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어떻습니까?

2005.10.10 | 미분류

<<누가 녹색 사람인가?>>

* 아래의 것은 녹색연합에서 펴내는 <녹색희망> 152호(2005년 10월)에 실린 글입니다.

내가 만난 학생 가운데 특별한 젊은이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졸업한지 열두서너 해가 되었으니 벌써 30대 중턱에 들어섰을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그만그만한 일터를 찾아 줄곧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결혼도 해서 아홉 살배기 아들에다 아래로 아들과 딸을 더 두었습니다.

그에게는 집이 없습니다. 이 판국에 집을 살 수도 없지만 아예 가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집을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에 접었습니다. 언제나 셋집을 얻어 삽니다. 세가 오르면 변두리에서 또 변두리로 나가 다시 세를 얻습니다. 벌써 몇 차례 집을 옮겼습니다. 영락없는 부동산 투기 시장의 희생자입니다. 그라고 해서 치미는 좌절과 분노가 왜 없었겠습니까. 앞뒤가 바뀐 체제의 모순에 시달리면서도 슬프고 서러운 얼굴빛은 없습니다. 그는 늘 웃음 짓습니다. 웃음으로 삶의 부조리를 이겨갑니다.

남들이 필수품목이라 하는 자동차도 그는 소유하지 않습니다. 가족 나들이는 언제나 대중교통에 기댑니다. 자가용 중심으로 짜여진 교통 체계 때문에 차 없는 자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다섯 식구가 버스를 타고 전철을 바꿔 타는 일에 모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 통에 아이들은 모두 근육질입니다. 단단합니다.

이 집안은 우리들이 흠뻑 빠져 있는 오늘의 생활 문화와 싸우며 삽니다. 소비문화의 행렬에 끼어들기를 거부하고 저항합니다. 남들이 다 하는 데 나라고 안하고 버틸 장사가 어디 있느냐며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이내 소비주의의 유혹에 쉽게 몸을 내맡기는 경박한 인간과는 거리가 멉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맹렬히 달음박질해 가는 그 길이 도대체 어디로 치닫는 것인지 깊이 캐묻지 않은 채 그 행렬에 몸을 던져 마냥 뒤따르고자 하는 ‘생각 없는 자’들의 삶을 하찮게 여깁니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 해서 자신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남들이 필수품으로 친다고 해서 자신에게도 꼭 있어야 하는 필수품목은 아닙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줏대 있게 살아가는 기풍 당당한 청년입니다. 피아노만은 한대 샀습니다. 아이들과 아이 엄마가 모두 피아노를 좋아해서 입니다. 학원에 가서 배우기보다는 집에서 함께 배우도록 했습니다.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피아노를 즐깁니다.

돈이 없어 결혼하지 못한다거나 경제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주변의 이야기는 그에게 몹시 껄끄럽습니다. 그는 생명을 생명으로 받들며 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계산기로 계산해 처리하려는 일체의 계산 행위를 그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가 지닌 생명 사상이자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생명체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그는 교활한 경제 논리와 그 추종인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생명의 귀함을 확인하고는 생명 논리에 따라 버릴 것은 대담하게 버립니다. 약삭스러운 것과 저질스러운 것일랑 모두 내던지고 생명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힘껏 노래합니다.

이 다섯 식구의 삶터는 언제나 자연과 가깝습니다. 셋집을 찾아 도시 한가운데로부터 변두리로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기에 그렇습니다. 오늘도 그들은 자연과 더 가까이 삽니다. ‘한 달에 한번 이상 자연에 든다’는 <녹색인 수칙>보다 더 자주 자연에 듭니다. 자연을 벗 삼고 있습니다. 하늘과 산과 들은 아이들의 오랜 벗입니다. 하루가 자연으로 뜨고 하루가 자연으로 집니다.

위에 소개한 이 젊은이는 ‘녹색 사람’이라고 스스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빼어난 ‘녹색 사람’입니다. 녹색 생명의 얼을 지니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영웅입니다. 손쉽게 시류에 합세하고는 어찌 할 수 없었다고 구차스런 변명을 늘어놓는 저 시정의 소인배들을 우습게 여기는 이 시대의 선구자입니다.

녹색 사람은 모든 것을 바깥 조건 탓으로 돌리는 ‘조건 타령’을 일삼지 않습니다. 오늘의 뒤틀린 체제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비스런 객체가 아니라 온갖 알랑쇠들이 꾸며놓은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합니다. 어떤 조건 체제도 돌파해가는 영웅이 되고 모든 구조물을 재구성하려는 선구자가 됩니다.

녹색 사람은 바위에 달걀 던지기라며 주저 앉아버리는 비겁한 소시민의 자기 합리와 논리에 맞섭니다. 오히려 그 바위를 타고 오릅니다. 바위에 올라서서 고함칩니다. 넓은 지평을 향하여 녹색 생명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바위에서 내려와 일상으로 들어섭니다. 녹색으로 채색되지 않은 일상을 녹색으로 그립니다.

저는 이들 부부와 세 아이의 건강한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연거푸 녹색 이야기를 해대고, 녹색을 드러내고자 하는 제가 한없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그리하여 저도 겸손해 집니다. 이 겸손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남에게 부드럽게 대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녹색의 큰 뜻 앞에 자신의 변변찮음을 인정하고 그 뜻 앞에 무릎 꿇고 그 뜻을 펼치기 위해 알차게 살아가고자 하는 실천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뜻에서 우리 모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녹색연합 상임대표 박 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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