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공사중’

2004.03.09 | 미분류

최근 인천앞바다가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바다모래 때문이다. 이번 바다모래를 둘러싸고 벌인 정부부처의 형태를 지켜보면 ‘무소신’과 ‘무책임’, 그리고 ‘사후약방문식’ 정책들을 집대성하기에 충분했다. 환경행정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백화점이라고 할까?

지난 20여년 동안 인천 앞바다에서는 2억㎥가 넘는 모래가 채취됐다. 특히 옹진군의 경우는 해마다 그 양이 급증했다. 20여년 동안의 채취로 해양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돼 꽃게와 새우 넙치 등 어획량이 37~85%까지 감소했고, 모래 유실 등으로 인천 앞바다 대부분의 해수욕장이 황폐화되었다. 현장을 한번이라도 둘러보면 눈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환경부와 건설교통부, 해양수산부, 옹진군은 인천앞바다의 해사채취 결과 나타난 해양생태계 파괴와 어족자원 고갈, 자연경관의 훼손 등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요구에 대해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모래파동’이라는 말로 호떡집에 불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최근에 보여준 환경부의 형태는 어떠한가? 모든 환경문제나 환경현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환경영향평가가 대단히 부실하게 작성되어 개발사업을 통과시키는 절차이자 면죄부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환경부가 다른 개발부처로부터 밀려오는 개발사업의 환경영향을 판단하는 가치관과 기능이 상당히 무디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이번 바다모래문제를 둘러싼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환경부는 녹색연합이 요구한 환경영향평가와 관련된 유권해석을 통해 “동일광구에서 동일사업자가 사업을 시행할 때 ‘신규 골재채취허가시 기존허가 채취량과 신규허가 채취량을 합산하여 환경영향평가 대상여부를 판단’이라고 회신을 보냈으며 “동일사업자의 채취량 또는 채취면적을 합산하여 평가 규모 해당여부를 판단하되 “기존 허가 받은 채취량·채취면적을 계산할 때에는 최초 허가 받은 채취량 등 과거 허가규모를 모두 합산함”이라고 이미 건교부와 해수부에 유권해석을 내린바 있다. 관계기관회의에서는 “2001년 7월 2일 이후 사업허가된 규모만을 합산하여 적용한다”로 초기의 결정을 번복했다. 한마디로 골재의 안정적인 수급에만 정책의 목적을 두고 자연생태계 문제는 나 몰라라하는 꼴이 되었다. 이로서 환경부 스스로 환경영향평가제도를 완전히 ‘물’로 만들어 버렸다.

해사채취업체들의 편법도 동원되었다. 현행 환경영향평가법은 채취 면적이 25만㎡ 이상이거나 채취량이 50만㎥ 이상인 경우에만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돼 있어 관련업자들은 소규모로 자주 허가를 받으면서 법망을 피해왔다. 98년부터 2003년까지 누적량이 무려 661만㎥로 환경영향평가 대상규모의 최고 13배를 초과하는 엄청난 양을 동일광구에서 집중적으로 바다모래가 퍼 올려지고 있는데도 지금까지 환경영향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지역주민의 생활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의무가 있는 옹진군청이 여기에 일조를 했다.

해사채취지역은 빼놓고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한 해양수산부는 어떠한가? 지역주민대상으로 하는 공청회 당시까지만 해도 현재 해사채취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까지 포함하여 옹진군 주변 해안 74.6㎢정도를 생태계보전지역지정계획으로 포함시켰으나 2003년 12월 31일 지정, 고시된 생태계보전지역안은 해사채취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을 뺀 55.7㎢로 축소 발표하였다. 해양생태계, 자연경관 그 어느 것도 보전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지역주민들은 모래채취지역만 빼고 생태계보전지역으로 묶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해양수산부가 실효도 없는 생태계보전지역을 지정하는데 주민들을 이용했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미 지난 1990년대 말부터 여러 차례 ‘모래 파동’이 예견됐지만 건설교통부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외면해 왔다. 2000년초부터 재생골재의 사용과 대체 광구의 확보, 그리고 중국과 북한으로부터의 모래수입 등 모래공급의 다양한 방안을 구체화시키라는 전문가들과 환경단체의 요구에 대해 건설교통부는 흉내만 낼 뿐 대책다운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옹진군이 모래채취량을 줄이고,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에 대해 건설교통부는 해당 지역의 모래 채취 수준을 줄이거나 금지하면 “수도권에 대규모 ‘모래 파동’이 일어난다”면서 ‘협박’하기 바빴다.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생태적으로 가치가 뛰어난 한 곳에서 20여년동안 계속되는 모래채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환경피해들을 정부가 수수방관해 왔다는 점이다. 해당지역의 모래채취가 금지되면 ‘골재파동’ ‘골재대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빌미로 아무런 대안마련 없이 환경피해와 주민의 생활터전의 훼손을 외면하고 있다는데 있다. 언제까지 ‘모래파동’이라는 말로 해당지역주민들을 ‘협박’할 것인가?

우리는 이맘때쯤이면 매년 ‘모래파동’이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해사채취를 허가할 것이냐 한다면 얼마나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후약방문식으로 일관하여 대책다운 대책을 세우기 않는다면 말이다. 또한 개발 전성기 때처럼 경제특구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공단을 짓고, 댐을 건설하며, 도로를 놓을 것이고, 수도권 팽창을 부채질하는 대형 신도시를 마구 짓겠다는 거대한 토건국가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성장의 엔진’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규모 토목사업과 건축이 계속되는 한 건설교통부와 환경부, 해양수산부관련부처 관계자들은 국내 바닷속을 다 헤집어도 시간만 지나면 채워지는 ‘모래’로만 보일 뿐이다. 그들에겐 주민들의 생존권이나 환경파괴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는 없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공사중’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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