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13] 친환경 학교급식 조례를 통과시킨 제주도민들

2004.07.01 | 미분류

지난 5월25일은 제주도민들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제주도민의 염원을 담은 ‘친환경 학교급식 조례’가 마침내 빛을 봤기 때문이다. 제주도의회는 이날 임시회 본회의를 열고 ‘제주도 친환경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사용에 관한 지원 조례안’을 의결했다. 제주도민 1만1505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 발의로 제정된 이 조례는 친환경 우리농산물을 우선으로 하는 국내산 농산물의 사용과 이에 대한 급식비용 지원 등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조례에 따라 제주도교육감은 제주도지사와 협의해 친환경 및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지원 종합계획을, 시장·군수는 유아교육기관에 대한 급식지원 계획을 각각 수립해야 한다. 이 조례는 제주도 최초의 주민발의 조례이자, ‘친환경 및 우리농산물’이란 용어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제주도처럼 농민이 20%가 넘는 지역에서 농촌 회생의 가능성을 보여줘 지역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급식 개선 위해 지역학교협력체 구성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다. ‘우리농산물’이란 용어를 사용할지, 학교급식의 주체를 교육감으로 할지 아니면 제주도지사로 할지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특히 ‘우리농산물’이란 용어가 문제였다. 주민들의 조례안이 제출되자 도는 이 용어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반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도의회 농수산환경위에서도 처음에는 통상마찰 등을 우려해 ‘우리농산물’을 ‘우수농산물’로 바꾸자고 제안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해부터 전국에서 폭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학교급식 개선운동은 제주를 특히 주목하고 있다. 친환경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제주연대 진희종(45) 사무처장은 그 이유에 대해 “급식 개선에 머물지 않고 가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청소년들의 건강을 확보함과 동시에 친환경 농산물 생산을 활성화해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리려는 시도다. 진 사무처장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면서 학교급식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농업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학교가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학교급식의 심각성도 절감했다. 성장기 학생들이 좋은 식품을 먹는 게 중요하지만 사실상 학교급식이 아이들에게 최상의 질을 갖춘 식단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음식들이 내실 있는 ‘영양’ 위주라기보다는 ‘단가’ 위주이기 때문이다. 즉, 질 좋은 농수산물을 구입해야 하는데 가격에 맞추다 보니 인스턴트 제품과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제품이 학생들의 식단에 올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진 사무처장은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학교급식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동료 학부모들에게 제안했다. 곧 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학부모 설문조사를 거쳐 본격적인 추진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아라중학교 친환경급식 추진을 위한 ‘초록빛 학교’가 출범했다. 초록빛 학교는 친환경 급식을 추진하기 위한 교육·조사·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중장기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하고자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주민, 생산자단체,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는 지역학교협력체다. 초록빛 학교가 특히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게 ‘초록빛 농장’이다. 친환경 급식은 취지에는 찬성하면서도 학부모의 비용부담 때문에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길러서 아이들의 식탁에 올리기로 했다.

지난 5월21일 오후 3시 초록빛 농장. 아이들의 옷과 신발은 온통 흙투성이다. 아이들은 한 손엔 호미를 다른 한 손엔 잡초 한 움큼씩 쥐고 한창 작업 중이었다. 호미질이 서툴긴 해도 진짜배기 농사꾼 같다. 상추, 무, 옥수수에 물을 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물통을 나르는 아이들, 옥수수를 옮겨심는 아이들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흘렀다. 모두들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선생님들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가득하다.

(권)령빈(1학년)이는 “씨앗을 뿌린 지 얼마 안 돼 금방 자라는 게 참 신기하다”며 상추와 옥수수 고랑에 조심스럽게 물을 준다. 령빈이는 “초록빛 농장에서 많은 걸 배워요. 집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학교에서 배운 게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라고 귀띔해준다. 시범학교 실무담당을 맡고 있는 고영민(38) 선생님은 장갑을 낀 채 익숙한 솜씨로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여준다. 잡초와 옥수수를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만 아이들에겐 무엇이 잡초이고 옥수수인지 구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한 아이가 “옥수수는 잎사귀가 크고요, 잡초는 잎이 작아요”라고 나름대로 잡초와 옥수수를 구분하는 법을 말한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도 이어졌다. “잡초도 생명인데 왜 뽑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선생님은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멋쩍게 웃는다.

체험교육장으로 자리잡은 농장 초록빛 농장은 제주도 친환경 학교급식 운동의 ‘발원지’이자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체험교육장’이다. 학교 인근 아라동사무소 뒤편에 버려진 700여평의 농터를 일구어 만든 농장 입구에는 ‘아이들은 우리들의 희망입니다’라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1학년 전체 학생들이 매주 금요일 6교시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에 이곳으로 와서 텃밭을 가꾼다. 이곳은 학생, 학부모, 교사, 인근 주민으로 구성된 40여개 팀에게 5∼10평씩 땅을 분양해 개인별로 또는 공동으로 상추, 무, 옥수수 등의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한다. 텃밭 주인들은 파종에서부터 김매기, 수확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농작물을 재배해야 한다. 각 고랑에 꽂힌 푯말에는 ‘그린농장’ ‘환경주스팀’ ‘그린벨트’ ‘푸름이’ ‘초록이’ ‘농부들’ ‘그린맨’ ‘우량감자’ ‘제주산거북이’ ‘유기농LOVE’ 등 아이들이 직접 지은 이름이 적혀 있다. 부희옥(45) 선생님은 “아이들이 손수 기른 친환경 농산물이 아이들의 식탁에 오른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레요. 무엇보다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환경보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게 큰 소득이죠”라며 해맑게 웃었다.

이글은 한겨레21 <풀뿌리대안운동을 찾아서>에 연재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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