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 단식회향하던 날

2003.11.18 | 미분류

지율스님이 천성산 너른 화엄벌을 떠났던 10월 3일은 그 하늘이 눈부시게 맑고 아름다워 정말 하늘이 열려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되었다. 천성산 고속철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다시 천성의 품에 들지 않겠다는 지율을 떠나 보내고 지율스님은 그 길로 부산시청 앞에서 단식을 시작해 오늘 45일이다. 지켜볼 수밖에 없던 우리는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단식 며칠째 하며 벌써 45일을 세어 온 셈이다. 지율을 천성의 품에서 떠나 보내던 날처럼 오늘 하늘은 맑고 청아하게 단장을 하고 여위고 앙상해져 보잘껏 없는 지율의 육신을 한껏 비추어 주니 그 행동이 고귀하게 빛난다. 오늘 단식 회향식을 갖기 위해 부산시청 앞에 모인 사람들은 지율스님을 살릴 수 있다는 하나만으로 여느 때의 안타까움보다는 설레이고 들떠 있다. 함께 한 우리의 벗들은 뭇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 지율 스님의 숭고한 행동이 고맙고, 얼마나 힘들었겠나마는 고요한 나무 한 그루 서 있듯 물 흐르듯 오랜 고통을 감내해 준 그이가 고마워 따뜻하게 안아 감사와 사랑의 인사를 나눈다.

11경이 되어서 새벽길을 나선 수경스님, 유수스님, 현고스님과 정토회 님들이 175,417명의 도롱뇽 소송인단 명부를 들고 오셨다. 지난 이른 봄 단식 38일을 힘겹게 한 바 있는 그이가 다시 단식 40여일을 넘기자 모두가 걱정을 넘어 영영 우리의 품으로, 천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돌았다. 많은 환경현안이 있어 모두가 바쁘고 힘겨운 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지율스님과 천성산의 뭇생명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지율스님을 살려야 했다. 45일이 지나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한다. 천성산의 생명을 대표해서 도롱뇽이 낸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 소송에 참여할 소송인 10만 명을 모아 지율스님의 단식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 45일을 넘기면 안된다는 절박함에 11월 16일까지 시간을 정해 놓고 10만 명 소송인을 모으는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12일에 법륜스님과 수경스님이 발의를 했으니 불과 4일 만에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10만 명을 훌쩍 넘어 온라인으로 참가한 분들 모두해서 20만 명이 지율스님을 살려냈다. 모두가 우리가 해 낸 일에 대해 놀라워하고 감격하고 있었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소송인 서명에 전념했던 수백 명의 정토회 행자들은 이번 일이 자신들에게 오히려 큰 수행이 되었노라고 기뻐했다. 녹색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 불자를 비롯한 종교인들께서 정성껏 보내 준 참가자 명단이 온라인과 팩스 등으로 접수되고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도롱룡 소송을 담당할 재판장에게 보내는 엽서에는 감동적인 사연과 호소가 가득했다.

우리 사회가 크고 많은 것, 높고 빠른 것을 추구하다 보니 늘 작고 소박한 것 낮고 느린 것엔 가치를 두지 않거나 외면당하기 쉽상이다. 2시간 몇 분대로 속도를 맞추어야 할 고속철도와 이에 기대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지율스님의 45일 단식은 비구니 선방의 한 수행자의 작고 작은 외침에 불과한 것으로 빠른 속도의 쾌감과 속도전이 주는 경제적 부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한다. 불교계나 환경운동 내에서도 이 사안은 한 비구니 스님의 고집스런  운동방식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너무 많은 환경현안으로 몸과 마음을 나누어 줄 형편이 못된다는 사정으로 가장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다. 당연히 언론의 관심과 보도 역시 변변찮은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도 소홀함 없이 천성산을 지키고 고속철도의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문제나 천성산 습지 생태계에 대한 꾸준한 조사와 살핌을 영상자료 등으로 모은 자율스님이나 천성산 도롱룡의 벗들의 활동이 잔잔하게 전국의 시민들에게 알려져 가고 있었다. 이번에 20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 회원들의 낮고 깊은 생명에의 울림을 들으니 내가 살아 있음을 새삼 느끼고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큰 깨달음을 얻는다. 참여정부라고 커다란 청와대에 들어 앉아 있는 높으신 어른들은 공약이든 약속이든 손바닥 뒤집듯 하며 한 생명이 던진 외침을 외면하고 해결방법은 고속철도가 내달리는 것 밖에는 없다 하니 조정과 해결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아예 기대를 저버리기로 했다. 저 푸른 초원 그림같은 집에서 만수(?)를 누리시라고…

낮고 깊은 생명의 울림의 소리, 모아졌다 흩어졌다하며 느리고 소박하게 연대하고 있는 생명의 그물망은 그 어떤 권력과 힘도 부럽지 않게 세상을 바꾸고 아름다운 사람들로 만나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하루였다.
단식회향 기자회견에서 끝내 한 말씀없이 지율스님에게 소송인단 명단을 건네며 지율스님의 보식을 염려하시던 수경스님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간담회 자리에서 ‘실상사 도법스님과 곧 탁발을 하며 만행을 한다’ 하신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전국을 걸어서 돌며 가는 발걸음 머무는 곳마다 사람들을 만나 평화를 얘기하고 내가 평화로워지고 우리가 평화로워져 갈등도, 미움도, 폭력도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하신다. 3보 1배 수행을 하시며 모든 생명의 생명평화를 기원하셨지만 이 역시도 환경현안의 해결을 위해 정부와 맞서는 수단이 될 수 있고 단식과 같은 방법도 귀한 자신의 생명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며 오로지 평화를 위한 평화의 방법을 위해 긴 만행길에 오르신다 하니 또 한번 배우고 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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