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10] 어린이들도 “무기여 안녕”

2004.06.17 | 미분류

어린이날인 지난 5월5일 오전 10시. 인천에 있는 경인교대에서 전교조 인천지부와 인천시 교육청이 공동으로 마련한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다. 엄마 손을 꼭 잡고 가는 아이,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두리번거리는 아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아이…. 행사장 입구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시끌벅적했다. 언덕을 지나 5분 정도 걸어 ‘평화마당’에 닿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시민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이 마련한 ‘무기 장난감, 평화의 선물로 바꿔주기’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버린 장난감, 무기 조형물로

용천 폭발사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녘동포를 위한 모금 행사도 벌어졌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아, 그거요!” 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주머니를 뒤져 동전 몇 닢을 모금함에 넣는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모금활동 자원봉사자인 한 인천대 학생은 아이들의 열띤 호응에 신나게 목청을 가다듬는다. 이렇게 모금한 돈이 자그마치 18만270원이다. 인천 연희동에 사는 주부는 자기 아파트 단지에서 모금을 하겠다며 당일 행사장에서 전시한 사진을 가져가기도 했다. 평화마당에서 이번 행사를 마련한 김강연(32) 평화사업부장을 만났다. 김 부장은 ‘민족사랑청년노동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운동가이면서 자상한 엄마이기도 하다. 평통사는 대형공격용 헬기, MD관련 무기체계 도입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국회와 국방부에 국방예산 삭감을 촉구하고 있다. 평통사는 우리 사회에 평화운동을 전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무기장난감 바꿔주기 운동도 다양한 운동 방식 중 하나다. 김 부장은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갖고 노는 무기 장난감과 무심코 즐기고 있는 전쟁·폭력 게임 CD나 비디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폭력과 대결, 미움에 깊이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모들이 별 고민 없이 사주는 무기장난감이 아이들에게 폭력의 마음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기장난감을 가져온 아이들이 ‘무기감옥’이라고 씌어 있는 곳에다 장난감을 버리고 있었다. 권총, 칼, 기관총, 비비탄알, 수갑 같은 무기장난감을 비롯해 각종 폭력 게임CD 같은 30여점의 무기장난감이 모였다. 집에 있는 폭력 게임CD인 ‘드레곤 제트’ ‘엑스타시 게이츠’ ‘동물철권’ 등을 갖고 이곳을 찾은 학교 친구 김성재(11·인천부원초 4년), 김다빈(〃)군은 “담임선생님 얘기를 듣고 이곳을 찾아왔다”며 “앞으로 폭력 게임CD는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상원(12·인천계산초 5년)군도 ‘호빵맨’ ‘범버맨’ ‘메탈스 러뷰’라는 게임CD를 수거함에 넣으며 “전쟁에 대한 심각한 얘기를 듣고 이제는 보지 않기로 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길게 늘어선 탁자의 한쪽에서는 어린이들이 가져온 총, 수갑, 게임CD 같은 무기장난감을 화분이나 기념배지로 바꿔줬다. “일상에서 평화에 관한 작은 실천이 이뤄진다면 무기도입, 국방비 같은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엔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요.” 평통사 김 부장의 바람이다. 수거된 무기장난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질문에 “무기조형물로 만들어 평화의 상징물로 설치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 이런 계획에 참여해줄 설치예술가를 만나지 못했다”며 오히려 필자에게 소개해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천막 한쪽에 마련된 이라크 반전평화 사진전과 동인천고등학교 학생들이 그린 반전포스터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난기가 묻어나던 표정이 금세 사라졌다. 참가자들은 이라크 사진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학교선생님과 함께 이곳을 찾은 박유림(초등학교 3년) 양은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불쌍해요. 이라크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고 해요”라고 둘러본 소감을 말했다. 제자와 함께 이곳을 찾은 노영화 동수초교 선생님은 “학교는 평화를 만드는 텃밭이라고 생각한다”며 “학교 교육과정상 특별히 평화교육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수업시간에 무기장난감보다는 전통놀이를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 고운 말씨를 쓰게 하는 것 등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쪽에서는 이라크 반전평화 사진전을 본 아이들이 평화엽서와 평화의 꽃잎에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를 쓰고 있었다. 비록 맞춤법은 맞지 않고 서툴지만 깨알 같은 글씨 속에 아이들의 따뜻한 평화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전쟁이 정말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라크 어린이에게. 이라크 아이들아, 안녕? 난 한국에 사는 정수진이라고 해. 너희들은 그 어둠속에서 힘들게 살았겠다. 너희한테 도움 있으면 좋겠다.” “전쟁으로 인해서 심하게 다친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고 너무 징그럽고 마음이 아팠다. 어린 아이들이 전쟁 때문에 다치고 아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들아, 너무 힘들고 아파도 참아내자. 세계평화를 기도하면서!! ^??” 다른 한쪽에서는 어린이 평화선언 행사가 열렸다. ‘전쟁·폭력 게임 안하기’ ‘싸웠을 때 먼저 사과하기’ ‘욕 안 하고 고운말 쓰기’ 같은 아이들이 실천할 수 있는 ‘생활수칙’이 적힌 꽃모양의 쪽지를 탱크에 붙이면서 아이들끼리 손가락을 걸며 다짐하기도 했다. 모형탱크는 이내 한가득 꽃으로 다시 피어났다. 참여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무기장난감을 내다버리고 평화를 소망하는 아이들은 ‘평화랑 노니 재미있네’ 하는 표정들이다. 평화는 그냥 제 발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하다는 걸,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노력할 때 비로소 찾아든다는 것을 이곳에서 배울 수 있었다.

이글은 한겨레21의 <김타균의 풀뿌리대안운동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연재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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