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심장에 구멍을 내는 한국판 ‘늪지마루타’ 모의사건

2003.11.17 | 미분류

1930년대 후반 일제가 세균전과 화학전에 대비한다면서 만주에 창설한 731부대는 1940년 9월부터 42년 8월까지 해마다 600여명의 ‘마루타’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생체 해부를 자행하는 등 끔찍한 생체실험을 했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던 중국인 한국인을 비롯해 백계 러시아인 만주인 일본인 사회주의자를 붙잡아 만주 봉천 근처의 731부대에 가둔 뒤 이들에게 페스트 탄저균 콜레라 등 각종 세균을 주입하고 병세를 관찰했다. 이밖에도 혹한의 겨울에 알몸뚱이로 묶어놓고 동상에 걸린 피부가 어떻게 썩어가는지를 실험했으며 심지어는 산 사람을 해부하는 등 이들이 저지른 극악한 만행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마디로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명백한 전쟁범죄로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우리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생겨나 원시 생태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희귀 고산습지인 ‘무제치늪’에 웃질 못할 일이 벌어질 요량이다. 어쩌면 한국판 ‘늪지마루타’ 사건을 모의하고 있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고속철도공단이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 427일대 천성산-정족산 무제치늪에서 지하수위 변화 실험을 위해 늪내와 부근 15곳에 구멍을 뚫겠다며 지방환경청에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고속철도공단은 신청서에서 무제치늪 4개늪 중 제1늪(1만8천평)과 2늪(4천5백평)에 각 3곳씩 6곳(각각 지름 5㎝, 깊이 1m), 주변 보호구역(3만3천평)에 7곳(지름 5㎝, 깊이 30m), 그리고 보호구역 밖 2곳(지름 20㎝, 깊이 40m이상)에 구멍을 뚫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보호구역내에 구멍을 통해서 늪지대의 물이 빠지나 안빠지나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문제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터널이 뚫을 경우 지하수가 빠져 산지늪이 훼손될 것인가 아닌가이다. 현재 건설 예정인 경부고속철도 부산-경남구간 노선은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무제치 늪을 비롯하여 천성산에 산재하여 있는 18개의 늪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계획되어 있다. 천성산은 세계적으로 희귀 지형인 22개의 산지 늪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중 무제치늪은 1만년의 역사를 지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늪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지난 98년 생태계보전지역 및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터널을 통과하게 되면 지하수맥에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늪지대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생태계 보고인 무제치늪에서 이런 실험을 할 경우 늪수위 유지에 절대적 역할을 하는 이탄층이 훼손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탄층은 1㎝ 쌓이는데 무려 200년이 걸리는 것으로,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무제치늪 이탄층의 두께가 수십㎝에서 최고 180㎝ 정도로 그다지 두꺼운 것은 아니라며, 이 곳에 구멍이 뚫리면 서서히 물이 빠져 종국엔 늪이 완전히 망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추 실험을 통해 고속철도공단은 보호구역 밖의 큰 구멍 두 곳을 통해 지하수를 뽑아올려 늪과 보호구역에 뚫은 구멍을 통해 늪지대의 수위 변화 여부를 관찰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판 ‘습지마루타’를 자행하겠다는 뜻이다. 세균전과 화학전에 대비한다면서 ‘마루타’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끔찍한 생체실험을 자행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터널을 뚫더라도 산지늪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생태계보존지역인 늪지대에 시추실험을 벌인다는 것으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생명의 심장부에 구멍을 내겠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명백한 폭력임과 동시에 환경범죄이다. 당연히 그 계획은 당연히 백지화되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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