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14] 상주가 ‘자전거도시’라고?

2004.07.14 | 미분류

“자전거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공간을 난폭하게 대하지 않고, 풍경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겸손하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더러 방귀를 뀌는 개인적인 사정 외에는 대기를 오염시킬 일이 전혀 없고, 정기적인 보험료를 납부하는, 쓸데없는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고, 운동 부족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떠날 염려가 거의 없는, 인류가 만든 공산품 중에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입니다.” 시내버스가 없는 도시 지난 2002년 7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환경단체가 ‘풀꽃상’을 ‘자전거에게 드리며’ 남긴 말이다.

지난 6월1일 자전거 도시로 알려진 경상북도 상주를 찾았다. 역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자전거다. 상주 시내를 돌아다니면 여기저기서 한떼의 자전거를 만날 수 있다. 상주에선 자동차가 자전거를 피해다닌다는 말이 실감났다. 아이를 등에 업고 장을 보러온 주부는 자전거를 탄 채 왁자지껄한 시장을 유유히 누비고, 학교 정문은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는 학생들로 북적댄다. 양산을 들고 곡예운전을 하는 아주머니, 저울을 자전거에 싣고 조심스럽게 달리는 아저씨, 농약분무기를 짐받침대에 싣고 달리는 농부, 사료를 싣고 가는 아저씨들, 세발자전거를 배우는 여섯살 꼬마까지 상주에서는 자전거가 논으로, 밭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물류이동 수단이다. 저녁이 되면 도심 할인마트엔 시장을 보러온 주부들의 자전거 행렬이 이어진다. 주부들은 천 가방에 물건을 담아 자전거 짐받이에 얹은 다음 끈으로 단단히 묶고, 토마토처럼 으깨지기 쉬운 물건은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는 활기차게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가 모든 길을 점령하는 바람에 자동차의 주행속도는 시속 10km로 떨어진다. 출퇴근 시간, 상주 거리의 주인은 자전거다. 상주시의 인구는 13만명인데 자전거는 8만5천대다. 전체 교통수단 가운데 자전거 이용률은 50.3%다. 자전거의 교통 수송분담률은 18.6%나 된다. 전국 평균이 2.4%인 것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자전거가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상주 시내에는 시내버스가 없다. 시 외곽을 연결하는 노선버스가 있을 뿐이다. 가까운 거리에 갈 때는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시내버스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상주시청은 전국 지자체 중에서 유일하게 ‘자전거 문화담당’이라는 자전거 업무 전담부서가 있다. 전병순(46) 계장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면 한번쯤 와보고 싶어하는 도시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상주가 자전거 도시가 된 것은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평탄한 곳에 도시가 형성돼서 오래 전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전거를 즐겨 탔다. 또 이곳은 낙동강을 낀 대규모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살림살이가 넉넉해서 다른 지역보다 이른 1910년대부터 자전거가 보급됐다고 한다.

상주시는 사벌면에서 낙동강변에 이르는 70km 구간을 2005년까지 자전거길로 꾸미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지난해부터 공사를 하고 있다. 이 도로가 완성되면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낙동강을 따라 달릴 수 있다. 상주시는 지금까지 모두 20여km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했다. 앞으로 2007년까지는 총연장 126.7km를 설치해 상주 내외곽 전체를 자전거 전용도로로 감싼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자전거 도시 상주에는 걱정거리도 있다. 자전거 수리점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값싼 자전거가 대량으로 공급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자전거가 고장나면 수리점에 맡기지 않고 새로 구입하는 시민들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전에는 50여곳이나 되던 자전거 수리점이 지금은 20여곳으로 줄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많은 편이지만 점점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10여년간 자전거 수리점을 운영한 조성년(44)씨는 “요즘은 할인점 같은 데 가면 10만원 정도만 줘도 새것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수리점을 잘 찾지 않는다”며 “점차 먹고살기 힘들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전거 수리점의 몰락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를 특성으로 하는 경제 시스템의 본질을 엿보게 한다. 대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가격이 낮아진다. 단가가 낮아지면 대량으로 공급되고, 공급 뒤에도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소비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고장이 나면 버리고 새로 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래야 낮은 가격이 유지된다. 자전거 회사들은 자전거가 고장났을 때 수리하기보다는 신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더 싸다며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조씨는 “앞으로 ‘자전거’도 ‘일회용품’으로 취급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상주가 자전거 도시로 알려지다 보니 5일장 때마다 다른 지역 상인들이 자전거를 대량으로 싣고 와선 싼값에 팔고 떠나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다 보니 상주 지역에서 오랫동안 자전거를 지키고 있는 영세한 수리점 상인들은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전거 도시에 걸맞은 시민의식을 해마다 10월이면 전국 규모의 ‘상주 전국 자전거축제’가 상주시에서 열린다. 올해로 벌써 4회째다. 그러나 겉으로는 자전거가 급증했지만 자전거 도시의 변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자전거 축제 때 쓰는 경품 자전거가 300대 정도인데, 이는 잘되는 가게의 1년 판매량과 맞먹는 양이다. 하지만 상주시내에 있는 자전거 대리점이나 수리점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자전거 회사 본사에서 직접 가져와서 행사 때 그대로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자전거가 많다고 해서 자전거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듯,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중장기 계획안이 필요하다. 나침반 없이 배를 운항할 수 없듯 말이다. 상주대 장상규(44) 교수는 “자전거 도시에 걸맞은 시민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전거 이용자의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글은 한겨레21의 풀뿌리대안운동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연재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