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건설 서두르지 말자

2005.06.30 | 미분류

지난 20여 년간 실패를 거듭해 온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 절차와 기준 등이 발표되었다.
부지선정위원회가 사전부지 조사를 통해 잠정 부지적합성 지역으로 발표한 군산, 경주, 영덕, 울진과 조사가 진행 중인 삼척, 포항은 벌써 유치찬반을 둘러싸고 지역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산업자원부장관은 부지선정 담화문에서 절차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가지고 과거의 갈등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법의 지위와 권한도 없는 부지선정위원회가 부지선정절차와 기준을 발표하면서 뒤늦게서야 법 근거를 마련하고 사전 부지 조사결과 적합지역의 조사내용과 근거도 공개하지 않았다.
또 다시 과거의 갈등을 반복하고 실패가 예고된다.

정부는 지난해 부안방폐장 추진이 실패로 돌아가자 당, 정 협의를 거치면서 ‘사회협의기구’를 구성하여 사회합의를 통해 방폐장문제를 풀어가겠다고 시민단체와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중저준위폐기장을 우선 추진한다는 정부방침만이 강행되고 있다.
방폐장문제를 놓고 국민과 정부 사이에 깨어진 신뢰가 결코 회복되지 않았건만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자연으로 돌려 보낸다’는 정부의 일방홍보만을 접할 뿐이다.
이제는 어딘가에 지어야 하지 않겠나? 핵폐기물이 넘쳐 더 이상 저장할 곳이 없다는데 왜 환경단체들은 반대만을 일삼는가? 일각에서 들리는 우려의 소리들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방폐장 정책이 신뢰할만한 것으로 바뀌고 있는가?

정부가 급하다고 하는 방사성폐기물 2008년 포화론은 10년 전 발생 실적을 기준으로 계산하고 있는데 현재 압축기술로 그 발생이 절반으로 줄고 있고, 울진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2007년 유리화 설비를 도입하면 10%이하로 줄어 포화시점은 2019년경이 된다.
충분한 사회합의를 거칠 만큼 여유가 있다.
중저준위폐기물에 포함된 주요 방사성핵종은 그 소멸까지 적어도 30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선진국에서 고준위폐기물뿐만 아니라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정책을 사회합의과정을 통해 결정하고 있는 이유이다.
특히 국토가 작고 인구밀도가 높아 핵폐기물 처분시설 위험에 드러날 가능성이 큰 나라들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탈핵의 길로 가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60년대 지어진 핵폐기장 주변의 방사능 오염을 겪으면서 지난 20년간 저준위폐기장 추진이 사실상 철회되었다. 다수의 원자력 보유국들이 핵폐기물로부터 장기간 사람과 자연, 그리고 미래세대를 보호할 안전성을 찾기 위해 수십 년의 사회합의과정을 인내하며 밟아가고 있다.

세계 추세가 이러할진대 한국 정부가 불과 6개월 만에 모든 절차를 밟아 서둘러 방폐장을 추진하는 것은 원자력 발전을 계속할 기반을 선점할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 정부의 권위주의에 기반한 성과주의 발로인지 의심하게 된다.

특별법까지 제정하면서 보상을 통해 부지를 선정하겠다는 발상 역시 과거 퇴행을 반복하는 것이다. 보상을 앞세워 지역간 경쟁을 붙이고 유치여부를 놓고 주민간의 갈등을 일으켜 지역공동체를 깨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작정인가.

그동안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면서 지역경제와 환경이 낙후해진 울진은 천연원시림과 생명의 물을 품은 왕피천 생태보전지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고 그 청정이미지를 살려 친환경농업엑스포 등을 통해 스스로 지역회생의 길을 꾀하고 있다. 신라 천년의 문화도시인 경주의 문화관광자원을 대신하여 방폐장이 지역발전과 문화재보호를 보장할 것이라고 믿을 문화양심이 있을까 싶다.

국민소득 1만불시대를 넘어서면 물량 중심의 개발패러다임에서 생명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인식과 요구가 깊어진다고 한다. 선진국들이 생명안전과 환경보호를 확신하지 못하기에 탈원전정책으로 전환하고 이미 발생한 핵폐기물에 대해 충분한 사회합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에서 배워야 한다.

지난 환경의 날을 맞아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지속가능발전비전’을 발표하였다. 에너지정책을 비롯해 공공정책 관련 갈등을 예방할 사회합의를 촉진하기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한 선언을 실천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 이 글은 6.28 경향신문 시론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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