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12] 골라봐요 놀아봐요! 홍대프리마켓

2004.06.23 | 미분류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골라! 골라!”를 외치고 한푼이라도 더 깎기 위해 애쓰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게 시장이다. 하지만 지난 5월22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 홍익어린이공원에서 열린 ‘예술시장 프리마켓’은 일반적인 시장과 달랐다. 상대방이 진정한 소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정성스레 만든 예술품이 거래되는 시장이었다. 단순히 ‘아이 쇼핑’을 나온 구경꾼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로큰롤 밴드로 유명한 ‘오! 브라더스’와 포크음악 밴드인 ‘플라스틱 피플’의 공연이 연달아 이어졌다.

작가와 주민이 함께 만들기도

이곳에서는 일러스트, 북아트, 인형, 가방, 손바느질, 금속, 도자기, 비즈, 나염, 목걸이, 직물 등 온갖 공예품을 죄다 만날 수 있다. ‘붕어빵’처럼 대량으로 찍어낸 획일적인 물건들이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에 작가들의 정성이 듬뿍 담긴 순수 창작품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개성이 담겼다. 프리마켓의 상품들은 대량생산이 아니라 다수에 의한 생산이다. 대량생산은 생산물에만 관심이 있지만 다수에 의한 생산은 생산물과 생산자, 생산과정에 더 관심을 갖는다. 프리마켓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은 ‘숨쉬는 작품’이다.

프리마켓은 지난 2002년 6월 월드컵 열기와 함께 홍대와 신촌 지역의 문화단체 네트워크인 ‘홍대·신촌 문화포럼’이 일상적인 문화행사를 개최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었다. 프리마켓 대표 김영등씨는 “기존의 갤러리 공간에서 시민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작품 제작과정이나 퍼포먼스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작가와 시민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프리마켓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프리마켓은 홍대 앞 놀이터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프리마켓은 세 가지 형태의 문화행사로 구성된다. 먼저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주로 홍대 주변에서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들이나 DJ들이 공연을 하거나 음악을 들려준다. 두 번째 형태는 설치예술이나 벽화 만들기 등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퍼포먼스다. 시민들이 단순한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주인공으로 결합한다는 점이 색다른 묘미다. 마지막은 프리마켓 작가들이 마련한 예술시장이다. 작가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손수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올해부터는 프리마켓 작가들이 마련하는 시연과 시민참여 창작워크숍이 한달에 두 차례씩 열리고 있다. 약간의 참가비를 내면 인형 만들기, 금속공예, 비즈공예, 가죽공예 등 다양한 작품을 작가들과 함께 만들 수 있다. 전시와 공연에서 그동안 관객에 머물던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행사다. 앞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서포터즈를 운영할 계획이다. 프리마켓에 참여하려면 인터넷 카페(cafe.daum.net/artmarket)를 이용하면 된다. 카페에 작가 등록서와 작품 제작과정을 담은 사진과 완성된 작품사진을 올려놓으면, 사무국과 각 장르별 ‘작가 등록 도우미’들이 참여한 ‘작가 등록 검토’ 회의에서 참가 여부가 결정된다. 작가 등록은 순수 창작품 여부에 달려 있다. 복사 문화가 판치는 상황에서 프리마켓만의 독특함과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다. 대량생산된 물건이나 전문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의 참여를 제한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프리마켓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무엇보다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벼룩시장’과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마켓의 작품들이 팬시점이나 액세서리 가게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프리마켓은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결국 독특한 개성과 순수 창작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이는 프리마켓 구성원인 사무국과 작가들의 몫이다.

당국이 문화적 특수성 인정해야

홍대 프리마켓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관할구청의 단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클럽문화’와 함께 홍대의 새로운 문화적 자산으로 인식해 양성화할 필요도 있다. 프리마켓을 단순히 상업적 잣대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예술적 의미가 강한 문화행사로 바라봐야 한다. 지자체에게 이런 유연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문화사회연구소 이동연 소장은 “프리마켓은 거리문화의 한 형태이고 단순히 상거래 행위로 볼 것이 아니라 청년문화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문화적인 특수성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향후 잠정적으로 합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동네 구멍가게나 서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OO마트, OO할인점 같은 대형 시장이 빠르게 들어서고 있다. 소형은 사라지고 대형만 남는 시대가 되고 있다. 하지만 홍대 앞 프리마켓은 이런 추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새로운 대안문화를 만들고 있다. 가까이 있는 놀이터 공간을 활용해 지역사회와 유대감을 회복하고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지역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지역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서 홍대 앞 프리마켓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글은 한겨레21 <김타균의 풀뿌리대안운동을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연재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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