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 냄새

2005.11.13 | 미분류

산양을 만나러 늘 드나드는 산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숲은 오색 단풍으로 물들고 가을바람이 선들 분다. 나무마다 다른 색깔로 물들고
서로 어우러져 말할 수없는 아름다움으로 산을 덮는다.  
단풍이 하나둘 낙엽 되어 지고나면 눈발이 흩날리면서 한겨울의 추위가 성큼
다가설 것이다. 아직은 늦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때, 산길을 걷는 일은
참으로 한가롭고 넉넉하다.

가끔씩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닿을 때면 온몸의 신경이 그곳으로 쏠리고,
어떤 녀석인지를 가늠해 보면서 눈은 바쁘게 숲을 뒤진다.
늦가을의 숲은 옷을 벗어 멀리까지 숲 속을 들여다 볼 수 있고,
큰소리가 났을 때면 기대는 점점 커지고 보고 싶은 녀석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사라진 반달곰은 아닐까? 산양이 다가서는 것은 아닐까?
그 자리에 살그머니 주저앉아 꼼짝 않고 소리가 또 들리기를 기다린다.
한참이 지난 뒤에 멀리서 소리가 들리고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산길을 오른다.
단풍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과 햇살에 반짝이는 오색단풍의
아름다움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숲은 깊어지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자연의 소리로 가득하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있고 싶다.
잎을 떨어뜨리고 선 나무들처럼 훌훌 벗어 버리고 싶은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알몸으로 바위에 앉아 햇볕을 쪼인다.
따가운 햇볕을 쪼이면서 울긋불긋 물든 숲을 바라본다.
생각의 꼬리가 잘리고 아무 생각이 없다.
이마에 땀이 촉촉이 배이고 몸은 뜨거워진다. 돌아 앉아 등솔기에 햇볕을 쪼이다
더워진 몸을 바위에 눕힌다. 바위의 단단함과 차가운 느낌이 퍼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푸른 하늘을 올려보다가 눈을 감는다.
눈두덩에 비추는 햇살의 빛깔도 붉다.

바람이 몸을 타고 넘어간다.
바람 따라 산을 넘고 골짜기를 건너 산양이 사는 곳으로 날아간다.
산양의 뒤를 쫒아 산을 드나들었고 어쩌다 산양을 마주치는 날은
아주 짧은 만남이지만 온몸이 얼어붙고 가슴이 방망이질 치던 감동이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산양이 남긴 자국들을 들여다보면서 산양의 삶 속으로 빠져 버리기도 한다.
산양이 지나간 발자국과 풀잎을 뜯은 자국, 늘 드나들며 싸놓은 똥과 겨울철 따사로운 햇볕을 쪼이며 쉬었을 자리를 들여다보는 일은 산양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뜨거움으로 온몸을 들뜨게 했다.

가팔라지는 산길을 따라 숨을 몰아쉬며 오른다.
산양의 발자국이 눈에 띄고 발자국을 쫓는다, 숲을 따라 이어지던 발자국이
바위가 드문드문 나타나는 산기슭을 따라 편안한 걸음으로 이어진다.
이른 아침, 먹이를 찾아 가던 길이었을 것이다.
똑같은 걸음으로 이어지던 발자국이 바위를 만나면 훌쩍 뛰어올라 이어진다.
겨울철 말고 다른 계절에 발자국을 쫓기란 매우 어렵다.
더욱이 가을 숲에서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더욱 어렵고 힘들다.
이곳을 지나갔을 때 먹이를 찾아가던 길이었는지? 쉬러가는 길이었는지?
무언가에 쫒기 던 길이었는지?
어떤 상태였을까를 따져 보고 산양의 마음을 읽어야 된다.

숲이 터지고 햇살이 잘 비추는 커다란 바위 밑에 똥이 잔뜩 쌓여 있다.
오래도록 드나들면서 쉼터로 쓰는 곳이다.
오래된 똥 위에 새 똥이 소복이 쌓여 있어 요즈음도 드나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묵하게 들어간 쉬었던 자리가 보인다.
늦가을 짝짓기가 끝나고 암컷들은 몸이 점점 무거워지면서 많은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녀야하고 따사로운 햇볕을 쪼이면서 자주 쉬어야 할 것이다.
동글동글한 똥이 잔뜩 쌓여 있는 우묵하게 들어간, 쉬었던 자리를 들여다본다.
산양냄새가 확 끼치고 기다란 털이 몇 개, 똥에 붙어 있다.
쉬었다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산길을 오르면서 어쩌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산양냄새만으로도
잿빛 몸과 순한 눈빛, 작은 뿔, 주저앉아 하염없이 되새김질을 하던
산양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라 그리움으로 온몸을 떨곤 했었다.
한줌 뿌려 놓은 소금을 땅바닥이 반질거리도록 핥아먹은 우묵하게 들어간 땅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온몸을 휘감는 산양냄새를 가슴 깊이 빨아들여 내 몸 구석구석 산양냄새가 배도록 숨을 멈춘다.
늘 코끝에 맴도는 냄새, 고향처럼 여겨지는 냄새, 바람결에 묻어와 코끝을 스치기만 해도 몸을 떨었던 냄새,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오래도록 코를 떼지 못한다. 이제 산양은 나의 다른 몸이며 나의 형제인 것이다.

산양이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
산양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산양이 뛰어노는 설악산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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