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마닐라의 뒷골목, 바세코 – 박경화

2003.08.25 | 미분류

필리핀에서 머물고 있는 박경화입니다.
재필리핀 동포라고 하대요. ^__^
지난 주에 현장학습 갔습니다.
역시 이론보다는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아파 돌아오자 마자 글을 썼는데 이제 인터넷이 연결되어 올립니다.
사진도 여러 장 찍었는데 올릴 수 없어 좀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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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무렵, 6학년들의 미술시간이었다.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색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열심히 오려 붙이고 있었다. 삼각형도 아닌, 마름모꼴도 아닌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교실엔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과 선생님이 오글오글 모여 있었다. 낯선 외국인이 느닷없이 방문했건만 선생님도 아이들도 친절했다.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같은 목소리로 입을 모아 인사까지 해주었다. 역시 친절한 필리피노.

Kabalikat, 메트로 마닐라 안에 있는 바세코 지역의 주민조직을 방문했다. 필리핀에 있는 4만 개 정도나 되는 대중조직중 하나인데, 가난한 도시빈민들이 모여 사는 이 곳에 해마다 큰불이 나서 그나마 허술한 보금자리를 태워버렸다. 올 봄에도 큰불이 나서 보상문제와 재건설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곳이다.
‘EKK, 아이들 발전을 위한 까발리칸 교육센터’
교복이며 가방, 문방구 모두를 교육부에서 지원받는다는 이 작은 공부방은 21살 여 선생님이 혼자 월 수 금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아이들을 가르친단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이곳으로 왔다는 Ivy선생님은 예쁘장한 여고생의 모습이었다. 약간 수줍어하면서도 방문객들에게 상냥하고 당당한 여선생님에게 마음이 이끌려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빈민지역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우리나라 야학선생님이 떠올랐다. 하루 먹고 살 것도 걱정인 이 곳에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스스로 지원해서 온 것을 보면 소신이 있는 선생님이겠지.

교실 문을 나오자마자 바로 이어지는 골목에선 장례식 중이었다. 차 한 대 들어가기도 버거운 골목에 우기 동안 생긴 물웅덩이가 지뢰처럼 곳곳에 있었다. 역한 냄새 또한 정신이 번쩍번쩍 들게 했다. 그 가운데 아주 소박한 장례식이 있었다. 방문객들이 들여다봐도 되냐고 했더니 우리를 안내하는 까발리깐의 대표가 가족들에게 여쭈어 보더니 괜찮다고 했다. 좁은 골목길에 쳐 놓은 천막 아래 흰 관과 조화, 십자가, 초 몇 개가 있고 조문객들이 앉을 수 있는 플라스틱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관속에 누워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호기심에 가까이 갔더니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얼굴빛이 새까만 이가 눈을 감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아주 왜소한 얼굴이었다. 1954년 7월 4일생, 남자였다. 폐결핵을 앓다가 돌아가셨단다. 슬픔에 젖은 가족들이 우리 질문에도 답을 하고, 사진 찍으라고 허락해주고, 의자에 앉으라고 권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뜨거운 날도 관을 그냥 길가에 두고 삼일장을 치른단다. 하긴 산 사람도 먹고 살 것이 걱정인데 죽은 이를 위해 호화스럽게 장례식을 치를 여력이 없겠지. 죽어선 이런 빈민지역이 아닌 곳으로 가시길 기도할 수 밖에…

바세코 지역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집은 약 6,600여 가구, 한 집에 5명이 산다고 계산해 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산다. 첫 번째 불이 난 지역은 1800가구가 이재민이 되었는데, 청소와 건축비 같은 복구비로 15,000페소(우리 돈으로 36만 원)가 지원금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 돈이면 임시 거주할 집을 짓기도 어렵고 생계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해마다 불은 계속 나고, 이재민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그나마 올 3월에 났던 화재에서는 700가구가 이재민이 되었는데, 8월인 지금도 보상은 시작되지 않았다. 주민조직에서는 영구주택을 지으려고 정부와 협상중이다. 바세코 지역 바로 옆은 아시아에서 몇 번째로 손꼽히는 마닐라 항구다. 화물을 잔뜩 실은 배와 크레인이 경제성장의 꿈을 보여주는 듯 했다. 바다 편과 육지 편의 모습이 선을 그은 듯 선명하게 비교되는 풍경이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할 수 있다면 이 도시빈민들을 다른 곳으로 밀려내려고 노력중이란다.

집도 나무도,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좁은 골목길마저도 홀랑 태워버린 화재지역엔 너른 공터가 생겼다. 바닥은 쓰레기와 비닐들이 빼곡한 가운데 웃통을 훌렁 벗은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역시 쓰레기 문제는 이곳에서도 심각했다. 먹고 씻고 싸는 것도 모두 화장실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해결하니 위생문제도 그렇고, 물 오염도 심각했다. 그 옆에는 새로 집을 짓는 사람들, 아이에게 젖을 주는 여인, 서로 이를 잡아주는 여자아이들이 이방인들의 발걸음을 따라 눈망울을 굴렸다.

2001년 대통령포고령으로 정착지로 인정받았는데 불이 난 뒤 정부에서는 20스퀴어미터 크기 집을 지어줄테니 들어와 살려면 살고 말라면 말라고 주장하고, 주민조직에서는 32스퀴어미터를 요구하고 있단다. 20스퀴어미터는 가로 5미터, 세로 4미터 정도로 좁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여러 아이들이 딸린 가족들이 함께 산다는 건 삶이 아니라 사육이 아닐까? 사람들은 임시 거주지가 아니라 영구주택을 요구하는 가운데 대통령령이지만 지역개발 문제와 얽혀 지방정부는 꿈쩍도 하질 않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근처 파싱강 개발 때문에 강제 철거된 4,000가구가 이 쪽으로 더 들어올 예정이란다. 그래서 그나마 비좁은 공간을 비워두고 집을 못 짓게 하고 있다.

다른 골목으로 접어드니 한창 집을 짓고 있었다. 2층 높이 건물까지 벽돌을 올리기 위해 온 가족이 나와 한 장 한 장 손수 벽돌을 나르고 있었다. 필리피노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거부감이 없고 즐겁게 산다더니 일하는 모습도 즐거워 보였다. 그 옆엔 5페소를 내면 씻을 수 있는, 보기에도 허름한 공중목욕탕도 있고, 당구를 치는 사람들도 있고, 놀랍게도 노래방 기계도 있었다. 작은 기계에 마이크만 연결해 놓고 한 여인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또, 작은 천막 아래 허름한 나무책상 하나 놓은 곳은 무슬림 공동예배실이다. 그러고 보니 천막 위에 무슬림을 상징하는 그림이 하나 붙어 있었다. 이 지역 대부분은 무슬림이란다. 무슬림 지도자라는 분이 인사차 골목까지 나오셨다. 여럿이 선 사람들 남자들 가운데 누군지 얼굴만 봐서는 쉬 알아보기 어려웠다. 파란 슬리퍼에 반바지, 티셔츠를 입은 후줄근한 차림의 남자가 바로 무슬림 지도자란다. 이 분이 있어 지역간 중재 역할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분쟁도 해결하고, 그나마 질서가 유지된단다.  

집을 다 지어 좀 여유가 있는 집으로 어느 집으로 들어섰다. 벽돌을 쌓아 놓은 빈 공간에 들마루 하나 들여놓은 게 집의 전부였다. 그 위에서 순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가 앉아 있고, 두 서너 살 돼 보이는 아이가 자고 있었다. 창문이 있어야 할 공간은 그냥 골목으로 뚫려 있고, 대문 하나 달려 있었다. 선풍기가 돌고 있는 걸 보니 분명 형편이 좋은 집이었다. 몇 가지 살림살이가 놓인 곳 공간이 주방이고, 불이 켜질까 싶은 버너도 있고, 그 옆에는 단순하게 생긴 변기도 있었다. 바닥은 공사현장처럼 울퉁불퉁 했다. 아이 엄마가 가방을 막 뒤지더니 대통령이 보내준 공문을 보여 주었다. 함께 간 DAMPA의 활동가 조카스가 공문 내용은 읽더니 보상에 대한 문구나 집 크기 같은 자세한 내용이 없어 공신력이 없는 공문이라고 했다. 그나마 지금 아로요 대통령이 내년에 물러나면 대통령 포고령도 효력을 잃지 않을까 걱정스럽단다. 잠깐 그 댁 안에 서 있는 사이에 땀이 쭉 흘려 내렸다.

골목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메트로 마닐라에 사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생활하수가 몰려들어 강도 바다도 제 빛깔을 잃어버렸지만 아직 바람은 살아 있었다. 비릿한 갯내음과 닭 울음소리, 오토바이 소리, 공터에서 농구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궁색한 풍경 속에서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경제개발의 그늘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이곳에도 부지런히 넝쿨손을 뻗는 식물이 있고, 소박한 가게가 있고, 사람들의 땀방울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조직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단단한 얼개를 짜고 있었다.

2003.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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