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사람들③]대안은행, 사회연대은행을 찾아서

2004.03.13 | 미분류

돈을 흔히 혈액에 비유한다. 혈액은 사람의 신체를 순환하며 필요로 하는 것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시스템은 피가 머리로만 올라가고 발까지 내려오지 않는 꼴이다. 그렇게 되면 아래쪽의 세포가 죽어간다. 머리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전체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가난 없는 사회 만들기 위해 돈의 가치와 윤리성을 창출해 가는 곳이 있다. ‘미래를 여는 희망의 돈’을 대출해 주는 곳이 있다. 제도권 은행과 거꾸로 가는 또 하나의 은행, 사회연대은행이 바로 그곳이다.

지난 3월 4일,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사회연대은행을 찾았다. ‘저소득층 여성가장 공동체 창업지원’ 신청 마감을 앞두고 관련 신청서를 정리하고 있는 이종환(43) 부장과 임은의(35) 차장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보통 은행과 어떤 면에서 차이점이 있을까? 이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기존은행은 고객의 재산증식을 목적으로 하지만, 대안은행을 표방하는 사회연대은행은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빈곤소외계층들의 자활자립기반을 목적으로 한다. 또, 금융기관의 여러 기법 중 대출이라는 방식을 이용하여 시드머니를 지원하고, 상환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상환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를 병행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상환금은 은행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빈곤계층의 대출에 다시 쓰는 사회환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대출과정이 까다롭지 않느냐는 물음에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다 융자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연대은행에서 제공하는 소액융자를 통해 가난을 딛고 일어섰다는 사례가 많아지면 이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우리 은행에 동참을 할 것이기 때문에 우선은 성공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을 사전에 엄밀히 선별하고 있습니다.”
이종환 씨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가난하고 자활의지가 있고, 사업아이템이 분명하고,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대상자를 선정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면접과 현장 실사, 자활교육과정 등을 거치면 창업자금을 지원받게 된다. 이미 지난해 자활 의지를 가진 저소득층 여성가장 42명에게 2억3천만 원을 담보없이 소액 대출했다. 대출금은 6개월 거치 30개월 균등 분할상환하면 된다. 이미 일부 대출금은 올해 2월부터 상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금융소외’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수익성과 상환 중심의 신용평가에 기반을 둔 제도권 금융시스템에서 담보와 보증 능력이 없는 저소득계층이 창업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여간 쉽지 않다. 자금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교육과 전문성, 자활의지, 사회의 지지기반도 약한 이들이 영세 창업에 성공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회연대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각자의 기술과 경험을 살린 소규모 자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종자돈을 빌려주고, 이들의 창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자활의식을 높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 또, 전문 교육훈련과 경영 지도를 포함한 통합적인 지원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다. 기존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제도와 구별되는 점은 빈곤층에게 ‘시혜’가 아닌, ‘자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안정된 일자리 확보와 소득 향상의 두 가지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무담보 소액대출을 한다는 점에서 ‘마이크로 크레딧 은행(micro-credit bank)’이라고도 하고, 빈곤층이나 실업자, 여성 같은 사회 약자와 연대하여 시장이 방치한 삶의 질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윤리은행(Ethic Bank)’이라고도 한다. 창업자금을 단순히 부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금을 대출해주고 반드시 상환하게 하여 상업 대출의 성격도 띠고 있다.

가난을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며 임은의 씨는 안타까워했다. 가난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구조화되는 방식과 시행정책에 의해 생겨난다고 했다. 빈곤은 세습되고 기회로부터 단절되어 있는데,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빈곤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이 빈곤의 고리를 끊는 징검다리 역할을 사회연대은행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임은의 씨는 말했다. 개인대출보다는 공동체 지원을 선호하는 까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은의 씨가 사회연대은행의 소식지인 「탈출기」를 보여주었다. 「탈출기」에는 그동안 사회연대은행의 대출로 가난을 극복해 가는 공동체들의 희망찬 얘기가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저는 희망 없이는 못삽니다’라며 팀웍의 기본은 구성원의 근면성이라고 말하는 광주의 ‘두부마을’ 사람들, 도움을 받았던 사람에서 이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가 되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서울 강서구 ‘실로 여는 세상’사람들, 이런 마음 따스하고 푸근한 사람들의 얘기가 담겨 있었다. 혼자 활동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지만, 공동체로 지원할 경우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받고 계획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하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까지 키울 수 있다고 한다. ‘백지장도 받들면 낫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실제 창업자본금에 근접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즉, 1인당 천만 원으로 모두 5명이 구성되면 5천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낯선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종환 부장 역시 RM(Relation Manager)팀의 일원이다. ‘사후관리자’라고 부르는 RM은 선정된 공동체에 대해서 창업준비에서부터 대출금에 대한 이자상환이 시작되는 3년 뒤까지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토털서비스를 실시한다. 이것을 책임진 사람들이 ‘사회연대은행의 꽃’이라고 하는 ‘RM’이다.
사회연대은행 창립멤버인 이 부장은 사람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향후 사회연대은행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좌우할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믿고 우리를 신뢰합니다.”
‘미래를 여는 희망의 돈’을 취급하는 사람들에겐 ‘사람이 정직하다’는 믿음, 이런 전제조건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존 제도권 은행들이 의심과 불신으로 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사회연대은행이 소액융자를 대출해 주는 것만이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자신 속에 잠재하고 있는 능력을 알게 하고 탐험하게 만든다. 사회연대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찾아내고, 이제까지 한번도 써 본적이 없는 창조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생계형 창업자금의 대출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의 연대를 사전 저축하는 행위이고, 공동체의 결속과 믿음을 빌려주는 것이다.
올 2월부터 대출금에 대한 부분 상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공동체의 반응을 보면 사회연대은행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난생 처음 융자를 받은 사람들은 원금을 갚을 때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왜냐면 자기가 원금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번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가져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인 것이다. 스스로 힘으로 돈을 벌어 원금을 갚는 기쁨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고, 자신에게도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힘이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겼다고 한다.
“돈을 갚아 나가는 게 매출액이 많지 않은 사업체에게는 좀 부담스럽지만 직접 벌어 상환금을 갚아 가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저축계좌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아요.”
임은의 팀장은 공동체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사회연대은행이 풀어야 할 숙제도 아직 많다. 무엇보다도 사회연대은행에는 종자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기금 대부분이 지정기탁 형식으로 마련되기 때문에 사무국 운영비마저 부족한 실정이다. 창업자금을 저금리를 대출하는 대신 공익가치를 추구하는 부분에 대해 운영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형태를 고민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단법인 ‘함께 만드는 세상’이 공식명칭이다. 은행이라는 이름이 아직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연대은행은 아직 공인된 금융기관으로서 지위를 갖지 못하고 민간기구의 형태로 저소득층 창업자금으로 지원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에 하나의 은행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다. 한국에 사회연대은행을 소개하는데 앞장선 노대명박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활지원연구팀장)는 “기존은행은 저소득층의 창업대출을 높은 손실율이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사회연대은행이 은행이 갖춰야할 요건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며, “자활특별법을 별도 제정하는 방법을 찾아 은행으로 정식등록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창업아이템을 마련할 수는 있지만 저소득층에게 과연 적합한 창업아이템인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로 여는 세상’을 지원하고 있는 강서 자활후견기관의 김영은(27)씨는 “저소득층에 적합한 창업아이템을 보다 많이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사회연대은행만의 몫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활후견활동을 하는 사회복지사들과 사회연대은행의 사후관리자, 그리고 경영전문가, 지역시민사회 등이 공동으로 연구모임을 만들어 저소득층에게 보다 적합한 창업 아이템을 개발하고, 방향성을 잡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잠재력을 갖고 있는 시민사회와 협력 강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첫 걸음을 떼어놓는 것은 어렵지만 그 발걸음에 힘이 붙고 속도가 붙고, 함께 발을 맞춰갈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고난의 길이라도 문제없이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대안은행, 사회연대은행의 새로운 시도에 함께 어깨 걸고 발걸음을 맞춰나갈 이들의 참여를 기다린다. 경제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사회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어 ’20대 80’을 넘어 ’10대 90’의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우려의 경고음 넘치는 상황에서 사회연대은행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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