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비평]몇몇 언론들의 교묘한 트집잡기

2004.02.05 | 미분류

총선환경연대와 총선여성연대는 지난 4일 각각 공천부적격 명단을 발표했다. 총선환경연대는 새만금 간척사업, 부안 핵폐기장 같은 국가환경 현안과 관련, 친환경적인 정책과 법안을 반대한 전·현직 의원 6명의 이름이 담긴 ‘반환경 정치인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공개했고, 총선여성연대도 양성평등관련 법안 및 정책 찬반여부, 여성 비하적 발언여부, 가부장적 여성상 강화 발언여부 등을 분석해 ‘공천 부적격 반(反)여성 후보’로 현역의원 10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번 명단발표를 두고 보수언론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유권자들이 ‘헷갈려’하는 것을 넘어 ‘어지러울’ 지경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교묘한 트집잡기’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몇몇 언론이 ‘교통정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민단체 역할이나 충실하지, 왜 정치이냐!”라는 불편을 드러낸 것이다. 정치계절인 총선을 앞두고 언론의 역할 축소를 우려했기 때문인가?

이들 부문별 연대단체들의 낙천명단발표 당일 석간인 <문화일보>를 필두로 <막오른 낙선운동… 유권자 “헷갈려”>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으며, 조선·중앙·동아 역시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반응이다. 조선일보는 2월5일자 <낙선운동 봇물 ‘리스트’ 남발>이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는 <명단 봇물… 유권자 “헷갈려”>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 역시 <낙선-낙천명단 봇물 …유권자들 “헷갈려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 보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몇몇언론들은 시민단체들이 낙천낙선 명단을 통해 ‘중구난방’식의 참여운동을 전개한다면 정치개혁을 지향하기는커녕, 오히려 유권자들의 건전한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는 몇몇 언론의 지나친 ‘조급증’이 아닐까? 지난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이 한창일 때 2004년에 일어날 일을 예언이라도 한 듯 중앙일보는 2000년 1월 15일자 사설<낙선운동의 적정수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합지졸의 ‘떼거리 연대’ 가 아니라 정통성 있는 시민단체의 원래 목소리를 분명히 하는 차별성을 갖는 게 긴요하다… 여러 단체가 한꺼번에 모여드니 기준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도 문제다. (총선)시민연대가 내놓은 ‘반환경’ ‘반여성’ ‘반교육’ ‘반인권’ ‘반개혁’ 등의 기준 중에서 어떤 것에 더 비중을 둬야 하는지 시민단체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설립 취지에 맞게 환경단체는 ‘반환경 정치인’을, 여성단체는 여권운동에 이해가 없는 의원들을 낙선 대상으로 삼는 게 옳다고 본다…” 이 사설은 부문단체들이 정치인들의 ‘정책 견해’에 대해 서로 다른, 차별성 있는 낙선운동이 필요하다며 ‘따로 똑같이’운동의 필요성을 주문하고 있다. 즉 단체의 특성과 해당분야에 따라 다양한 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분야별 명단발표가 오히려 유권자들을 “헷갈려”한다고 교묘하게 몰아세우고 있는 꼴이다.

유권자들은 지금까지 후보자들의 자질에서부터 정책견해까지 판단을 내릴 만한 정보가 전무했다. 2000년 총선연대의 활동으로 그 물꼬가 터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여전히 유권자들은 배고프다. 부문별 연대단체들의 낙천낙선명단 발표를 단순히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몰아버릴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활발한 토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장으로 이용하면 어떠까? 즉 정치학습의 장이 될 것이다. 후보들의 일방적인 자기선전과 상대방에 대한 과장된 비방, 막연한 이미지, 소문에 이끌렸던 과거선거와 달리, 후보의 성향과 정책방향을 정확히 판단, 비교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 또한 유권자 스스로가 명단을 발표하는 연대단체들의 세계관이나 운동의 지향점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선거에서 이런 정보들을 적절하게 판단, 활용할 경우 언론이 선거 때마다 앞장서서 주장해왔던 정책대결과 정책정당으로 나아가는 데까지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정당의 정책이 다양하듯이 시민단체의 설립 동기와 목적 역시 다양하다. 중요하게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다양한 시민단체들의 명단이 혼란스럽게 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명단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이다. 그 내용이 국민들로부터 얼마만큼의 설득력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다양성 속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시민단체의 노력에 달려 있다. 지지여부는 당연히 유권자의 몫이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명단에 대한 몇몇 언론의 우려는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의심하고 있는 언론 스스로의 조바심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유권자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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