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은-

2005.08.11 | 미분류

장마가 더디게 지나갑니다. 추적거리는 빗속에 산에 드는 일은 만만치 않아서 가끔씩 망설여지곤 합니다. 쏴-아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몸을 맡기면 마음은 오히려 편안하고 가벼워 집니다. 오래 묵은 찌꺼기들이 한꺼번에 씻겨 나가고, 나는 사라지고 작은 생명으로 빗줄기가 멈출 때까지 빗 속을 걷기도 합니다. 비가 그치고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여린 바람에 후두둑 거리며 떨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산 속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많은 생명의 소리가 뒤섞여 들립니다. 그 속에 늘 듣고 싶어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쩌다 들리지만 그 소리가 내 몸 속으로 파고 들 때 온 몸은 얼어 붙고 마음은 소리 속으로 빠져 듭니다. 가파른 비탈길을 가로지르는 산양의 발굽소리,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조심스러움과 멈칫거리는 망설임이 소리 속에 묻어 납니다. 왈칵 치미는 그리움, 보고픔, 덥석 끌어 안고 딩굴고 싶은 내 형제, 산양. 늦 봄이 지나고 나면 어미의 발자국 속에 섞여 눈에 띄는 작은 발자국, 올 봄에 태어난 어린 녀석의 발굽자국입니다. 어미를 따라나선 어린녀석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리번거립니다. 그 눈동자에 비추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1967년 도에 나온 설악산학술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산양을 해마다 수 백두씩 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천 여 마리가 넘는 산양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때 사냥을 했던 지역 노인의 말에 따르면 산에 들어가면 바위가 있는 곳마다 산양이 서너 마리씩 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만큼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10년 쯤 조사를 해 본 끝에 100여 마리 남짓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60년 대 말 대폭설로 많은 산양이 죽었고, 그 뒤 보신문화가 극성을 부리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산양들이 밀렵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여가생활이 확산되면서 산줄기마다, 골짜기마다 등산객들의 발자국으로 덮여 가면서, 밀렵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서식지가  파괴되고 산양들의 삶터가 몽땅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 몇 마리 남지 않아 자연번식을 하지 못하는 반달곰을 되살리려 몇 백억원의 예산이 쓰여지지만, 산양을 위한 일에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산양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만 해준다면 멸종의 기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세상, 1등만 기억된다고 떠드는 세상은 이제 우리들의 세상이 아니라 짐승들을 위한(?) 세상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산양을 우리가 어떻게 보호합니까? 다만 산양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 놓아두는 것, 그들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 녀석의 눈동자에 비춘 세상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꿈꿉니다.

“짐승은 짐승답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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