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와 사육곰.

2005.09.02 | 미분류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절제된 생활, 복권당첨으로 낙원의 섬, 아일랜드에 대한 희망까지. 부자연스럽고 통제된 생활이긴 하지만 오염으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최적의 공간으로 묘사된 그곳의 인간들은 실은 복제인간인 ‘클론’ 이었다.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고객의 몸에 이식될 수 있도록 그들은 최상의 조건에서 ‘사육’되고 있는 것이었다. 고객의 아이를 대신 출산하고 바로 죽임을 당하는 클론, 건강한 간은 떼내어지고 몸이 나뒹구는 클론 등. 자궁같은 플라스틱 팩 안에서 필요한 때를 기다리며 키워지고 있는 수천 개의 클론.

클론의 몸은 고객의 욕구에 충실하기위해 정성들여 가꿔지는 상품이었다. 고객들 역시 클론은 필요로 하는 장기를 제공하는 대상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고객들은 클론이 자신들과 똑같은 얼굴을 갖고 생각도 하는 존재라는 걸 모르고 있다는 영화의 설정은 많은 윤리적 논쟁들을 일단은 접어두고 영화를 그려가고자 하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객들이 그러한 사실은 안다 해도 바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영화 아일랜드는 한국인이 너무나도 존경한다는 황우석 박사의 영향으로 유독 한국에서만 흥행했다고 한다. 복제인간에 대한 나름의 비판도 깔려있을 법한 이 영화를 대부분은 생명복제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어렵기도 하거니와 영화의 설정같은 상황을 당장에 이야기하기는 좀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사육곰’이 떠올랐다.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용도 폐기되는 마치 부품공장 같은 클론과 똑같은 동물이 한국에도 있다. 바로 웅담을 위해 사육되고 있는 곰.
멸종위기종의 반달곰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실은 1500여 마리의 반달곰이 있다. 철창 속에서 사육되고 있는 이 반달곰의 존재 이유는 건강한 ‘웅담’을 만드는 것이다.

애초 80년대 정부의 농가 장려 사업으로 재수출용으로 수입되어온 500여 마리의 사육곰은 이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가간 거래를 금지하는 협약(CITES)에 93년 우리나라도 가입하게 되면서 수출의 길은 막히게 되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웅담을 귀한 약재로 사용해왔고 극성스런 보신문화까지 있는 우리나라에서 웅담은 수요는 꾸준히 있었고 살아있는 곰의 웅담에서 즙(쓸개즙)을 빼는 기술까지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웅담 시장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있는 곰에 빨대를 꽂아 쓸개즙을 빼먹는 장면 등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동물학대 논쟁이 불러일으켜지고 99년 2월 26일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반달가슴곰은 24살이 되어야 도축이 가능하게 되자 상황은 바뀌게 되었다.

살아있는 곰에서 쓸개즙을 빼내는 행위는 처벌받게 되었고 곰의 평균 수명이 25세 전후인 것을 감안해 보면 웅담을 위해 곰을 죽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곰 사육자들에겐 하루아침에 곰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1년이면 돈백만원이 넘는 사료를 먹여 키우는 곰을 죽이지도, 그렇다고 풀어놓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 사이 곰은 꾸준히 번식해 지금까지 공식적인 숫자만으로 1600여 마리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두세 마리부터 많게는 백여 마리가 넘는 곰을 키우는 사육곰 농장주들의 입장에서 엄청난 경제적 피해였다. 더 이상 돈이 되진 않는 반달곰에게 제대론 된 먹이와 사육장을 제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비위생적인 철창 속에 갇혀 개사료를 먹으며 반달곰은 사육되었다.  

올해 법이 또 바뀌었다. 늘어나는 사육곰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육업자들의 요구에 부응해 곰 도살년수를 10년으로 낮추고 대신 사육시설 등의 기준은 엄격히 하고 관리도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야생동식물 보호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법이 정말 야생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법인지, 아닌지는 의문이다. 야생동물을 보호하자고 만든 법 안에 10세가 넘은 곰은 죽여도 된다는 조항이 공식적으로 들어간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달 초 그렇게 바뀐 법률이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사육곰 농장 몇 군데를 방문했다. 일단은 위생적인 관리시설을 위해 애쓴 흔적들이 보였고 모든 사육곰은 지방 환경청에 등록되고 10년 이상의 곰을 도살할 경우에도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어 그동안의 무분별한 관리 체계에서 볼 때 일단은 법률 자체는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법률이 계속 바뀌고 사육업자들과 정부, 그리고 환경단체들 사이의 논란이 계속 벌어지는 이유는 결국 ‘웅담’때문이다. 반달가슴곰의 몸에서 19그램의 웅담을 꺼내고 나면, 나머지 150킬로 그램이 다른 부위는 폐기물 처리 규정에 따라 규격봉투에 담아 버려지게 된다. 그것으로 끝이다. 10년이 넘도록 철창 속에서 갇혀서 자란 곰의 이유가 단지 ‘웅담’이다.

웅담은 일반적으로 간에 효과가 있다고 있다. 그러나 현대엔 이미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이거나 거래가 불가능해 사용될 수 없는 약재가 무수하고 그래서 마찬가지의 효과를 내기위한 다른 약재에 대한 개발과 연구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최근 녹색연합이 전국의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의사 29.2%는 다른 약용작물이 웅담의 효능을 대체할 수 있으며 45.2%는 일부 대체할 수 있으나 효과가 떨어진다고 밝혔다. 웅담의 고유한 효능을 다른 작물이 대체할 수 없다고 밝힌 한의사는 22.2%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한의사의 처방을 통해 ‘약재’로 웅담을 섭취하는 사람보다는 ‘보신용’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문제이며 한의사들의 93.3%는 이런 행위가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많게는 1천 만원이 넘는 웅담을 단지 ‘몸보신’을 위해 섭취하는 일부 사람들은 10년이 넘도록 철창 속에서 갇혀 지낸, 인간 몸무게의 2-3배가 넘는 동물의 몸 속에서 단지 19그램의 쓸개를 빼내는 행위를 통해 얻은 그 ‘보신’으로 무엇을 하려는 걸까?  

영화의 마지막. 클론들은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영화는 거기서 끝이다. 그런데 그 클론들을 어찌할 것인가? 같은 의문. 1600마리나 되는 사육곰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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