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이야기. 두번째..

2003.09.02 | 미분류

2003년 8월 31일 일요일.

드디어 우리 지민이가 물에 뜬 역사적인 날이다.
무슨 얘기냐고? 수영장에 가면 늘 튜브를 타고 있거나, 얕은 물에서 놀이만 하던 아이가 얼마전부터 자꾸 수영에 대한 적극성을 보이더니 오늘은 나보고 손을 잡아달란다. 자기도 물에 뜨는 연습을 하고 싶다며.
그동안 온갖 회유, 협박, 아부를 해도 꿈적을 않더니 이곳에 온지 7개월만의 일이다. 휴우,,
두 번째 손을 잡아주는데 스윽 자기 손을 놓더니 정말 기적처럼 물에 떴다.

푸우~하고 밖으로 얼굴을 내민 아이의 그 자랑스런 표정이란..
“엄마, 나 물에 떴다, 그치? 나 떴지??”
나도 그 기분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내가 처음 물에 뜬 게 겨우 몇 개월전이니 잊을 리가 있나.

유난히 겁이 많은 우리 딸 지민인 아기때 거의 다치지 않을 정도로 조심성이 많았다.
계단을 내려갈때도 바짝 엎드려 아주 안전하게 내려가더니 다른건 다 빠른 아이가 돌이 될때까지 걸을 생각을 안하는거다. 덕분에 떡은 내가 돌리고. ㅎㅎ
그러던 아이가 13개월이 되던 어느날엔가 벌떡 일어나더니 한번에 여섯걸음을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곤 시행착오 없이 그냥.. 그날부터 직립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조심성이 많은 아이니 수영을 배운다는게 얼마나 힘들었던지.

물에 떴으니 이제 다리로 물을 차고 앞으로 나가는 연습을 하라고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마치 훈련된 조교처럼 아주 잘 전진한다.
호흡이 아직 불안정해 짧은 구간만을 반복하긴 했지만.
자신의 새로운 능력에 감탄하며 대견해하는 표정이란 정말 보는 사람까지 자랑스럽게 만드느 힘이 있음을 느꼈다.
덕분에 난 하루종일 수영은 못하고 지민이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지만..
이제 물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지민인 앞으론 한껏 수영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있음 엄마보다 훨씬 잘하겠는데,, 하는 주위의 칭찬에 입이 헤, 벌어지는걸 보면..

오후엔 집에서 가까운 쇼핑센터에 갔다. 지민이랑 친구 하나랑 셋이서.
수영 외에 여기 와서 배운 또 하나의 취미, 포켓볼을 치러.
오랜만에 치는거라 손에 익지 않아 고전을 하고 있는데 지민이가 자기도 한번 쳐 보겠단다.
이왕에 수영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아이라 뭐든 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생겼나보다.
큣대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하얀 공으로 다른 공을 맞춰보라 했더니 어쭈? 제법이다.
자신에게 너무 긴 큣대를 주체못하는 모습이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몇번 치더니 공의 각도를 보는 눈빛이 여간 아니다. 흠, 역시 피는 못 속이지..
이러다 최연소 포켓볼 선수 나오는거 아닌지 진지하게 걱정했다….ㅎㅎ
참, 참고로 이곳에선 포켓볼이 아주 대중적인 취미생활이다. 아이들도 물론 자연스럽게 잘 치고.
혹 딸을 이상한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엄마라는 오해를 받을까 싶어 미리 말해두는거다.

포켓볼을 마치고 돌아나오는데 지민이 왈,
“엄마, 다음부턴 나랑 포켓볼 치러 같이 다니자” 한다.
그동안 포켓볼과 맥주 한잔 생각이 날때마다(여긴 술집에 포켓볼대가 있으므로) 지민이의 방해로 무산되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엄마는 맥주 마시고, 지민인 포켓볼 치고. 히히히,,”

이번 일요일은 온전하게 우리 딸, 지민이의 날이었다.
아이가 큰다는건, 세상을 자기 힘으로 하나하나 배워가는 기쁨이 더해가는 과정이리라.
그리고 좋은 부모란 그 크는 과정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릴줄 알아야 함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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