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고①] 백사장이 사라지고 있다

2004.01.19 | 미분류

새해를 알리는 새벽이다. 인천에서 44㎞떨어진 서해에 떠 있는 작은섬, 대이작도의 포구에서 출항을 준비한다. 고기잡이를 위해 출항하는 어부의 마음이 이런걸까? 그러나, 우리는 고기잡이를 위해서가 아닌 더우기 새해 일출을 낭만적으로 배위에서 맞기 위함도 아닌 대이작도를 중심으로 자월도 남단해안과 사승봉도 주변 해안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바다모래 채취현장을 보기 위해 출항한다. 파도를 타듯 달리는 배위에서 배 주인이자 마을 주민인 정규연씨는 썰물때인 간조시에 40여척의 모래채취선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모래를 퍼올린다고 이야기 한다.

포구에서 남서방향으로 30여분을 달려 2.1마일 떨어진 곳에서 모래채취선을 만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불야성이다. 불을 밝힌 모래채취선은 두개의 후드라인(바다밑 모래를 펌핑해 올리는 관)을 통해 검붉은 물기둥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있다. 바다 밑바닥에서 빨아 올린 흙탕물을 가로 20미터, 세로 30미터, 높이가 2미터 정도의 바지선위로 쉴새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이렇게 토해낸 흙탕물의 모래는 바지선위에 가라앉고 바다물은 흘러 넘쳐나는 원리로 쌓이고 있었다. 작업인부들은 후드라인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바지선위로 모래를 가득 채우는 작업을 쉴새 없이 하고 있다. 4-5시간정도면 3천여톤의 바지선에 가득 채울 수 있다고 한다. 배를 가득채운 준설선은 1500마력의 끌배에 의해 인천항으로 옮겨지고 세척된 모래는 수도권의 각종 건설현장으로 팔려간다.

옹진군주변해역에서 고기를 잡는다는 정규연씨(45세)는 “이 지역이 꽃게와 새우, 넙치 등의 서식 및 산란지로 유명했지만 바다모래 채취로 어족자원의 씨가 마르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특히 대이작도와 승봉도 사이에 있는 거대한 모래섬인 ‘풀등’은 천연적인 방파제 역할과 해양생물들의 서식·산란처의 역할을 해 왔으나 ‘풀등’의 면적이 크게 감소하면서 꽃게와 새우 등이 거의 잡히지 않고 있어 이 지역 어민들은 멀리 연평도 등 특정구역까지 가서 출어를 해야하는 형편이라고 선주는 토로한다. 인하대 한경남교수의 ‘바다모래 수급실태와 관리방안 연구’라는 보고서도 어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인천 앞바다에서 바다모래를 퍼내기 전인 1979년~1993년 사이의 연평균 어획량과 퍼내기 시작한 1994년부터 2001년까지의 연평균 어획량을 비교한 결과 79~93년 옹진군 관내의 김·우럭·굴 등 수산자원 연평균 어획량은 1만2000t 안팎이었으나 94~2001년에는 7500t 정도로 37.5%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덕적도와 자월도 주변에서 잡히는 우럭 등의 어류나 굴 등의 연체동물, 김 등의 해조류 생산량은 바다모래를 퍼내기 전에 비해 최고 98.3%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옹진군 일대에서 많이 나오던 김, 파래, 다시마 등의 해조류는 지난 93년에 8000t이 생산된 뒤로 지금까지 거의 생산량이 없는 상태다. 다시 배를 정남방향으로 돌려 1.8마일쯤에 다다랐을 때 모든 작업을 마치고 인천항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다른 채취선을 만날 수 있었다. 모래를 가득실은 배는 이제 막 동떠오는 햇살을 맞으며 은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1980년대초부터 20여년간 인천앞바다에서 퍼올려진 모래가 2억㎥가 넘는다.

마치 하늘에서 흩뿌린 듯 쪽빛 바다위에 보석처럼 빛났던 인천앞바다 섬들은 엄청난 모래채취로 인한 해양생태계 파괴와 어족자원 고갈, 자연경관 훼손으로 옛 모습을 잃고 있다. 인천에서 뱃길로 1시간정도 떨어진 옹진군의 승봉도 이일레해수욕장과 대이작도의 큰풀안과 작은풀안 해수욕장 등도 모래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새해벽두 인천녹색연합의 서해안섬조사팀과 함께 현지를 답사한 필자는 반신반의했던 이야기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1960년대 히트곡 ‘섬마을 선생님’의 가사이다. 1967년 이 노래를 영화화한 ‘섬마을 선생님’을 촬영한 곳이 바로 대이작도 동쪽끝 계남리에 자리한 자월초등학교 계남분교이다. 김기덕 감독이 연출하고 문희, 오영일, 이낙훈, 김희갑 등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2년에 폐교되어 지금은 다 쓰러져가는 교실 1동과 잡초가 무성한 손바닥만한 운동장, 그리고 이곳이 촬영지라는 푯말만이 중년세대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계남분교앞 계남포구는 해변의 모래가 씻겨 나가면서 옛모습을 잃고 모래 속에 있던 바위와 돌들이 앙상하게 드러나 쓸쓸함을 더했다. 5-6년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모래가 있었던 곳이란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큰풀안해수욕장도 모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백사장 길이 400미터의 이 해수욕장도 3-4년전부터 모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징후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4년전 대이작도로 이사와 이곳을 자주 찾는 김철환씨(46세)는 “하루가 다르게 모래가 유실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모래가 계속 쓸려나가 해수욕장이 제구실을 하지 못할까 걱정된다”고 말한다. 그는 2002년 9월 이곳 해수욕장에서 찍은 딸(당시 6세,김가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관련사진 비교) 2년전의 사진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바위에 닿아 있는 모래 유실정도를 한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일레 해수욕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수욕장 주변에는 수령 30년이상의 곰솔림이 발달되어 있으며, 해안사구(모래언덕)에는 해국, 갯메꽃, 갯완두, 해당화, 모래지치, 통보리사초 등이 군락을 형성하고, 환경조건에 적응된 성숙하고 안정된 단계에 있어 해안사구의 생태계로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이일레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은 황폐해진 주변 풍경에 쓴웃음을 금치 못한다. 예전에는 넓고 단단한 모래밭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축구를 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모래사장 군데군데가 자갈밭이 되고, 곳곳에 갯바위가 드러나는 흉흉한 모습으로 변해 있기 때문이다. 승봉도 지역주민들은 모래유실로 자갈이 드러나자 지난 2002년 7월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2억원의 돈을 들여 멀리 육지에서 수천톤의 모래를 사서 해수욕장에 쏟아 붓는 작업을 계획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20여년간 바다모래채취가 계속되고 그 양이 계속 늘고 있는 인천 앞바다 옹진군 해역일대는 국내 최대의 바다모래 공급지이다. 대이작도와 승봉도 등 옹진군내의 모래 채취량은 2004년에도 2천300만㎥로 우리나라 바다모래량(3천9백40만㎥)의 58.4%와 수도권(서울,경기,인천)전체 모래수요량의 50%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옹진군내 모래채취량은 지난 98년 1천3백32만㎥→99년 1천5백65만㎥→2000년 1천7백24만㎥→2001년 1천8백10만㎥→2002년 1천9백14만㎥→2003년 2천만㎥ 등으로 외환위기 시기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이미 하천모래가 바닥이 나 바다모래를 채취하고 있지만 모래가 도깨비방망이처럼 무한정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건축이 계속되는 한 국내 바닷속을 다 헤집어도 필요한 양을 다 충당할 수 없을 것이다. 브레이크없이 달려가는 전차처럼 바다모래를 무작정 퍼내는 것에 급급한 현실을 경고하는 보고서가 있다. 인하대 서해연안환경연구센터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이 한국골재협회 인천지부의 의뢰를 받아 2년간의 공동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인천 앞바다(경기만 일대) 해사 부존량 현황’이라는 공동보고서에서 “이 지역 모래 매장량을 19억8948만5100㎥으로 추정했으며 이 중 실제 채취 가능한 양은 수심과 환경문제 등으로 4분의 1수준인 5억6378만9300㎥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연간 채취되는 바닷모래 2300만㎥를 기준으로 현재 수준으로 계속 채취된다면 앞으로 24년이면 이 지역의 모래가 완전히 고갈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보고서는 “현재 인천 옹진군 선갑도 인근 해상에서 이뤄지고 있는 바닷모래 채취를 자원보호와 생태계 보전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건설교통부는 ‘올해 건설경기와 대형 사업 등을 감안, 인천앞바다 바다모래 채취량을 지난해보다 300만㎥ 늘어난 2,300만㎥로 늘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웅진군 일대 앞바다를 포함한 서해안의 어장피해와 생태계 및 환경파괴를 부채질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서 모래채취가 집중되는 이유는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가까워서 해사채취업계가 이 지역을 선호하는 까닭이 있고 또 다른 이유는 무분별한 해사채취를 막아야 하는 환경영향평가의 헛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집중적으로 채취되고 있어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 현행 환경영향평가법에는 채취면적이 25만㎡ 이상이거나 채취량이 50만㎥ 이상인 경우에만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 해 동안 2000만㎡의 양이 일정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퍼 올려지는 상황을 볼때 환경영향평가가 당연히 실시돼야 하나 채취업체는 소규모로 자주 허가를 받으면서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현 환경영향평가법은 무분별한 바다모래채취로부터 환경훼손을 막아내는데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 피해를 방관하고 있다.

어족자원 피해와 모래의 유실이 현실로 드러나자 지역주민들은 옹진군에 바다모래 채취금지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옹진군수는 2003년 2월 발표를 통해 2003년 7월부터는 옹진군의 바다모래채취를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옹진군의 해사채취 금지선언에도 불구하고 중앙부처의 압력으로 2003년 하반기에도 여전히 바다모래 채취허가가 이루어졌다.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에서는 옹진군일대의 해안지역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하면 해사채취를 원천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왔다. 해얀수산부의 생태계보전지역지정계획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청회 당시까지만 소이작도 인근 동백도와 벌안도, 사승봉도, 상공경도, 하공경도, 금도 등 무인도와 소·대이작도, 승봉도 등 유인도를 포함해 풀등 주변지역으로 74.6㎢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현재 해사채취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3년 12월 31일 지정, 고시된 생태계보전지역안은 면적이 55.7㎢로 현재 해사채취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 19㎢를 제외한 채 축소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풀등’ 하부 안쪽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바다모래를 채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며, 결과적으로 ‘풀등’을 비롯한 해양생태계, 자연경관 그 어느 것도 보전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불 보듯 뻔하게 되었다. 지역주민들은 모래채취지역만 빼고 생태계보전지역으로 묶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라며 분노를 드러냈고 대이작도 강태무 이장(44세)은 “이번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은 해양수산부가 성과에 급급해 지역주민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실효도 없는 생태계보전지역을 지정하는데 주민들을 이용해 먹은 꼴에 불과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녹색연합은 “옹진군이 군민과의 약속을 깨트리고 2004년에도 바다모래채취허가를 계속하고, 서해안 앞바다의 환경파괴를 수수방관한다면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단순히 해수욕장의 모래가 유실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모래채취 허가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생태적으로 가치가 뛰어난 한 곳에서 20여년동안 계속되는 모래채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환경피해들을 정부가 수수방관해 왔다는 점이다. 해당지역의 모래채취가 금지되면 ‘골재파동’ ‘골재대란’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빌미로 아무런 대안마련이나 대책없이 환경피해와 주민의 생활터전의 훼손을 외면하고 있다는데 있다. 한국골재협회 인천지부의 연구보고를 토대로 인천 앞바다를 포함한 경기만의 부존량을 볼때 모래채취사업은 앞으로 25-30년을 충분히 넘길 수 있다는 분석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25-30년 동안 캘 수 있는 모래가 매장돼 있다는 것으로 계속해서 모래를 퍼 올리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지금이라도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관련업계는 재생골재의 사용과 대체 광구의 확보, 그리고 중국과 북한으로부터의 모래수입 등 모래공급의 다양한 방안을 구체화시키는 논의 없이 도리어 생활터전인 바다모래를 지키기 위해 문제제기를 하는 지역주민들에게 ‘그럼 대안이 무엇이냐?’고 되묻는 것은 역할이 전도된 듯한 느낌이다. 현실가능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와 해사채취 업계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끝>

이 내용은 한겨레21(2004.1.29)에 실린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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