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7] 청소년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2004.06.05 | 미분류

청소년도 인간으로서 가질 모든 권리를 갖는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청소년은 ‘학생’이고 ‘입시생’이기 때문에 권리를 행사하는 데 많은 제약을 받는다. 심지어 자신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청소년들도 많다. 인간의 존엄성, 타인에 대한 배려, 토론과 대화, 자율과 자치의 가치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청소년 인권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군포시다. 청소년 인권공화국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 4월10일 군포시로 향했다. 군포시는 산본역 둘레로 상설 경마오락장들이 밀집되어 있는 점이 다른 새도시와 다를 뿐, 보통 수도권 새도시처럼 아파트촌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소각장 반대운동 계기로 활동 시작

이날 군포시청의 ‘푸른희망군포21실천협의회’ 회의실에서는 청소년위원회가 열렸다. 참석한 청소년들의 얼굴에서 싱그러운 봄기운이 느껴졌다. 청소년위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각자의 경험을 예로 들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학교에서는 인권교육이라는 걸 받은 적이 없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권리가 무엇인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요.”(선혜민·15) “여학생은 머리카락이 어깨선까지 내려오면 안 되죠. 길면 반드시 뒷머리 아래를 묶어야 하고, 고무줄도 학교에서 지정하는 고무줄로 묶어야 돼요. 안 그러면 벌점을 받죠.”(박은조·15)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청소년 문화는 아직도 1970∼80년대 수준이다. 상습적인 구타와 체벌 대신 ‘벌점’이 청소년들을 옭아맨다. “성적을 갖고 차별하는 게 제일 싫어요. 아예 (차별을) 드러내놓고 하시는 선생님들도 많아요.”(안세연·14)

군포 지역의 청소년 인권개선 활동은 지난 2002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청소년과 교사들이 함께 청소년 인권 실태조사를 하면서 청소년 인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지난해 4월에 발표된 조사보고서는 군포 지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교사로부터 폭력이나 폭언을 경험한 청소년은 전체 조사 대상자의 61%를 넘었고, 다른 청소년으로부터 신체적 위협이나 학대, 폭행, 폭언을 경험한 청소년도 31%나 됐다. 소지품 검사 등 사생활 침해를 경험한 청소년은 56%에 육박했다. 또 과반수의 청소년들이 군포 지역의 청소년 인권점수를 50점 이하의 낙제점으로 평가했다.

청소년인권 보호에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사들은 인권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사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조사 대상자의 82%가 교사가 되기 전에 인권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또 87%에 이르는 교사들은 임용 뒤에도 인권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군포시가 청소년 인권문제에 큰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시민들은 산본새도시 소각장 반대운동을 꼽는다. 군포시는 9만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만명이 청소년이지만 이들을 위한 공간은 크게 부족했다. 하지만 소각장 반대운동이 시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 소각장 반대운동을 통해 아이들의 미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군포시는 최근 청소년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군포청소년수련관 김지수(32) 교육부장은 “조례 제정을 통해 여러 가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인권교육이나 인권 실태 조사가 조례를 근거를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적·재정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청소년들이 일찍부터 참여의 경험을 쌓고, 그 과정에서 민주시민으로서 소양을 갖출 수 있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군포시는 지난 2002년 청소년과를 만들었다. 청소년 전담부서는 다른 자치단체에서는 보기 힘들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군포시는 청소년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금싸라기 땅으로 꼽히는 금정동 847-3번지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청소년 수련관을 짓고 있다. 또 충남 청양에 청소년수련원을 마련했다. 군포시는 지난 2003년에 ‘청소년자치운영위원회’도 만들었다. 이 지역 중·고교 교장단이 추천한 16명과 청소년단체에서 추천한 8명, 공개 모집 1명을 비롯해 총 25명의 청소년으로 구성된 자치위원회는 연간 4회의 정기회의와 임시회를 열고 있다. 올 초까지 모두 8차례 회의가 열렸을 정도로 관심이 높다.

‘청소년 인권공화국’ 건설의 꿈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며, 이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청소년은 하나의 인간으로 어른과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있으며, 존중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제정된 ‘군포 청소년 인권도시 선언’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군포시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청소년 인권 개선을 위해 공동으로 만든 선언문이다. 이 선언문은 지역에서부터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도록 청소년과 어른들 모두가 노력하자고 약속한 것이다. 이 선언문의 끝자락에는 이런 바람이 적혀 있다. “이 선언은 일회적으로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모두 실천하기 위한 것입니다. 앞으로 군포시 청소년들의 인권이 전면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때까지 선언은 계속될 것이며, 청소년들과 청소년의 인권을 지키려는 어른들의 제안에 의해 계속 수정·보완돼나갈 것입니다.”

군포시에서 만난 시민들은 꿈을 꾸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인권이 제대로 지켜지고 존중되는 세상을 만드는 꿈이다. ‘청소년 인권공화국’을 건설하려는 어른들의 꿈 속에서 군포시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자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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