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억원 줄 테니, 핵폐기장 가져가라니…”

2005.03.09 | 미분류

오호통재라! 대한민국이여!
  
“3천억원 줄 테니, 핵폐기장 가져가라니…”

  
중ㆍ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지난 3월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번 특별법을 통하여 7월까지 중ㆍ저준위 핵폐기물처리장 부지를 확정 짓겠다고 한다.
  
그 내용인즉 지역지원금 3천억원 지원, 반입수수료 도입,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 이전을 골자로 사용후 핵연료 관련 시설의 중ㆍ저준위 처분장에 추가건설 금지, 주민투표 실시 의무화 등이다.
  
정부는 이번 특별법이 유치지원에 대한 지원을 법으로 보장하고, 사용후 핵연료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ㆍ저준위 핵폐기물에 국한되었고, 무엇보다 주민투표를 통하여 절차적인 민주성이 보장되었기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주장하는 중ㆍ저준위 폐기물의 포화시점인 2008년까지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결정은 우리가 할 테니 국민은 따라오라는 식이다. 돈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부안주민항쟁으로부터 배웠어야 할 교훈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부안군민이 지역지원금이 적어서, 법으로 명문화가 되지 않아서 그토록 격렬히 저항하였던가?
  
정부에게 묻는다. 중ㆍ저준위 폐기장의 지역지원금이 3천억원이면, 이후 사용후 핵연료 관련시설(고준위 핵폐기물처리장)은 1백배는 더 위험한 시설이니 30조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인가?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 아쉬워…”
  
급할수록 돌아가라! 어려운 문제일수록 원칙을 지켜라! 지난 2년여의 세월을 싸우면서 주민들은 부안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에도 핵폐기물처리장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핵 발전 정책을 확대할 것인지 줄여나갈 것인지를 포함한 핵 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재검토, 국가 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주장을 정부정책에 대한 발목잡기로 보아서는 안 된다.
  
정부는 지난 1월에 신고리 1, 2호기 건설에 대한 승인을 기습적으로 발표하였다. 또한 얼마 뒤에는 3,4호기 주기기계약을 체결하겠다고 한다. 여전히 핵 발전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고, 이에 대한 명분으로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하는 핵폐기물 포화설을 이유로 핵폐기물처리장을 건설해야 한다고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다.
  
핵 산업계에 빌붙어 사는 소위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핵은 안전한 것이다. 더군다나 중ㆍ저준위 폐기물은…’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플루토늄은 먹어도 된다’가 아니라 ‘우리 세대의 편리함의 대가로 태어난 이 위험한 물질을 현대과학을 총동원하여 안전하게 격리시키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핵과 관련한 사실을 솔직하게 밝히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통하여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가장 우선으로 듣겠다는 참여정부가 여전히 눈 감고, 귀 막은 채 지난 2년 동안 부안주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또다시 강요하고 있다. 제2, 제3의 부안 사태를 포항, 울산, 삼척, 군산 등지에서 또다시 일으키려 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애꿎은 지역주민을 견디기 힘든 공포와 고통에 몰아넣었던 핵폐기물처리장의 악령을 풀어놓고 있다. 새삼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종규 군수, 그 고통 안기고 또 핵폐기장 유치라니…”
  
이러한 특별법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뭐가 뛰니까 덩달아 뛴다고, 봄날 개구리 튀어나오듯이 여기저기가 소란스럽다. 이에 뒤질세라 부안군청의 김종규 군수도 지난 3월4일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배포하였다.
  
내용인즉 유치예상 후보지역인 군산의 신시도, 비응도나 고창, 영광 등지가 위도보다 가까우니까 아예 부안에서 유치하자는 것이다. 많이 들었던 소리이다. 지난 2003년 핵폐기물처리장 유치신청을 하였을 적에 내세웠던 논리이다.
  
그러나 부안군민은 지난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투쟁을 통하여 분명히 알았다. 산, 들, 바다가 어우러진 부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또한 생거부안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며, 후손들에게 우리세대가 누린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물려주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요 책임이라는 것을.
  
지역 발전은 정부의 얄팍한 지원금 그것도 고향을 팔아먹은 대가로 주어지는 지역지원금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된 자원, 부안만이 할 수 있는 지역 개발을 통하여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부안군민들의 뜻을 어떻게 하나로 모아낼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엄청난 지원금이 투자된 강원도 정선 카지노가 지역 발전에 획기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수많은 골프장 건설과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지자체가 성공신화를 이야기하였던가 말이다. 한편에서는 관광, 영상 부안을 이야기하면서, 친환경 부안농산물을 홍보하면서, 옆집에서 가져가느니 차라리 유치하자고?
  
그것도 부안군청에서 단 한걸음도 나오지 못하고, 관내 식당조차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는 우물 안 군수가 부안 발전이랍시고 고작 핵폐기장 유치를 새삼 들먹거리고 있는가? 더 이상 부안군민을 괴롭히지 마라. 당신은 이미 부안주민의 심판을 받았다.
  
군수자리나마 근근이 연명하려는 좀 더 그럴듯한 명분을 찾으란 말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하도록 결정을 내린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손을 씻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 했음을 강조하였으나, 그 심판관으로서의 책임은 2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온 인류에게 강조되고 있다.
  
흔히들 김종규 군수를 일컬어 1백여 년 전 갑오농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고부군수에 빗대어 ‘제2의 조병갑’이라 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부안군수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그를 보면서 권력의 노예가 되어버린 불행한 인간을 보는 것 같다. 지난 2년간 부안군민이 흘린 피와 눈물을 보고도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부모자식 형제자매와 같은 지역주민을 또다시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그대! 역사가 그대를 반드시 단죄하리라!
  

글 : 이현민 전 부안핵폐기장 반대 대책위 정책실장

* 위 글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실린 글로, 필자의 허락 하에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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