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선정 민의 왜곡말라

2005.08.31 | 미분류

지난해 9월 청와대, 산업자원부, 열린우리당,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등은 시민사회단체와 사회협의기구를 구성, 핵폐기장 문제를 사회합의로 풀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은 부안사태를 계기로 지난 20여년 가까이 파행을 거듭해온 핵폐기장 정책 실패와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핵정책의 중대 전환을 예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찬 국무총리는 시민사회와의 사회합의 약속을 깨고 중저준위 핵폐기장 추진을 강행하였다. 그리고 지금 전국은 또 다시 ‘핵폭풍’을 맞고 있다. 삼척, 울진, 영덕, 경주, 포항, 군산, 부안 등에서 핵폐기장 유치 경쟁이 달아 올랐다. 해당 지역에서 핵폐기장 유치 찬반을 놓고 지역갈등이 커지고 각종 금권, 관권을 동원하여 유치를 위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해당 지자체장, 지방의원, 유치단체들이 핵폐기장 유치에 나서는 한편 지역구를 관리하는 정치인들의 지역 나들이도 잦아졌다. 그 대표 인물이 대구·경북 출신의 이강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다. 핵폐기장 후보지에 다니며 해당 자치단체장 및 의원 등을 만나 적극 유치하도록 설득하고 “찬성률이 다른 지역보다 0.1%라도 높아야 방폐장 유치가 가능하다”며 지역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고위층 후보지 방문 씁쓸-

청와대의 힘 있는 인사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사회갈등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이루겠다”고 했다(그 주요 기능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이 맡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핵 갈등이 일어나는 지역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정부의 정책기조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핵폐기장으로 인한 지역갈등을 조정하거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부추기는 당사자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국회의원 낙마자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하면서 낙선인사 챙기기라는 비판여론도 있었고 곧 있을 대구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이 무게 있게 전해지고 있다. 분명 자신의 지역구 챙기기와 선거준비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으니 시민사회수석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정부가 핵폐기장 지역에 3천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특별법을 만들고,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의사를 반영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과거 정부 일방으로 강행하던 핵폐기장 정책과 지역갈등 양상이 달라진 것이 없고 금권·관권 선거의 불법행태가 벌써부터 극성을 부리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수많은 선배들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투쟁하였고 지역에 주민참여형 지방자치의 모범을 세워가고 있는 때가 아니던가? 자연환경, 문화역사, 지역특산물 등을 보호하면서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을 세우기 위해 지역혁신 등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시민사회수석 등이 지역을 다니는 한편에는 지역주민들이 식사향응을 받거나 버스를 타고 핵관광을 하는 구태가 드러나고 있어 이 또한 씁쓸하다. 핵폐기장 유치 내용을 찍은 수건을 돌리는 일은 기본이고 심지어 돈봉투마저 오가고 있다. 순진한 주민들의 눈귀를 가리고 있다. 나라살림과 지역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핵폐기장의 안전성은 뒷전이고 ‘돈’과 ‘정치권력’이 지역의 여론과 자존심을 사로잡아 지역발전의 만능처럼 되어 있다.

-주민투표제 심각하게 변질-

이렇게 정부가 강행하는 핵폐기장을 해당 지역이 유치하도록 하는 각종 지원 아래 주민들은 핵폐기장 찬성여부를 주민투표를 통해 표명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지역자치와 주민참여를 발전시킬 제도로 정착하여야 할 주민투표제도가 심각하게 변질되어 가는 현장인 것이다. 이는 공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참여민주주의와 지역자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미 환경단체들은 핵폐기장을 서두를 때가 아니라는 근거와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이제 곧 가을걷이다. 다 지은 농사일과 생업을 뒤로 하고 핵폐기장 반대에 나서는 지역주민들의 아픔과 눈물을 나는 오랜 세월 보아 왔다. 가을 들녘의 풍요와 마을의 평화를 파괴할 권리가 참여정부에게는 없다.

〈김제남/녹색연합 사무처장·객원논설위원〉

* 이글은 8월 31일자 경향신문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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