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8] 정토회관의 ‘쓰레기 제로 운동’

2004.06.08 | 미분류

4월19일 저녁 서울 남부터미널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정토회관을 찾았다. 아는 이들이 “늦게 와 맛있는 음식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며 지하식당으로 필자를 안내한다. 저녁 6시부터 시작하는 저녁공양에 30분이나 늦게 도착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식당 한쪽 벽에는 ‘그릇 닦아 먹기’라고 쓰인 게시판이 붙어 있었고 그 곁으로 전통사찰에서 볼 수 있음직한 ‘발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식사를 끝낸 이들은 한쪽에서 접시를 닦고 있었다. 식사는 완전 뷔페식이다. 접시에 먹을 만큼 음식을 들고 있는 필자에게 박석동(34) 사무국장은 “무조각 안 가져가세요?”라고 조심스런 어조로 말을 건넨다.
한달 실천내용 공동으로 정해 ‘아차.’ 발우 대신 접시를 이용하는 것을 빼고는 발우공양과 같다. 이름하여 ‘접시공양’이다. 정토회관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통사찰의 발우공양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정토회관 공동체 구성원들은 아침식사는 발우공양으로 하고, 점심·저녁 식사는 접시를 쓴다. 접시공양은 발우공양처럼 각자의 접시에 먹을 만큼 음식을 덜어서 모두 먹고 접시에 남은 음식 찌꺼기는 김치조각이나 무조각을 이용해 깨끗이 닦아먹음으로써 음식물을 전혀 남기지 않는 것을 뜻한다.

무조각으로 훔친 접시를 들고 설거지를 하려고 식당 한쪽에 놓인 싱크대로 향했다.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3단계로 물이 담겨 있었다. 야채를 데친 물과 쌀뜨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헹굴 수 있는 물로 나뉘어 있다. 합성세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쌀뜨물과 야채 데친 물은 일상적인 조리과정에서 버려지는 부산물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천연세제들이다. 정토회관에서는 이들을 모아두었다가 접시공양을 마친 뒤에 세제로 쓴다.

정토회는 1988년 일과 수행을 하나로 하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찾고 만들어나가는 수행 공동체로 출발했다. 특히 소비지향적 탐욕과 경쟁의 생활양식이 오늘날 생태 위기를 불러왔다는 반성을 통해 1999년부터는 ‘쓰레기 제로운동’을 시작했다. 수행공간으로 일반 불자들의 출입이 잦았던 이곳에서 당시 하루 600여명이 만들어내는 쓰레기가 100ℓ 쓰레기종량제 봉투로 매일 두개씩이었다. 근본 대책이 필요했다. ‘쓰레기 제로운동’은 100% 생태순환적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대안적 생활양식을 통해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특히 ‘도시’라는 공간에서 쓰레기 없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밖으로 배출되는 쓰레기의 제로화, 음식문화의 전환으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와 음식물 쓰레기의 완전 퇴비화, 화장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뒷물 이용하기, 캔 제품 사용의 억제를 위한 캔 제품 회관 내 반입금지 등 좀더 근본적인 관점의 운동이 생긴 이유다.

1999년 여름 정토회안에 환경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환경청문회를 통해 한달간 실천해야 할 내용을 공동으로 정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지침과 방법 등이 논의됐다. 그 다음에는 물·에너지·재활용·음식물쓰레기·일회용 등의 분야별 분과를 만들어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정하고 ‘지독하게 살아보기’를 체험한다. 한두달의 실험과 실천을 통해서 얻은 결론을 바탕으로 전체 공동체에 참여한 이들이 함께 생활규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안하고 동의가 받아들여지면 ‘생활규칙’으로 만드는 과정이 반복됐다. “생필품을 비롯해 다양한 제품들이 반드시 만나야 하는 ‘비닐’과의 전쟁이 가장 힘들었다”고 박 국장은 전했다. 결국 쇼핑용 비닐봉투의 사용·반입을 금지하는 대신 양파망을 보면서 떠올린 주부 활동가의 아이디어로 ‘투명망’을 만들어 활용했다. 장보기·조리·공양·설거지·퇴비화·퇴비를 이용한 농사로 총 6단계로 세분화해 음식물 쓰레기가 생겨날 수 있는 전 과정에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지 않는 갖가지 방법을 개발했다.

지난 5년 동안 진행돼온 쓰레기 제로운동으로 일반 쓰레기와 화장실 쓰레기의 발생량은 약 65% 줄어들었다. 1회용품 소비행위에 대한 회원들의 의식이 바뀌어 정토회관 안에서 캔음료나 종이컵 등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며, 정토회관 밖에서 생활할 때도 자연스럽게 캔음료나 종이컵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태적 삶을 위한 대안적인 생활양식의 정착 차원에서 ‘쓰레기 제로운동’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쓰레기는 버리려고 작정하는 순간 진짜 ‘쓰레기’가 된다. 벽돌이 방에 있으면 쓰레기지만 공사장에 있으면 훌륭한 건축자재가 되는 것처럼, 냉장고가 부엌에 있으면 훌륭한 가전제품이지만 밭에 있으면 쓰레기가 된다. 박성동 국장은 “대안적 생활운동을 위한 ‘쓰레기 제로운동’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눈에 보이지 않게 처리하는 ‘청소’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면서 “쓰레기를 얼마만큼 줄일 수 있느냐라는 가시적 성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물을 본래 쓰임새대로 되돌려주기 위한 의식개혁과 사회구조 변화의 노력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의 ‘질’적 측면 접근도 이창우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쓰레기의 양적인 측면에서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질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겨울철에 수박이나 딸기를 먹고 껍질을 생기지 않도록 하고 퇴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철이 아닌 시기에 나오는 농산물을 사먹지 않는 것이 질적인 방향에서 발전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제철과일이 아닌 경우 몇배의 에너지와 화학제품을 쓰기 때문이다. 정토회 경험을 기반으로 쓰레기 제로 ‘공장’, 쓰레기 제로 ‘호텔’, 쓰레기 제로 ‘가게’ 등 사회 저변으로 넓혀나가려면 정부의 생활폐기물 정책이 변해야 한다고 이 위원은 말했다. 즉, 지금까지 정부의 폐기물 정책은 주로 배출된 결과물로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행정을 통한 ‘청소’ 차원에서 쓰레기를 수거·매립·소각 처리해왔으며, 시민들은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담아 내놓는 것으로 자기 소임을 다한 것으로 인식해왔다. ‘원천감량’과 ‘배출억제’ 등은 애써 무시됐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의 폐기물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쓰레기 제로운동이 지향하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쓰레기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되새길 일이다.

이글은 한겨레21의 <김타균의 풀뿌리대안운동을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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