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고②]개발의 만물상이 된 낙동강 하구, 그래도 생명의 꿈틀거림이.

2004.02.06 | 미분류

우리나라에는 철새공화국인 ‘을숙도’가 있다. 을숙도철새공화국은 2001년 12월 16일에 건국되었다. 온갖 새들이 머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바램을 담아 을숙도철새공화국을 선언하고 공화국 헌법을 선포했다. “…사람 사는 세상의 마지막 희망으로 지켜내어야 할 가치 있는 땅으로서, 어떠한 인위적 개발 유혹과 이기적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생명이 제자리에서 함께 살아가는 평화를 지키며, 하늘과 물이 맞닿아 눈부신 이 땅위에 티 없이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하여, 낙동강 하구의 갯벌과 모래톱의 갈대와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사람의 아들딸들이 더 오랫동안 간직하고 배워야할 생명의 소중한 배움터임을 깨닫고, 사람들의 뒤틀린 살림살이를 바로 세우는 모든 노력을 다함으로써, 생명밭의 어머니인 자연이 주는 새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기를 꿈꾸면서,….”

이곳 철새공화국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철새공화국이 생존의 위협을 느껴 수비대를 만든다는 내용이였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녘에 도착한 공화국 인근 도로변에는 러브호텔에서 나오는 현란한 불빛이 필자를 맞이했다. 하구둑을 지나 을숙도입구에는 27만평에 달하는 휴게소를 만났다. 2백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과 각종체육시설이 ‘점령군’처럼 진주하고 있었다. 광장 맞은편엔 최근 개관한 문화회관이 있었고,
요란한 음악이 끊이질 않는다는 롤러스케이트장과 자전거 대여점, 자동차극장, 신설주차장, 증축증인 수자원공사 전시관, 휴게실, 대형식당 등 사람만을 위한 시설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더군다나 부산시는 이곳의 그나마 남아있는 습지를 을숙도 X-game 스포츠파크로 조성한다고 한다. 이곳 역시 원래 철새공화국의 땅으로 천연기념물보호지역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었다.

필자가 찾은 철새공화국의 중심부인 을숙도 남단 갯벌에는 지금 축제 중이어야 함에도 최근의 위기상황을 직감한 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낙동강하구의 심장부인 을숙도의 갈대밭과 철새들의 핵심 서식처가 명지대교 건설로 파괴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초입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나무를 모아 바리케이트를 만들고 있었다. “이곳은 철새들이 서식하는 민감한 지역으로 차량 및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새들의 서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를 지켜주시고, 새들을 보실 분들은 오른쪽 안내선 안으로 조용하게 만나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판이 내붙어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생겼기에.. 철새공화국에 수비대가 필요했던 것일까?

2002년, 자연의 바램과는 달리 낙동강하구 보전을 위한 전담 직원 한 명 두지 않는 부산시가 낙동강하구 개발사업을 전담하는 30명 규모의 낙동강환경조성사업단을 만들고 명지대교건설 사업과 낙동강고수부지정비계획 등 낙동강하구 철새도래지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대형 개발계획들이 본격 추진되면서 이에 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지난 겨울 을숙도철새공화국 비상사태 선포식을 가졌다.

그 뒤 1년이 지났으나 을숙도철새공화국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게 변했다. 허울좋은 보호법은 이제 껍데기만 남았고 정부는 스스로 낙동강하구 보호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31일 습지보호구역 내 최초의 대형개발사업인 명지대교건설사업을 기습적으로 승인해 부산시에 ‘개발의 면죄부’라는 새해선물을 안겨주었다. 문화재청 역시 지난 해 9월 (낙동강)염막둔치 정비사업을 허가하였다. 낙동강하구의 마지막 남은 육지부 핵심서식처와 오리기러기들이 주린 배를 채우는 유일한 먹이공급처를 스스로 포기하여 참여정부의 환경정책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낙동강하구 신도시를 건설하고 싶은 부산시는 문화재청과 환경부의 허가에 힘을 얻어 기다렸다는 듯 엄궁대교와 삼락대교, 사상대교 건설계획과 6월 신공항본격 추진 등 과거 어느 시기에도 없었던 온갖 개발 계획을 따 쏟아내고 있다. 이 밖에도 낙동강 고수부지 정비사업, 서낙동강정비계획, 명지주거단지 고층화 계획, 눌차만매립계획, 도시철도건설계획, 경전철건설계획, 신호배후지구 화전산단 건설계획, 을숙도 X-game 스포츠파크 등 낙동강하구는 자그마치 13개의 대형 개발 계획이 예정되고 추진될 경우 사실상 낙동강 하구와 연안지역 생태공간의 대부분은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는 철새공화국의 운명을 보전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였다. 낙동강하구 일대는 한마디로 개발의 ‘만물상’이 되어 버렸다.

낙동강하구 파괴의 시발점은 1987년 낙동강하구둑이 생기면서부터다. 낙동강 하구언이 조성된지 올해로 만 15년이다. 당시 생태계 파괴를 우려한 생태주의자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 87년에 완공된 하구언은 날이 갈수록 폐해가 확산되고 있다.
하구의 물흐름의 변화로 새로운 모래톱이 끊임없이 생성되며 지형을 바꾸고 있으며, 밀물과 큰홍수 시 상습적인 침수와 피해를 받고 있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이 사라졌고 하구둑 위는 호소화로 인해 하구 일대가 중금속의 축적과 수질오염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기수성 어류와 생물들이 사라져갔고 부산시민은 민물(오염된 강물을) 을 얻는 대신 수질오염 노이로제와 엄청난 유지관리비를 안게되었고 풍요로운 하구와 건강한 해산물을 잃었다.
하구둑 건설과 그뒤 이어진 서부산권 개발 사업으로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라는 명성은 사라졌지만 을숙도를 중심으로하는 낙동강하구는 18종의 천연기념물 조류를 포함해 한 해 200여종 1~20여만 마리의 새가 찾아오는 한국을 대표하는 철새도래지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기준인 “람사기준”을 충족시키고 있다. 비록 개체수는 주변 습지의 개발로 많이 줄었으나 종 다양성과 종 풍부도 등 종합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한국최고의 철새도래지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하구둑 건설 이후 시민들에게 낙동강은 잊혀져 가게 되었으며, 죽은 물로 인식되어 하구의 가치를 조명하지 못한 채 부산시가 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빌미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구둑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낙동강과 단절되어 갔으며, 부산시민의 식수원이자 농산물, 해산물의 원산지 임에도) 죽은 강으로 인식되어졌다. 단지 하구둑은 거쳐가는 교량으로 자리잡았을 뿐이다. 모두의 무관심속에 낙동강 하구는 파괴되어 갔고 죽음을 앞둔 중환자처럼 신음하고 있다. 흉물처럼 남아 있는 하구둑의 존폐여부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풀리지 않는 문제다. 하구둑의 교량 기능만을 살리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둑의 기능은 포기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강물의 흐름을 차단한 결과 하구는 썩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낙동강 하구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서 정부차원에서 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그 시작은 1966년 지정된 문화재보호구역으로부터 1982년 환경부의 연안오염특별관리구역 지정, 1988년 건교부의 자연환경보전지역 지정, 1989년 환경부의 자연생태계 보호구역, 1999년 환경부의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동일한 지역을 5가지의 이름으로 각각 지정한 것은 그 만큼 낙동강하구가 가지는 기능과 역할이 크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식한 결과이다. 환경보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각종 환경법에 의해 개발이 엄격히 제한되야 함에도 불구하고 낙동강하구가 개발계획에 무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문화재보호법과 습지보호법의 예외 항목 및 모호한 심의기준’에서 찾을 수 있다. 낙동강 하구를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된 환경법의 허점을 이용해 각종 난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문화재보호법 제12조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거나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그 지정을 해제할 수 있다. 문제는 해제 사유에 일관성이 없어 ‘특별한 사유’가 모든 사례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동차 극장 등이 허가되기도 하였으며 실제로 지난 1983년부터 주거지 확보, 공단부지 조성, 철새도래지 기능상실, 수질오염, 도로건설 등을 명분으로 낙동강 하구 일대 10곳, 전체 면적의 1/4 정도가 보호구역에서 해제됐다. 또한 부산시의 계획대로 명지대교가 건설되면 보호구역 내에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습지보호법을 예외적으로 적용하는 첫 사례가 된다. 예외 조항때문에 환경보전의 보루인 각종법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더욱 큰 문제는 국가기관이 가장 민감한 핵심 서식처를 파괴하는 명지대교를 허가해 버린 탓에  문화재청과 환경부가 더 이상 부산시의 개발 계획을 막을 명분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탓일까? 명지대교사전환경성 검토 통과 발표 후 부산시는 곧바로 문화재보호구역 내 세 개의 대형다리 건설계획을 추가로 발표하였다. 낙동강둔치 염막지구의 정비사업과 을숙도 자동차극장을 허가한 문화재청이 을숙도 X-game  스포츠파크 건설을 막을 명분도 희박해졌다. 이런 정부기관의 무능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산시는 명지주거단지 고층화 계획을 반대하는 문화재청과 환경부의 지침을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묵살하고 재추진할 것임을 공표하였다.

또한 문화재청의 경우 허가를 내준 사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환경 파괴를 가속화시킨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허가가 내려진 현상변경안에 대해 문화재청은 단지 지도 조언 권고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현상변경안을 허가 받고 나면 실시설계 단계에서 얼마든지 계획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명지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명지주거단지 개발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은 명지주거단지 일대가 철새도래지인 점을 감안, 주거단지의 층수를 5-10층으로 제한하면서 개발안을 승인하고, 명지주거단지 주변으로 완충지대를 설정해 습지대를 보호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부산시는 이 지역에 15-20층 규모의 고층 건물 건축이 가능하도록 도시계획 변경을 추진하고 있고 문화재청이 철새도래지에 주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정한 완충지대는 현재 출입제한 등의 보호장치가 없을 뿐 아니라 체육시설들을 설치하는 등 오히려 파괴를 조장하며 방치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은정(부산녹색연합) 부장은 “각종환경법의 예외조항과 함께 정부는 보호와 보전지역으로 지정만 했을 뿐 관리에는 소홀했다. 보전보다는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는 지자체에 관리를 맡김으로써 생태계파괴를 자초하게 되어 보호지구의 무법천지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얘기이다. 여기에 경제침체에 따라 낙동강하구를 부산지역 ‘성장의 엔진’으로 여기는 사회적 정서도 작용하고 있다. 개발심리가 팽배해 개발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일반시민까지 하구가 매립되고 공단이 들어서는 것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하늘길을 뚫고 지난해 10월말부터 북녘 시베리아 벌판에서부터 낙동강 하구에 도착한 철새들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 주변환경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제방 위에 앉아 주위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깃털을 말리는 녀석에서부터, 물속으로 잠수해 물고기를 채 먹는 놈들까지. 안내선을 따라 도착한 곳은 을숙도 남단이다. 갈대밭을 배경으로 4백마리는 됨직한 고니떼들이 모여있다. 언뜻 보면 갯벌에 스티로폼이 널려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들이 내는 고옹- 고옹- 꽥-. 나팔소리에 갯벌이 쩡쩡 울린다. 한쪽 무리들은 비행연습이 한창이다. 날개를 무겁게 퍼덕거리면서, 발로 차듯이 타타타 지면을 박차고, 달음박질치며 길게 활주를 하다 허공으로 솟구친다. 흡사 비행기의 이륙장면이다. 이때 ‘물속의 매’라고 불리는 가마우지떼가 저공비행해 수면 위에 내려앉는다. 모두가 철새공화국 수비대 출범을 비장한 마음에서 벌이는 축하비행이다. 청소년, 종교인, 교사와 노동자, 환경운동가 등 7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2001년의 희망이 아픔이 되었고, 또 다시 아픔을 희망으로 만드는’ 철새공화국 수비대 출범식이 시작했다. 수비대는! 낙동강하구 생태 및 환경조사를 하는 ‘고니 수비대’, 낙동강 하구관련 언론 및 행정 모니터링을 하는 ‘저어새 수비대’, 이메일 캠페인을 맡는 ‘갯벌 수비대’, 그리고 회원모집 등을 전담하는 ‘기러기 수비대’로 구성되어 있다. 을숙도철새공화국 수비대 출범식을 통해 “낙동강하구 일원에서 추진중인 명지대교건설계획과 낙동강고수부지정비계획을 포함한 13개 대형개발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정부와 부산시에 촉구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낙동강하구는 우리시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소중한 미래의 자산인 낙동강 하구를 지키기 위한 실천적 노력을 경주할 것을 천명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내원사의 지율스님은 “3월1일에 무분별한 개발로부터의 독립을 바라는 마음으로 천성산에서 을숙도까지 생명의 순례를 가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전봇대위에서 철새수비대 출범행사를 지켜보던 황조롱이가 급하게 갈대숲으로 몸을 숨긴다. 비행기가 철새공화국을 삼키기라도 할 듯 저공비행을 하며 지나간다. 하늘을 나는 인공새가 새를 쫒아내는 현실을 을숙도에서 만날수 있다.

‘새가 없는 자연은 인간도 버틸 수 없다’는 결코 지나가는 말이 아니다. 왜 이들은 철새공화국을 선포하였고. 급기야 수비대를 만들수 밖에 없었는지를 정부와 부산시는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해답의 열쇠는 의외로 쉬운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환경부와 문화재청, 부산시, 그리고 환경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함께 장화를 신고 ‘을숙도’ 현장답사를 해보라. 맨발이면 또 어떻겠냐. 철새공화국에는 새들과 우리의 미래세대가 주인공이다. 너무나 쉽게 을숙도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미소를 짓는 새들과 어린이들을 보라.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려보자. 거기에 답이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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