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4] 친환경 농업을 가꾸는 흙살림연구소

2004.05.19 | 미분류

3월18일 충북 음성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완행버스로 20여분을 달려 충북 괴산군으로 접어들었다. 소아 지역을 지날 무렵 차창 너머로 인삼밭의 축대가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다. 때늦은 폭설의 상처였다. 한참을 더 달리자, 흙살림연구소가 나타났다.

마침 ‘친환경 농업교육’이 열리는 날이었다. 온 나라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친환경 농업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강연과 ‘균배양체 제조와 활용’이라는 현장실습,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는 농민 이야기’ 등에 귀기울였다. 3월 계획표에는 농민단체·소비자단체·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온 교육요청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연구소쪽은 출장교육과 함께 회원 농민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지도 교육을 병행한다. 지난해에만 8천여명이 친환경 농업 교육을 받았다. 오늘은 27명이 등록했다. “‘관행농업’에서 ‘유기농’으로 바꾸려는 농민들, 귀농을 준비하는 젊은이,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려는 이들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노광훈(43) 사무국장이 일러줬다. 노 국장 역시 농사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지난 1월부터 연구소로 뛰어들었다. 이오덕 선생님이 만든 ‘한국글쓰기연구회’에서 10년 동안 일하면서 농사말 바로쓰기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그는 300평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중병에 걸린 흙, 어떻게 살리나 “농사는 거름이 생명입니다. 얼마나 좋은 거름을 밭에 넣느냐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경북 상주에서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는 구자훈(31)씨는 “최근 맺어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대안으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려 한다”며 “농사 짓는 젊은 층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정기해·신강선씨 부부는 액비와 균배양체 자가제조법 실습시간에 구수한 흙냄새를 맡으며 즐거워했다. 홍성 풀무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동혁(31)씨는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학교가 좋은 소비처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태근(46) 흙살림연구소 회장은 “유기농업으로 농사 짓는 농장에서 급한 볼일이 생겼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2001년 7월 친환경 농업 견학단으로 캐나다에 다녀온 경험담에서 나온 얘기였다. 유기농을 하는 캐나다 농부들은 담배 피우는 일은 물론 볼일조차도 조심스럽게 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질소성분의 뜨거운 오줌이 토양 속에서 살아가는 미생물을 죽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란다. 그는 “이런 마음은 우리 조상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우리 조상들은 마당이나 텃밭에 뜨거운 물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땅속 지렁이 같은 미생물을 보호하자는 생각에서였죠. 흙을 살리는 지혜가 생활습관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겁니다.” 이 회장은 “친환경 농업의 기본은 바로 흙”이라며 “지금까지 우리 농업의 가장 큰 문제는 작물을 키우고 살찌우는 흙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흙은 생명체다. 모든 생물과 미생물은 그 속에서 숨을 쉬듯이 살아 있다. 흙이 살아 있어야 식물도 왕성하게 자란다. 그러나 생산량 증대만을 목적으로 하는 ‘생태계 파괴형 농업’ 때문에 흙이 중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유기농을 시작했지만, 필요한 자재들이 모두 일본에서 수입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김치나 된장의 경우에서 보듯 우리의 발효기술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지만, 당시에는 유기농법에 필요한 미생물 효소 하나 만들어놓은 게 없었다. 결국 괴산미생물연구소(1991년)를 거쳐 흙살림연구소가 1993년에 태어났다. 그동안 토양개량용 미생물제인 ‘흙살림’, 광합성 미생물 제제 ‘빛모음’, 음식물 찌꺼기 발효제 ‘부엌살림’ 등을 잇따라 개발해 보급했다. 지금은 1천여 회원 농가에 직접 개발한 제품 20여 가지를 ‘공급’(상업적 이윤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판매나 매출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음)한다.

이 연구소는 2002년 1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최초로 민간인증기관으로 지정받았다. 유기농 민간인증 2년째를 맞은 지난해 인증 농가 수는 1400농가에 이르렀다. 인증은 생산자의 영농 경력, 포장 여건, 토양과 용수의 건강성, 생산과 품질 기준의 준수 여부, 생산물의 안전성 등 전 과정이 기준에 적합해야 받을 수 있다. 쉽게 말해 비료 대신 퇴비를, 농약 대신 미생물이나 오리·우렁이를, ‘호르몬제 투여’보다는 꿀벌이나 나비 같은 ‘천적 이용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기적인 삶을 위한 운동 전개 지난 1월 말 문을 연 흙살림연구소 오창센터는 안전한 농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잔류농약 검사를 비롯해 유전자 조작식품(GMO), 토양성분, 중금속, 수질오염까지 체계적으로 검사할 수 있어 농산물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친환경 농산물의 생산과 인증, 그리고 유통의 과학적 접근과 분석이 가능해졌다. 연구소쪽은 ‘학교급식 조례제정운동’ ‘텃밭 가꾸기 운동’ ‘무농약 쌀 한 가마 주문하기 운동’ ‘직거래 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유기적인 삶이 생활에 녹아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최근 우리 식탁에 오르는 유기농산물 가운데는 이른바 ‘웰빙’ 바람을 타고 수천km를 이동해온 것들도 있다. 외국산 유기농산물은 에너지 과다소비 문제와 쓰레기 문제를 안고 있다. 오늘 내 몸의 기운이 되고 영양분이 될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아는 것은, 내 소중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성찰의 기회이기도 하다. 병들어가는 ‘흙’에서 희망의 싹을 일구는 사람들의 도전과 패기가 돋보이는 때다.<끝>

이글은 한겨레21의 <김타균의 풀뿌리대안운동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연재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