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뽑으며

2005.07.06 | 미분류

글 – 윤경은(녹색연합 공동대표)

전 세계가 먹고 사는 급박한 현실이 조금씩 극복되면서 삶의 질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질 높은 삶이라는 것은 인간이 역사 이래 늘 추구해오는 목표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행복이나 안녕(well-being)이라는 단어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예로부터 철학자들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1960년대 이후에 찾아온 서구사회의 경제적 발전은 국가차원의 ‘삶의 질(Quality of Life:QL)’이란 개념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OECD는 경제선진국인 회원국의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해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만족도를 함께 넣어 1973년부터 1982년까지의 10개년 동안의 각국 사정을 조사하였다. 조사 발표한 공식적인 사회지표목록을 보면 건강, 교육과학습, 고용 및 근로생활의 질, 시간과 여가, 재화와 서비스의 지배력, 물적환경, 사회적환경 및 개인의 영역 8개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OECD 지표를 비롯한 여러 연구에서 삶의 질을 가늠하는 요소는 두가지 측면 즉 외형적(객관적)인 측면, 내면적(주관적)인 측면이었다.  초기의 연구는 경제적 발전에 따른 삶의 질 향상에 맞추어졌으나 최근에는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요소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삶의 질이란 실제로는 상당히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면이 있다.  객관적으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은 사람도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가하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의 질 향상을 추구에 있어서 개인의 안녕(well-being)이 강조되면서 웰빙을 추구하는 것은 세계적인 경향(trend)가 되고 있다. 그러나 웰빙이 잘 먹고 잘 사는 물질적인 면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근간에는 웰빙을 빙자하는 상혼이 곳곳에서 우리를 혼란스럽고 역겹게 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자연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도시환경을 복원해야한다는 의식이 생기고, 자연과 친하고 호흡하기 위해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 자동차의 물결이 홍수를 이루는 부작용도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식물을 키우며 자연을 관찰하고 공부하고자 주말농장을 시작하는 인구도 점차 늘어난다. 몇 평의 주말농장을 시작한 지인들은 나에게 재배법과 유기농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한다. 나는 이론가일 뿐이지 실제로는 미숙하기 그지없어 이제 실전에서 한참 고전을 하며 배우고 있기 때문에 내 대답은 “애정만 있으면 식물이 잘 자랍니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애정을 가지면 공부를 하게 되고 배운 것을 또 활용하여 가르쳐준 사람보다 농사를 더 잘 짓게 된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나무가 많은 집에서 살았다. 우리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식물을 좋아하셨고, 무슨 꽃이나 나무도 우리 아버지의 손에 들어가면 최고의 식물로 자랐다. 서구 사람들이 말하는 green thumb을 가지신 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식물 기르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 즐거운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자랐고, 결국은 식물생리를 전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전에 들어가니 밭일을 한다는 것이 쉽고 즐거운 일만이 아니었다.

정년 후를 생각하며 우리도 이천에 자그마한 땅을 마련하게 되었다. 주말밖에 시간을 낼 수 없었지만 처음에는 열심이라 원두막을 만들고 토요일만 되면 이천 내려가기에 바빴다. 그러나 일주일에 하루 내려가서는  농사일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이웃의 목장주가 우리 땅에 옥수수 등의 사료작물을 재배하고 우리는 10평정도의 땅에 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들깨, 상치, 감자 등을 심었다. 우리가 가꾸는 10평 정도의 땅은 비닐멀칭을 하여 가을이면 폐비닐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걱정하는 일 이외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나머지 땅은 늘 문제가 되었다.  

봄이 되면 목장 아저씨는 해충을 죽인다고 쥐불을 놓아 우리가 심어놓은 묘목(물론 손가락 같이 가는 묘목이지만)을 태우고, 여름에는 옥수수 밭 주변에 제초제를 마구 뿌려 황량한 환경을 만들어 가슴을 아프게 할 뿐 아니라 옥수수를 우리가 몇 그루 심어 놓은 사과, 배 주변까지도 뺑둘러 심어 놓으니 옥수수 그늘에 우리 과수는 날로 쪼그라들었다. 옥수수가 중요하고, 일손이 부족한 아저씨가 택한 농법을 나무랄 수가 없어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다.

작년부터는 목장아저씨의 도움 없이 우리가 전적으로 땅을 관리하게 되었다. 아직도 완전한 농부가 되지 못하고 금요일부터 내려가 일주일에 1/3 정도는 시간을 할애하려고 노력한다. 소위 말하는 친환경 농사를 지으려고 채소밭의 비닐 멀칭 대신에 신문지 멀칭을 하였고,  불루베리 밭은 톱밥과 바크멀칭을 하여 잡초를 막는 시도를 하고 있다. 꽃밭은 자연 그대로 두고 있어 5월초까지는 잡초 없는 깨끗한 화단을 가지고 있지만, 식물이 자라기에 좋은 온도로 기온이 오른 5월 말부터는 비만 한번 오면 꽃밭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잡초 밭으로 변한다.  잡초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또 6월이 되어 원추리가 꽃이 피게 되면 원추리 꽃대에는 하얗고 굵직한 진딧물이 틀림없이 찾아와 진저리를 치게 한다.

얼마 전에는 집에 심어 놓은 서양달맞이꽃 밭에서 신기한 일을 보게 되었다. 서양달맞이 꽃은 분홍색 꽃인데 꽃이 지면 꽃잎이 도르르 말려 색이 진해지는 편이다. 꽃이 진 꼬투리인가 싶은 것이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분홍색 날개를 가진 나방이였다. 이제까지 우리 농장에서 본적이 없던 분홍색 나방이가 분홍달맞이 꽃이 피니 그 곳에 나타나 그 보호색과 모양으로 우리 눈을 속일 수 있는 자연의 오묘함에 놀라울 뿐이었다.

저온과 건조로 자라지 못하던 잡초들이 온도가 맞고 비라도 흠뻑 오면 꽃밭을 삽시간에 잡초 밭으로 만들고, 원추리 꽃대에는 언제나 그 흉물스러운 진딧물이 끼고, 분홍색 달맞이꽃에는 꽃송이만한 분홍색 나방이가 찾아오는 생태계의 오묘한 마술에 경외감을 느낄 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생태계의 순리에 맞길 수만은 없다. 원래 농업이나 원예를 하는 환경은 자연이 아닌 완전히 인위적으로 조성된 자연환경이다. 농업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나도 끊임없는 인위적인 작업을 계속하여 내가 원하는 작물이 견딜 수 있는 자연환경을 조성해야한다.

가장 간단히는 제초제와 살충제로 박멸해 버리는 것이지만 이러한 화학약품을 배제하고 내가 막아서자면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져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어디에 벌레가 나기 시작했는가를 끊임없이 살펴야하고, 잡초 밭이 되지 않도록 풀이 나는 족족 뽑아야 하는 나는 때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나는 완전한 농노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또한, 한해 씨가 맺히면 7년 동안은 잡초가 난다는 사실(One year seed, seven years weed)을 상기하며 계속 예초기를 돌려야하는 남편의 노고에도 감사하고 있다.
농사일을 하며 인생사를 비교하게 된다.  자연에서와 같이 우리 사회에는 원하지 않은 잡초 같은 사람이나 사건들이 있는데 초기에 바로 잡으면 어려움 없이 제압이 될 것을 때를 놓치면 이를 바로 잡기가 아주 어렵게 된다.  

녹색생명운동의 깃발 아래 활동하는 우리는 이 세상에 좋은 씨, 아름다운 씨를 뿌려 번창하도록 키워야하는 소명을 가지고 있는데 때로는 잡초들이 끼어들어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꿈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애정을 쏟을 때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다시 힘을 얻어 소생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힘들더라도, 힘이 부치더라도 잡초를 빼내는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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