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갈등의 주체는 ‘공공기관’이다

2004.01.17 | 미분류

환경현장에서의 활동에 한계를 뼈져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국회라는 깔대기를 통해 만들어진 법과 제도가 성장중심의 개발정책을 부추기고 있으며,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갈등 요소들을 조정하고 문제를 사전에 예측해서 대안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할 국회가 지금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 출범당시 24대 사회현안과제를 발표된 바 있습니다. 그 중에 7대과제가 놀랍게도 환경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과제들입니다. 더이상 환경문제를 가볍게 생각해서 ‘시간만 흐르면 해결된다’는 식의 구시대적인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7대 현안과제들은 사안마다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문제의 발단과 전개양상의 측면에서 볼 때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갈등의 사업주체는 모두 ‘공공기관’이라는 점입니다. 새만금간척사업의 경우는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이며, 한탄강댐 건설의 경우는 건설교통부와 수자원공사이고, 핵폐기장 부지선정문제는 산업자원부와 한수원 등이 맡고 있습니다. 고속철도관통문제와 북한산도로문제 역시 건설교통부가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해결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형개발공사의 구조조정을 통한 조직개편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시화호, 경인운하, 새만금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환경파괴 문제는 건설교통부, 농림부 등 개발 부처와 그 산하의 수자원공사, 농업기반공사 등 대형개발공사, 그리고 건설회사 및 용역업체 등 이해집단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추진한 국책사업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입니다.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라는 시대적인 사명을 나름대로 완수하였고 현재에도 몇 가지 분야에서 순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파괴 등의 역기능에 대하여는 근본적으로 존립의 목적을 재구성하는 등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발공사의 규모를 포함한 주요 업무의 변경을 통해 모든 사업에서 지속가능성과 환경친화성이 고려될 수 있도록 조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경제적 타당성의 조작문제와 환경영향평가의 조작문제가 국책사업추진시마다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국책연구기관을 동원한 객관적이지 못한 타당성 보고서와 환경영향평가서로 대규모 개발사업을 밀어붙이는 기존 관행을 차단하고 국책사업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잣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2003년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2003년 한해는 전국각지에서 단식과 삼보일배, 촛불시위 등 참여정부의 환경철학부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저항운동’이 이어졌고 지금도 전국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금정산 관통문제로 인한 자연습지를 보존하기 위해 45일간의 단식농성을 벌인 바 있는 내원사의 지율스님, 완도 보길도 문화재보호구역을 지키기 위해 30여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바 있는 강제윤 시인,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갯벌을 살리기 위해 새만금 갯벌에서 서울에서 305킬로미터라는 먼길을 삼보일배라는 고행을 실천한 네분의 종교인들, 핵 위주의 에너지정책의 전환과 핵폐기장 계획 백지화를 요구하며 죽음을 각오한 무기한 단식중인 김성근교무님. 핵발전정책에서 대안에너지전환을 촉구하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130여일째 계속하고 있는 부안 주민분들. 환경을 살리기 위한 이들의 저항은 대규모 환경파괴의 주요 원인자인 정부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과거 잘못된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개발관행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국민의 안전망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국민들을 거리로 농성장으로 내몰아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환경정책을 바로세우기 위한 저항운동은 2003년에 이어 2004년에도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농성장과 거리에서의 환경문제해결을 위한 ‘저항운동’의 맥이 국회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지역의 작은 분쟁으로 치부하거나 집단이기주의로 몰아 붙칠 것이 아니라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거리나 농성장에서 이들은 왜 목소리를 높이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존의 제도정당들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들은 생태학적 측면은 물론 국민들의 장기적인 이익과도 무관합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파괴적인 경제성장과 폭력성을 증진시키는 일에만 몰두해 왔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파괴와 폭력은 종식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파괴적인 성장과 단순한 생존이 아닌 미래가 미래세대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환경과 경제와 정치의 선결과제들을 재고하고 재조정해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기꺼운 마음으로 나팔수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중앙일보 사이버국회의원 출사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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