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께 드리는 편지

2005.02.03 | 미분류

지율스님!

오늘밤 쉬이 잠을 청하지 못하고 울컥 눈물이 나며 가슴이 미어집니다.
곡기를 끊고 초록의 공명을 하신 지 100일입니다. 그동안 제가 어리석게도 스님이 주시는 초록의 공명을 헤아리지 못하고 마음만 이리저리 산만히 분주했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 마음을 정하고 그 울림에 정신을 차리고 있습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스님이 죽고 사는 일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명의 진실을 위해, 천성산의 진실을 위해 무엇을 할 지 깨우치고 있습니다.
스님이 생사를 초월하셨듯이 마음을 정하여 우리가 할 바를 미력하나마 정성을 들여 보자고 하면서도 돌연 스님이 세상을 달리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나고 스님이 없다면 누가 천성산 생명을 돌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누가 천성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의 소리를 정성스레 보듬어 사진을 찍고 플레시를 만들고 CD를 제작할까? 생명의 가치를 외면하고 개발의 속도를 내는 정부와 개발주의자들과 완강하게 싸울 수 있을까? 누가 우리 아이들에게 꼬물꼬물 도롱뇽의 예쁜 모습과 생태를 얘기하며 친구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리를 들려줄까? 내 마음에 자리잡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여인의 녹색향기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울컥울컥 눈물이 납니다. 스님을 안고 막 울며 매달리며 살리고 싶습니다.
스님 살아주셔요. 그리움이 밀려 옵니다. 당신의 생명에의 사랑이 가득한 따뜻한 손을 오래도록 만지고 싶습니다.

2003년 10월 3일 3천배 기도와 삼보일배를 마치시고 다음날 2차 단식에 들어가시던 날 하룻밤을 지내며 단식을 끝내 만류하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제게 오히려 따뜻한 미소로 위로하고 이른 아침 몸소 단식에 드는 글을 쓰시고 한번 보아달라고 하시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 때 제 마음이 아팠지만 한 수행자이기에 앞서 같은 여성으로서, 마음에 담은 사랑하는 벗으로서 늘 함께 도반이 되겠노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단식 45일째 17만여 도롱뇽 소송인단의 서명용지를 전달받으며 단식을 회향하시던 때의 기쁨과 도롱뇽친구들의 사랑과 정성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2004년 7월말 스님께서 3차 단식을 청와대 앞에서 하시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저는 스님의 생명을 걱정한다는 이유로 아주 단호하게 스님의 단식을 반대한다고 잘라 말하고 스님께서 청와대 앞 공원에서 노상단식을 하실 때 변변히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단식 40여일이 되어서야 체면치레를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4차 단식에 들어가셨을 때는 스님의 단식을 외면하고 단식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스님이 아집을 부린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왜 이리 마음이 아프고 후회가 되지요. 스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천성산과 그 품안에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한결같은 원칙으로 당신의 생명을 던져 그들의 벗이 되고 그들의 너른 품이 되어 지켜주셨는데 저는 스님과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 되겠노라고 했던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스님을 외롭게 했습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어미는 자신의 생명마저 던지는 것을 왜 저는 머리로 이리저리 재고 판단하고 있었는지요. 권력과 돈을 쥐고 휘두르는 개발의 광풍으로부터 수많은 생명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려면 자신의 몸을 던지고 목숨마저 내놓고 완강하게 저항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왜 저는 잊고 있었는지요.

지금 스님은 우리가 겪는 절망을 미래로 전가하지 않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태워 초록희망을 피우고 계십니다. 지금 스님은 물질문명과 소비풍요에 절어 속도경쟁의 한배를 탄 우리들에게 깨우침을 주고 계십니다. 자칫 오만과 관성, 관리주의에 빠져 환경운동하는 우리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다시 들라는 화두를 던지고 계십니다. 너무 많은 일들에 빠져 쉽게 포기하고 돌아서면 잊어 버리는 우리들에게 생명운동의 진정성을 되찾으라고 호소하고 계십니다. 스님이 주신 초록의 공명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지율스님 사랑합니다. 스님이 살아서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지율스님이 살아서 생명운동의 벗이 되고 스승이 되고 생명의 어머니가 되어 주셔요. 지율스님! 단식 100일입니다. 스님을 좋아하고 스님이 살아서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벗들과 함께 지율스님과 천성산을 위해 촛불을 밝히겠습니다. 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천성산 관통공사를 강행하는 노무현 정부와 환경영향공동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하고도 3개월만이라도 조사하자는 스님의 요구마저 외면하는 환경부장관, 속도경쟁에 내몰린 생명의 가치에 비정한 물질문명과 우리들 타성의 허울을 태워 진실을 밝힐 촛불을 밝히겠습니다.

지율스님, 천성산이 품은 물줄기를 따라 생태탐사를 함께 간 제 딸 윤진이가 매일 스님 걱정입니다. 그리고 스님이 좋아하는 도롱뇽과 천성산을 그렸어요. 우리 아이들의 희망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희망이 되어 주시기 위해 지율스님 사셔야 합니다.

100일 단식 회향을 기원하며 김제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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