을 잃어버리고, 급기야 어머니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생명의 섭리를 알지 못하고 생명이 상생하는 질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은 생명에 가하는 무지막지한 폭력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한다.

생명을 느끼고, 생명에 눈떠야 한다. 생명을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해양학자이자 바다사랑을 바다 속 깊이와 넓이만큼 크게 했던 레이첼 카슨이 지금 우리의  새만금 갯벌을 놓고 이렇게 외치고 있다.

“바다의 장구한 역사와 아름다움과 신비, 거기 사는 뭇 생명은 신의 작품이며 동시에 우주 진화의 숨결이니 이를 파괴하는 행위를 막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녹색운동은 환경문제로 오는 불편과 오염을 치유하는 차원을 넘어 생명평화에 대한 성찰과 사색 그리고 생태문명을 찾는 대안의 길을 찾고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기면서 사람들을 녹색으로 공명하게 한 그녀야말로 녹색운동의 참스승이다. 그녀가 우리에게 준 녹색의 공명은 생태문명의 길을 가는 녹색운동의 큰 에너지로 새로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자연을 벗 삼으며 살아 온 성장과정은 레이첼에게 생태적인 감수성을 일깨우고, 내면 깊은 곳에 아름다운 생명의 힘을 키워갈 수 있던 바탕이었다. 나아가 시인 레이첼, 과학자 레이첼을 넘어 인간이 자연을 수탈하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상생의 관계로 회복해야 한다는 절박한 시대적 요청을 세상에 알리고, 이를 몸소 실천하는 환경운동가로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숙명의 길을 걷게 했다.
이 엄청난 소명을 깨달은 레이첼 카슨은 자연의 정복과 환경파괴를 정당화하는 남성중심, 과학 중심의 사고, 이른바 개발의 기치 아래 자연과 여성을 농락하고 착취하는 현실에 결코 굴복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생명을 낳는 어머니 자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습득한 생태적 감수성과 해박한 과학지식, 그리고 생명의 그물을 함께 짜는 꿋꿋한 여성들의 힘과 지혜를 조화롭게 결합시켜 많은 난관을 낙관적으로 풀어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녀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살아 온 삶의 진실과 아름다운 영혼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함께 기대어 더불어 돌아가는 자연과 생명의 질서를 그토록 깊은 성찰과 긴 호흡으로 관찰한 레이첼 카슨의 섬세하고 밝은 통찰력은 우리를 들뜨게 한다. 정책과 제도가 바뀔 때까지, 권력의 장벽 앞에서 용감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관철했던, 생명 정의를 향한 그녀의 신념을 마주하면 경외감에 고개가 숙여진다. 레이첼 카슨이 영혼을 바쳐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지켜 온 자연에 대한 사랑과 환희, 그녀의 영혼이 담긴 글과 활동이 지금 우리의 녹색운동 속에 더욱 힘찬 고동고리를 내게 되었다.
독자들도 이 책에서 지구 어머니를 닮은 그녀의 숨결을 더욱 가깝게 느끼길 바란다. 자연의 풍요와 동심을 간직한 어린이로, 자연의 생명을 발하는 여성으로, 어머니와 어린 조카를 돌본 부양자로, 도로시와 깊은 우정을 나눈 벗으로, 지구 생명을 품는 지구의 여신으로 그녀는 우리들 가슴에 새롭게 그리고 영원히 살아날 것이다.

* 이 글은 <지구의 딸 지구시인 레이첼 카슨>에 실은 발문입니다.
(지구의 딸 지구시인 레이첼 카슨 / 이유출판사 인물선 01/ 김재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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